D+22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생각이 든다. 맨날 같은 일을 하는데 과연 내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렇게 사는 게 맞을까 등등. 그런 생각의 끝엔 여러 선택지가 나타난다. 누군가는 유학을, 누군가는 이직을, 누군가는 전문직을 준비한다. 나는 유학을 가려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그럼 유학을 마음먹은 이유와 실패한 이야기를 해보도록 해야겠다
만나는 사람마다 얘기하는 유학
최초에 나는 유학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저 취업을 했고 일을 하고 있었을 뿐이다. 일을 하며 욕심은 많았다. 사실 욕심이라기 보단 나 자신에게 부과한 과제가 있었다. 그것은 인력 소모적인 건축계의 관행을 후배들에게 물려줘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 과제 안에서 나는 기술로 모든 걸 해결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압도적인 기술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모 회사 대표님과는 아주 긴밀하게 일을 했다. 그는 나에게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자주 했다. 그중 하나가 유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나의 옛 기억엔 자신의 자녀이야기를 곁들이며 그들도 유학을 갔다는 이야기, 더 큰 꿈을 위해선 유학을 가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음속 한구석에 유학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고실험은 독일을 가려했다 미국을 가려한다
나는 형상(Geometry)을 다루는 것을 좋아했다.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찾아보다 보면 학교는 몇 개로 추려진다. 유럽식 복지가 뒷받침되는 독일 학교가 하나 있다. ITECH라는 학교로 슈투트가르트에 위치해 있다. 꽤나 실험적인 건축들을 수행하고 관련된 뉴스래터나 영상들을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아는 분 중 한 명도 거기를 갔기 때문에 그곳을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지인 중 한 명이 미국을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실 내가 빈말을 못하는 편인데 너라면 미국 학교를 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 자신을 그렇게 후하게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이야기가 고마웠다. 그래서 미국을 생각하게 됐다. 미국 하면 결국엔 MIT 아니면 하버드로 결론지어진다. 다른 학교가 안 좋다는 뜻이 아니고 내 짧은 정보력에는 두 학교가 들어왔다. 최근에 알게 된 것은 카네기멜론에도 형상을 다루는 꽤나 괜찮은 과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막연한 자금조달계획이 가져온 실패
꿈이라는 것은 비전으로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속성을 지니고 있다. 뭔가 마음 뛰게 하지만 약간은 막연한 것이 꿈이다. 그리고 목표란 그것을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이뤄진 하나의 업무 단위로 볼 수 있다.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의 말을 빌리자면 목표는 구체적이고 수치로 표현할수록 좋다. 나는 꿈은 있었으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목표 또는 계획이라고 하는 것들이 부족했다. 내 설득의 언어는 다소 부정확했다. 설득의 대상은 부모님이었다. 그 말을 다시 해석해 보면 이렇다. "미래에 쓸 나의 지분을 지금 내주십시오. 내가 요긴하게 쓰고 갚겠습니다."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하지만 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낯설어하는 우리 집의 문화에 이런 것은 맞지 않았다. 더군다나 회사를 다니는 것보다 유명한 학교를 다니는 것이 더 명예롭지 않냐는 나의 생각과 돈 버는 게 먼저라는 부모님의 생각에는 큰 차이가 있었던 듯하다.
어쨌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을 만나니 나도 풀이 죽어버리고, 그렇게 한동안 방황의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이때는 내가 이미 퇴사한 상태였기 때문에 백수로서 마땅히 할 것도 없었다. 일이 없을 때 생산적으로 뭔갈 하는 것도 잘하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런 인생의 쓴맛을 보게 될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그럼 나의 이런 경험을 통해 누군가에게 말한다면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 내용을 적어본다
1. 유학준비는 오히려 회사를 다니면서 하는 게 맞다
내게 미국 유학을 권했던 형은 하버드를 갔다. 그는 새벽에 토플학원을 가고 출근했다. 그에게 좋은 일이라 하면 그가 원하는 일과 회사의 일이 꽤나 합치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일이 곧 그의 포트폴리오가 되었다. 그리고 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프로젝트 내용들도 차곡차곡 만들어냈다.
다들 알겠지만 돈이 있어야 뭐라도 할 수 있다. 돈이 없으면 참으로 처량해진다. 어느 책에서 표현하기로 자본주의 시대는 자본으로 서로를 포식하는 시대라고도 한다. 그만큼 돈은 중요한 물건이다. 돈이 있어야 자기가 바로설 수 있으며 기회를 만들어낼 수 있다. 유학준비를 위해 회사를 그만두는 경우 배수진을 쳐야 한다. 그런 배수진이 본인에게 잘 먹히는 사람인지 우선 판단할 필요가 있을 텐데 나에겐 썩 맞지 않는 일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은 회사를 다니면서 했어야 했다.
2. 유학 다음단계에 대한 생각도 같이 해야 한다
유학의 성공과 실패는 각자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유학을 해도 결국엔 더 높은 기관으로 진학을 할지 일을 할지 결정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유학을 해외 취업의 길로 생각한다. 미국사회는 한국보다 더더욱 인맥이 중요하기 때문에 유명한 교수의 추천서를 가지지 않으면 일하기 힘들다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100년이 지나도 없을 프로젝트를 유명한 해외 회사에서 경험하고 싶다면 유학을 가는 게 맞다
반면, 유학을 가도 유학을 안 간 사람이 경력을 쌓는 것과 비슷한 커리어를 밟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런 경우를 몇 번 봤다. 2년의 유학과 2년의 경력이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어떨까? 나는 그렇게 되는 경우라면 유학을 권장하고 싶지 않다. 물론 2년의 치열한 생활 속에 영어 실력이 월등히 늘거나, 연구를 올바르게 하는 능력등을 키웠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위와 같은 경우 기회비용이 너무 크다
3. 유학은 어쩌면 지식을 전수해 주는 곳은 아닐지 모른다
유학을 왜 가야 할까. 코로나 이전에는 유학을 가는 것은 선진문물을 배우는 행위였다. 지금도 그 내용은 어느 정도는 유의미하다. 하지만 예전에 비해 그 이유가 많이 줄어들었다. 왜냐하면, 코로나 즈음해서 좋은 학교에서 수많은 자료들을 인터넷에 공개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MIT, 스탠퍼드, 카네기 멜론, 하버드 등의 강의를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다. 단점이 있다면 Teaching Assistant로부터 직접적인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 유학을 지식을 얻기 위해서 간다고 말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나는 여전히 기술을 좋아하지만, 사람이 같이 모였을 때 그 영향력은 폭발적이다. 그게 한국인들끼리 모인다면 한국에서 그칠 가능성이 크지만 좋은 학교에서 유능한 인재들과 같이한다면 그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하다. 결국 유학을 가는 것은 좀 더 좋은 인재들과 교류하고, 그들 간의 Peer pressure를 통해 더 빠르게 성장하기 위함이 아닐까. 요즘 내가 생각하는 유학이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