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야기 : 일본에서 후임을 받고 가르치다

D+21

by 코드아키택트

내 아래 누군가가 들어온다는 것은 부담이자 또 다른 도약의 기회다. 오늘은 내가 후임을 받았던 이야기와 그를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이야기해보겠다


좋고 좋은 기업의 시스템

요즘은 중소기업이라는 말보단 좋고 좋은 기업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 내가 있었던 곳은 겉으로는 외국계라는 이름으로 되어있었지만 실상은 좋고 좋은 여러 업체의 연합이었다. 좋고 좋은 기업의 장점은 유연하다는 것이고 단점은 대표의 방향성에 상당히 좌지우지된다는 것이다. 내가 일본에서 일할 당시 새로 들어오는 사람을 교육할만한 시스템은 갖춰져 있지 않았다.


결국 교육은 나의 몫

그렇다. 시스템이 없다고 뭐라 할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나는 나와 같이 일할 사람이고 사실 내 지인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를 가르쳐야만 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는 말도 있듯, 결국 나도 내가 배운 방식대로 그를 가르칠 수밖에 없었다.

2017년 즈음엔 파사드와 관련해 AU(Autodesk University)에 질 좋은 자료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그 당시 나도 그 내용들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한 번은 훑고 회사에 들어갔기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나를 가르쳤던 형도 "이런 걸 아는 사람이 있으리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놀랐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마이너 하지만 강력한 스킬이기도 했다. 그리고 도제시스템같이 잘 전수가 되지 않기 때문에 또한 잘하는 사람도 많지 않은 그런 분야이다.


다이나모를 메뚜기로 옮기기

아무튼 나는 해당 자료를 통해 그를 가르치기를 시도했다. 그때당시 나는 1년이 조금 넘었고, 이제 Dynamo로 짜인 내용은 웬 만치 메뚜기로 옮겨 적을 수 있을 수준은 되었다. 원래 예제는 마리나베이 센즈의 천장을 모델링하는 예제였다. 그리고 해당 스크립트는 다이나모로 짜여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해당 내용에 관한 설명서도 같이 첨부되어 있었기 때문에 해당 로직을 기반으로 메뚜기로 재구성할 수 있었다.

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부분은 패키지를 전혀 쓸 수 없었다는 점이다. 원본 다이나모에서는 여러 패키지의 도움을 받아서 만들었지만, 메뚜기에는 거기에 1:1로 대응되는 패키지가 없어 일일이 다시 만들어야 했다. 맨 처음엔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가 큰코다친 부분도 있었다. 가령 마리나베이 부분은 2시간 정도면 끝낼 수 있었다. 그러나 창이 공항 하는 부분은 생각보다 어려워 내가 가르쳐 주다가 다시 공부해서 알려주겠다고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교육 후 전장으로

글의 재미를 위해 MSG를 치자면 우리는 전장으로 나아갔다. 나 자신도 그렇게 긴밀하게 누군가와 협업을 해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어려움도 꽤나 있었다. 가령 협업을 위해 업무를 분장할 때 쉬울 거라 생각한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워져 내가 상대적으로 쉬운 것을 하고 그 친구가 어려운 부분을 하게 되는 등의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일본어를 못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대신해서 여러 미팅을 다녀오고 해당 내용에 대한 기술적인 로직을 세우는 분업 시스템을 이루게 되었다.

그런 전반적인 일에 대한 부분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결국엔 합을 맞춰 나가면 되니까. 하지만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쓴소리를 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단순히 업무로만 만난 사이라면 그냥 쓴소리를 해도 상대적으로 마음이 덜 찜찜할 것이다. 그러나 지인이 동료가 되었으니 쓴소리를 하는 게 상당히 어려워진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친구들끼리 동업하면 망한다는 이야기도 그래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나는 그를 키워냈어야 했고 그렇기 때문에 잘못된 부분은 이야기했어야 했다.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뭐라 하는 게 나로선 상당히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진짜 성장은 홀로 섰을 때

나는 그 지인과 약 4~5달간 같이 일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굉장히 길게 느껴졌지만 지금 보니 상당히 짧은 기간이었다. 나는 내가 아는 거의 모든 것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몇 화 뒤에 얘기하겠고, 이미 예정된 결말이지만 나는 퇴사를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쨌든 나 때문에 여기에 온 부분도 없지 않아 있을 테니 나는 나의 최대한을 그에게 알려주기로 했다. 업무적인 노하우와 내가 여태까지 썼던 스크립트 등등에 대한 이야기도 모두 해줬다.

내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아마 혼자 하면서 더욱더 성장했으리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아이러니 인 게 누군가와 같이하면 의지가 되기도 하면서 동시에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려있는 듯한 모습이 있다. 실력적인 부분만 놓고 본다면 그에겐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나의 모든 걸 쏟아보며 누군가를 가르쳤던 기억으로 내가 무엇을 배웠는지 써보면 아래와 같다


1. 회사보다 직무가 중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현재 회사에선 그저 잡부에 불과하다. 내 밑에 누군가를 가르친다거나 자율권이란 거의 주어져있지 않다. 그렇다. 상당히 안 좋은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IT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렇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다. 그런 면에서 과거엔 자율권이 있었고 누군가를 가르칠 수 있었던 그런 성장의 기회가 많았다. 회사의 타이틀은 남을 위한 것이고 직무는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요즘 부쩍 든다.


2. 내가 1.1만큼 하지 않으면 밑은 절대 따라오지 않는다

내 업무 철학이기도 하며, 내가 가르칠 때 하려던 태도이기도 하다. 나는 주어진 일이 1이라면 1.1 정도는 하려고 꼭 노력한다. 전략적으로 보면 그렇게 해야 윗사람은 "아 그래도 얘가 알아서 잘하는 애구나"하면서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다. 그리고 아래로보면 "야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나도 잘해야겠다"라는 메시지를 심어줄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러한 전략은 잘 통했다. 심지어 동아리 생활 때도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내가 바빠지는 단점은 있지만 그만큼 성장하기도 한다.

내가 그 친구를 가르친 것은 회사에서 시킨 것도 아니고 내가 자발적으로 한 일이었다. 내가 그만큼 노력하고 희생을 했기 때문에 그 친구도 나를 잘 따라줬다고 생각한다. 한편 그런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리더십과 보스쉽을 착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위계가 자신을 따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3. 강력한 스킬이 있어야 한다

이건 과거 나의 은사님이 해준 말이기도 하다. 내가 강력한 스킬이 없었다면 그이를 가르칠 수 없었을 것이다. 또는 가르쳤더라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알려줘 성장에 오히려 방해가 됐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기술이 너무 많아서 내가 뭘 선택해야 할지 어려운 때가 되었다. 그런떄마다 무엇을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선택한 것을 무척이나 잘하는 방향을 가져가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를 잘하는 사람은 열을 잘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삶에 있어서 더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4. 공과 사는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은 정말 어려웠던 부분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지인을 후임으로 받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내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면 잘못된 부분에 대한 피드백도 제대로 주지 못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야 프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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