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
그와 형, 그리고 그들의 어머니는 먼 길을 떠났더란다.
그곳은 경치가 예쁜 여주.
어린 그는 마냥 즐거웠단다.
그가 특히 신기하게 여겼던 것은 버스 안 화장실.
그 신기한 그레이하운드라는 버스는 예쁜 꽃길을 달렸다.
그의 어머니는 홀로 아이들을 키우셨다.
많은 돈을 지인에게 떼였던 그의 어머니.
돈 받으려고 그와 형을 그레이하운드라는 고속버스에 태워 여주로 향했던 거라고. 나중에야 그는 알았다.
그렇게 두 형제와 어머니는 여주의 한 집에 도착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가을날,
어머니와 형은 그를 여주에 남겨 두고 서울로 올라갔다.
한 달에 한 번씩 형이 그를 보러 올 거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일 년 조금 넘도록 거기, 빚쟁이 집에서 살았단다.
그때부터
그는 매달 첫 일요일엔 아침부터 하늘만 바라봤다고..
절대로 길을 바라보지 않았다고.
왜냐하면 혹시나 형이 못 오면 많이 실망할 것 같아서.
그래서 형이 오는 쪽을 아예 바라보지 않았다고.
그래서일까?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을 누군가를 기다리게 하는 것을 몹시 힘들어한다.
그의 기다림의 경험이다.
멋진 기차장난감을 사준다고
약속했던 고모를 기다리며 나는 초등학교 시절을 다 보냈다.
나는 다짐했다.
누군가에게 희망고문의 기다림 따위는 약속하지 않겠다고.
고3 겨울방학,
내 생애 처음으로 어떤 공부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신 어머니는 개천가 손바닥만 한 땅이 팔리기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그 땅이 팔리기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그 땅이 팔리던 날 할머니 병원비가 순서를 가로챘다.
가슴 한 곳에 휑한 바람이 불고 머릿속은 백지가 되었지만 할머니를 좋아하는 내가 가질 마음은 아니었다.
낙담한 마음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숨기느라 힘이 들었다.
나는 알았다.
기다림은 순서대로 와주지 않는다는 것을.
사랑은
오래 참고 더 많이 기다리는 것이라고 교회에서 배웠다.
데이트 약속시간을 수시로 어겼던 나의 애인이 다른 이의 기다림을 더 배려했다.
그러다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포기했다.
사랑과 기다림의 진리를.
빛나는 청년시절 빛내지 못하는 책임을 스스로에게 물으며 어둠을 넘고자 했다.
어둠의 터널을 지날 때, 달디 단 열매를 약속하는 수많은 책들의 감언이설을 믿으며 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인생의 가을이라고 말하는 중년,
나는 왜 이제야 그 일들이 그렇게 시리고 아픈지 모르겠다.
억울해서 울화가 치밀고 울컥 눈물이 나기도 한다.
어린아이였을 때, 청년이었을 때를 뒤적여 보면 ‘그냥 그렇게 사는 건지 알고’ 당연시 살아냈던 일이다.
그것들이 지금은 억울함과 울컥함이 된다.
‘그냥 그렇게 사는 건지’ 알았기 때문에 심장에 굳은살이 생기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는 기다리지 않았으면 한다.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가야 할 길을 가는 게 아니라 가고 싶은 길을 가고 싶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사람, 시간, 그 무엇도 기다리지 않았으면 한다.
중년, 더 이상 기다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