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과 체계(system)

-내러티브 투자의 정석-

by 아나키스트


결과는 반드시 해석됩니다.

단지 의지적으로 해석하든지, 삶에 녹아 당연시하며 받아들이는 것뿐입니다.

당연시하는 것 자체가 사회문화적으로 해석된 것을 의식하지 않고 수용한 거죠.

결과 그 자체로 고유한 영역으로 고고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청문 너머 서 있는 소나무를 보시죠.

소나무란 자연의 결과물은 나와 상관없이, 나의 영향 없이도 거기 그냥 서 있습니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개인적인 이유에 의해 소나무는 ‘저 소나무’가 아니죠.

타 문화권에서는 이름조차 다르고 소나무에 얽힌 이야기는 다양합니다.

다만 시인의 눈이냐, 영화감독이냐, 사진작가냐, 부뚜막 지킴이냐에 따라 다르겠지요.

즉, 관념론으로 접근하느냐(영향을 받았느냐), 실증주의로 하느냐, 유물론으로 하느냐, 실존주의로 하느냐, 모던이냐 포스트모던이냐에 따라 다를 수도 있고 유사할 수도 있을 겁니다.


체계는 우리들이 이해한 결과물입니다.

그러므로 해석이 당연히 따르기 마련입니다.

예전 사람들은 우리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이 세상은 그 어떤 온전한 체계(system)로 되어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체계는 완벽한 질서가 있을진대, 그 질서만 찾으면 우리는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 첨병이 과학이었죠.


이것을 단순체계이론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과학이 발달하면서 그 믿음은 깨지고 심지어 양차대전으로 과학이 사용되게 되면서 디스토피아를 경험하죠.

동시에 깨달은 것은 삼라만상은 탈질서(=무질서)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아는 복잡계입니다.

단순해서 단순체계가 아니 듯, 복잡해서 복잡계가 아닙니다.

단순체계도 무한히 복잡합니다.

세계, 체계를 보는 눈(인식론)이 다른 것입니다.

단순체계는 필연과 질서를, 복잡계는 우연과 모질서(저는 탈질서라고 표현합니다)를 관점으로 세계를 해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