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을 쓰기에 앞서-
우리 공동체를 구성적으로 본다면 세 가지 문화가 공존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생존'이 최고의 가치이자 미덕이었던 우리 중년의 부모님 세대입니다.
절대 빈곤 속에서 생존 자체가 목적이었던 이분들은
그 어느 세대보다 강인한 생존력을 지녔지만,
때로는 체면이나 염치를 사치로 여겨야 했던 시대적 결핍을 안고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각박함을 기꺼이 감당했던 이들은,
민주주의보다 '당장의 밥'이 더 절실했던 세대이기도 합니다.
그 뒤를 이어 90년대 민주화 세대가 우리 공동체의 허리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앞 세대의 빈곤과 투쟁을 ‘이야기'로 듣거나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자랐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시작되고 민주화가 자리를 잡던 시대적 수혜를 입은 이들은,
현재 우리 사회를 이끄는 중추 엔진이자 중년과 청년 사이를 잇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은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등장한 세대입니다.
이때부터 '상대적 빈곤'과 '개인적 치유',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 문화가 화두가 되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수용하던 '고아원'이라는 명칭이
이 시기부터 '보육원'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모는 생존해 있으나 보호자가 부재한 상태,
즉 가족 해체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들은 때로 절대적 빈곤의 세대와 정서적 궤를 같이하기도 합니다.
'쪽수'가 가진 두 가지 무게
이제 이 글의 주인공인 60년대생 이야기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누군가는 이들을 '낀 세대' 혹은 '얼뜨기'라 부르기도 하지만,
저는 이들을 '관록의 세대'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 인구 구조에서 가장 두터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이들의 핵심 키워드는
단연 '쪽수'입니다.
저는 이 '쪽수'라는 단어에 밑줄을 긋고 싶습니다.
'쪽수'는 단순히 머릿수를 뜻하는 은어이기도 하지만,
책의 한 페이지(page)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치열한 인원(쪽수)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이제 인생의 다음 페이지(쪽수)를 넘기는 장에 서 있습니다."
한 반에 70~80명이 모여 오전·오후반 수업을 하던 2부제 학교를 기억하십니까? 한 학년에만 천 명 가까운 학생이 몰려 있던 시절, 그곳에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수백 명의 경쟁자를 뚫어냈다는 증거였습니다. 이 어마어마한 '쪽수'의 시대를 견디며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일궈낸 분들입니다.
NASA가 발견한 중년의 반전: '위기'가 아닌 '황금기'
제가 이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는 현직 시절 수많은 중년과 그 가족들을 상담하며 얻은 '실천적 지혜(praxis)'를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찾은 문헌들은 제가 현장에서 만난 중년들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제가 만난 중년들에게서는 인생 2막을 향한 결기가 느껴졌는데,
책 속의 중년은 '위기', '퇴화', '빈둥지 증후군', '꼰대' 같은 우울한 단어들로만 박제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괴리를 메우기 위해 300여 명의 중년을 인터뷰하며 질적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2000년대 초반 NASA(미국항공우주국)의 '아논 보고서(Anon Report)'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보고서는 중년에 대한 제 관점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NASA는 "좁은 우주선 안에서 수년간 고립된 채 극도의 스트레스를 견뎌낼 최적의 적임자는 누구인가?"를 연구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중년은 퇴화하는 시기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황금기'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글의 중반부에서 흥미진진하게 풀어낼 예정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다시 쓰는 이유, 나를 위한 성찰
연구를 완성하려던 찰나, 개인적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지병과 심리적 고통이 겹치며 연구는 멈췄고,
저는 십 년 가까이 부평초처럼 떠돌았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흐른 뒤 다시 펜을 들었을 때, 세상은 또 변해 있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을 넘어 이제는 AI가 일상이 된 격세지감의 시대입니다.
고백하자면,
이 글은 타인의 지혜를 전하는 통로인 동시에 저 자신을 위한 성찰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글은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제 개인적인 이야기와 상담 사례를 버무린 '에세이' 형식을 띨 것입니다.
때로는 이야기 치료(Narrative Therapy)의 관점에서,
때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유연한 시각으로 우리 중년의 삶을 재해석해 보려 합니다.
자, 이제 인생의 새로운 '쪽수'를 넘길 준비가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