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뭐예요?"
누가 내게 묻는다.
취미라...... 뭐 특별히 이거요~ 할 건 없다.
대답을 기다리며 건네는 시선이 약간 불편해질 무렵.
자~ 생각해보자 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지 않나!
내 취미는 뭘까?
아주 곰곰이 애써 생각하는 착실함을 보이는 동안 시간은 너울렁 너울렁 흐른다.
결국 나의 대답은 어색한 웃음로 시작한다.
나는
“그러니까 취미가 .....”
말끝을 흐린다.
정말 아~ 정말 모르겠다.
대답을 기다리던 그분은
“여가 시간에 주로 무얼 하시냐는 거죠?”
아하! 그거요오~ 그래, 알겠어... 무슨 말인지.
나는 냉큼 대답했다.
“가지가지요”
정말..... 가지가지 한다.
맞선보던 이들의 단골 질문이다.
아~ 옛날 사람. 맞다. 나는 옛날 사람.
그 옛날에는 취미 하나 정도 준비하고 있어야 했다.
써먹을 일이 많았으므로...
학기 초 책상 위에 놓인 설문지에 써넣어야 했고
이력서, 자기소개서에 특기와 취미를 써넣었으니까.
요즘도 그런가?
취미란 외부 세계가 나를 이해하기 위해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난 특별한 취미가 없었다.
그렇다고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취미에 따라 사람들의 표정이 변했으니까.
나는 적당히 영악하고 적당히 안 착했다.
넉넉한 살림이라야 할 수 있는 것의 목록에서 가끔 하지도 않는 취미생활을 불쑥 꺼냈으니까.
그 말에 은폐되어 있는 것은 이렇다.
우리 중년들은 경제적, 시간적 여유 없이 살던 시절이 있었다.
개미와 베짱이 동화로 무장하고, 가난했던 부모 세대가 있었으며 그들에게서 생산성을 학습 받고 자랐다는 것이다.
가난한 부모 세대의 학습을 나는 DNA에 장착시켰다.
나를 학습시켰던 부모 세대의 취미라는 개념은 비생산적인 것이다.
생산적인 것은 의미 있는 반복이며 비생산적인 것은 무의미한 반복일 뿐이다.
중년 이야기에 빠지지 않는 주제는 노후에 여가시간을 어떻게 보낼까에 관한 것이다.
그렇다면 취미와 여가생활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우리 중년의 DNA를 먼저 살펴봐야 한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를 생활의 본으로 지켜온 나에게 무의미한 반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른 말로 하면 취미나 여가생활도 생산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나는 취미가 습관이 되기도 전에 취미를 즐길만한 인계점에 도달하기도 전에
포기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중년의 DNA 자체가 생산적 반복 아니면 의미를 찾지 못했다.
무의미한 반복을 오래 지속하지 못했다.
열심히 살아온 중년의 DNA
취미나 여가생활도 역동적, 활동적, 성취적, 도전적이어야 직성이 풀린다.
자전거, 등산, 탁구 등 일단 모든 장비를 전문가 수준으로 갖춰야 한다.
골프를 하든 테니스를 하든 내기를 해야 재미를 느낀다.
그런 DNA가 내재되어 있다.
잔듸 공원에서 돗자리 깔고 앉아 아이들 담소하고 야구공 던지기 놀이를 하는 그런 그림은 뭔가 싱겁다.
취미라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어떻게 그것을 여가생활이라 하고 놀 수 있단 말인가.
그리 생각했었다.
90년대 중년의 나이에
캐나다에서 생활하던 어떤 분이 캐나다인들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한국의 중년 여성들은 카드만 있으면 되고 남성들은 무료해서 못 산다는 말을 들었단다.
농담 같은 말일 수도 있었지만 그분은 속상해했다.
한국, 쉼과 노는 문화 자체가 일천했던 문화의 땅.
죽어라 열심히 사는 것만 연습된 부모님들과 자신을 비아냥거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보게,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함께 그런 시간을 보내봤다면 여가생활을 그리 보내며 살 줄 알았을 거네” 라 말해줬으면 좋았을걸.
어쩌면 우리는 무의미한 반복도 필요하다는 것을 애써 외면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생산적이든 비생산적이든 우리 중년에게는 모두 필요한 삶의 일상이다.
제주 생활 3개월째
100일이 다가온다.
그동안 이런저런 짐 정리와 이웃과 인사 나누기, 동네 길 구석구석 다니기 등을 했다.
짐은 방구석으로 갔다 거실로 나왔다 제 자리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길 건너 할미는 여름이와 산책하는 나를 굳이 불러 세웠다.
독특한 경계의 눈빛과 첫 인사말 “난 개 무서워해” 그러니 알아서 개를 눈앞에 안 보이게 해주면 좋겠다는 말씀이시다.
집 왼편에는 블루베리 농장이 있다.
농장 사장님의 상냥하고 친절한 도움이 베풀어졌다.
이렇게 이웃을 알아 가고 있다.
동네 식당마다 찾아 음식 맛을 보는 것, 관공서, 도서관, 철물점, 세탁소 등을 찾아보는 일이 매일의 일과였다.
일의 종류나 내용이 달랐고 시간도 들쑥날쑥했으며 장소가 달라서 그동안은 늘 새로운 매일이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규칙적인 일이 생긴다.
반복하는 일인 것이다.
규칙적으로 반복하는 일에는 반려견 여름이와의 산책이 있다.
그리고 흔들의자에 앉아 의자가 흔들어 주는 대로 몸을 맡기고 멍 때리기가 있다.
여름이와의 산책은 취미가 되었고 멍 때리기는 특기가 되었다.
또 한 가지 가끔 낚시를 간다.
낚시가게 사장님이 물때나 바람을 알려주는 앱을 나의 폰에 깔아주셨다.
무용지물이다.
아무 때나 그냥 간다.
나의 취미들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의 취미라는 것들, 그 반복은 생산성과는 거리가 멀다.
무의미한 반복이다.
but,
비생산적 무의미한 반복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는 정리되고, 새로운 어떤 것이 들어오는
기적 같은 순간과 마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