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여행기] 상해_시간의 레이어 위에 쌓은 경험

상해에서 발견한 공식

by MICE 기획자 Michelle

상해에서 발견한 컨벤션의 미래

5일간의 상해 여행이 끝나고, 나는 하나의 질문을 안고 돌아왔다.

"우리는 무엇으로 사람들을 모으고 있는가?"



1. 시간의 레이어 위에 새것을 쌓는 것


상해의 석고문(石庫門) 건축물은 1920년대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2017년부터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기' 원칙으로 역사 건축물 보존에 힘써왔고,

최근에는 140년 된 석고문 단지를 통째로 7천 톤 들어 올려 이동시키는 프로젝트까지 진행했다.

그 안에는 지금 2025년의 카페와 브랜드숍이 들어서 있다.


흥미로운 건, 이 감각이 취향만으로 생긴 건 아니라는 점이다.
상해시는 역사풍모지구와 우수 역사 건축물 보호 규정에서

보호를 전제로 한 합리적 이용을 원칙으로 명시하고 있다.

보존을 전제로 “살려 쓰는 것”이 제도적으로도 언급된다.
신천지 역시 ‘보존 기반 재개발’ 사례로 자주 이야기된다.


신천지를 걸으며 나는 성수동을 떠올렸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었다.

성수동이 '낡은 것'과 '새것'의 대비로 트렌디함을 만들어낸다면,

신천지는 '옛것'과 '새것'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린다.

1920년대의 벽돌 위에 2025년의 네온사인이 붙고,

석고문 안에서 최신 팝아트 전시가 열린다.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두고, 정비하고, 그 안에

브랜드와 카페, 전시 같은 새로운 기능을 입혀서 시간을 겹치게 만든다.

그래서 이 도시는 걸을수록 ‘지금’만 보이지 않는다.
과거가 같이 보이고, 그 위에 올라간 현재가 같이 보인다.

한국인 바텐더가 운영하는 Pre-opening 중인

바에서 마신 쌀 베이스 칵테일처럼,

쌀이라는 아시아의 전통 재료 위에

서양의 칵테일 기법이 레이어처럼 쌓여 있었다.

팝마트가 럭키박스에서 시작해

아티스트 콜라보로 진화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였다.

새로운 것은 기존의 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 위에 한 층을 더하는 것이었다.


마지막 날 밤, Speak Low라는

히든바에서 만난 일본 바텐더는 말했다.
"상하이는 옛부터 굉장히 문화가 열려있던 곳이에요.

다양한 시도들이 계속 들어오죠."


그 순간 깨달았다.


컨벤션도, 브랜드도, 경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시간의 레이어 위에 새로운 층을 쌓는 것'이다.


상해의 새로움은 늘 오래된 것과 함께 있다.


'새것'이 절대로 만들어낼 수 없는,

시간의 레이어를 그대로 복원하는 일은

경험의 밀도를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밀도는 절대 복사할 수 없는 가치를 갖는다.


상해는 과거를 박제하지 않는다.

시간을 남겨두고, 그 안에서 지금이 살게 만든다.



그럼 이를 컨벤션 기획에 적용하면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
작년 행사를 '개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완전히 새로운 포맷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기억과 기대 위에 새로운 경험을 한 층 쌓는 것이다.

3년차 컨벤션이 1년차보다 강력한 이유는, 그 위에 쌓인 '시간의 무게' 때문이다.



2. 소수의 만드는 자, 다수의 퍼뜨리는 자

디즈니랜드 상하이는 각양각색의 콘텐츠로 꽉 차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곳은 다름아닌

포토존이나 캐릭터 인형과 사진을 찍는 곳이었다.

남녀노소의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트랙션을 타기보다는 여기저기서 사진 찍기에 혈안이었다.



신천지도, 프라다 전시관에서도, 팝마트 매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피상적으로 보였다. 깊이 없이 그저 사진만 찍는 사람들.


하지만 며칠을 보내며 깨달았다.

이건 단순한 피상성이 아니라, 역할의 분화였다.


디즈니랜드 상하이의 완벽했던 레이저쇼,

콘텐츠를 UX를 정교하게 고려하며

기획하고 설계한 전시들,

하이디라오의 시스템화된 서비스,

팝마트가 럭키박스에서

아티스트 콜라보로 진화하는 과정,

140년 된 건물을 7천 톤 들어 올리는 정부의 집념.

만드는 사람들의 디테일은 굉장히 뛰어났다.


그리고 그 위에, 이걸 가볍게 즐기며

사진으로 퍼뜨리는 대중이 있었다.

각자의 역할이 명확했다.

소수가 진짜 퀄리티를 만들면,

다수가 이를 즐기고 확산시킨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만드는 사람도, 즐기는 사람도

모두가 '깊이'를 증명해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카페에 가면 원두를 알아야 하고,

전시를 보면 작가를 알아야 하고,

맛집에 가면 셰프의 철학을 이해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


상해는 달랐다.

만드는 자는 디테일에 미치고,

즐기는 자는 가볍게 즐기고,

그 둘 사이에 위계가 없었다.



컨벤션도 이 생태계가 필요하지 않을까?

모든 참가자가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

누군가는 깊이 있게 네트워킹하고,

누군가는 가볍게 인증샷을 찍으며,

누군가는 세션에 몰입하고,

누군가는 분위기를 즐긴다.

각자의 방식으로 참여하고,

그것이 모두 가치 있는 참여로 인정받는 것.


그리고 나는 이 생태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 비밀을 비용 구조에서 발견했다.



3. 비용의 경제학, 경험의 설계

상해의 공식은 명확했다:

저렴한 인건비 → 많은 인력 투입 가능
(화장실마다 청소 인력, 매장마다 서비스 인력, 시스템을 사람이 완성)

기존 건물 활용 → 신축 대비 비용 절감
(하지만 역사적 가치는 오히려 증가)

인테리어 집중 투자 →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막대한 비용
(포토존, 디테일, 장치들이 사람을 끌어들임)

=> 시스템화된 경험 디자인


하이디라오 훠궈를 먹으며 나는 감탄했다.

놀라울 정도로 시스템화되어 있으면서도,

곳곳에 사람의 손길이 닿아 있었다.

운영은 백오피스가 아니라 프런트에서 일어났고,

그 운영은 곧 브랜딩이었다.


길거리, 가게마다 배치된 충전기가 있으며,

가장 힙한 동네에서는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람 뒤엔

늘 청소하는 사람이 들어가서 청결을 관리했다.

양꼬치를 위해 115팀이 3시간 기다릴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결국 '경험'이었다.

실시간으로 주방의 CCTV를 그대로 중계하고,

대기, 주문, 안내, 서빙, 뒷정리까지 전체가 매뉴얼처럼

시스템적으로 정교하게 돌아가면서, 또 사람이 관리한다.


상해는 공간과 경험 자체를 광고, 마케팅으로 만들었다.

명품 브랜드조차 뮤지엄, 카페와 포토존을 만들며 현지화했다.

샤넬도, 프라다도, UGG도, 르라보,

모두 '찍히고 경험하는 공간'을 디자인하고 있었다.


반면 서울의 공식은 다음과 같다:

비싼 인건비 → 시스템 자동화

신축 선호 → 건축 비용에 투자

셀럽 광고 → 마케팅 비용에 집중


결과는 명확했다.

상하이는 '공간 자체가 마케팅'이 되는 생태계를 만들었고,

우리는 '유명인이 마케팅'을 하는 구조를 택했다.

어느 쪽이 더 지속가능할까?



컨벤션 기획에 적용한다면 어떤 고민을 해야 할까 생각했다.

우리는 어떤 비용 구조 위에서 경험을 설계하고 있는가?

예산의 30%를 연사 섭외에 쓰는가,

공간 디자인에 쓰는가,

참가자 경험 설계에 쓰는가?

비용 배분은 곧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경험의 본질을 드러낸다.



4. 브랜드 일관성과 로컬라이제이션의 밸런스

신천지에서 한국 브랜드들을 봤다.

젠틀몬스터는 꽤 이목을 끌고 있었다.

하지만 무신사는... 너무 한국스러웠다.


명품 브랜드들조차 카페를 만들고

포토존을 설치하며 현지화하는 도시에서,

무신사의 접근은 달랐다.

한국에서 통했던 방식을 그대로 가져왔다.


타 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비용 구조'와

'경험 생태계'를 이해하는 것이다.


상해는 인건비를 활용해 사람을 더 쓰고,

건물은 역사를 살리고,

인테리어에 집중 투자해 공간 자체를 마케팅으로 만든다.

이 공식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콘텐츠도 맥락을 잃는다.


컨벤션도, 아마 팝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서울에서 통했던 구조를, 상해에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다.

참가자들이 기대하는 '경험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반면, 마지막 날 들른 PEET'S COFFEE에서의

경험은 또 다른 고민을 안겨줬다.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의 매일 아침 먹던

차이라떼와 당근케익을 먹을 수 있다는

설렘으로 찾았지만 둘 다 없었다. 실망스러웠다.


이것이 로컬라이제이션일까,

아니면 브랜드 일관성의 부재일까?


스타벅스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기본 메뉴로 신뢰를 쌓으면서도,

현지 메뉴를 추가해 로컬의 취향을 반영한다.

상해에서도 기본 라떼와 아메리카노는

그대로 있고, 그 위에 현지 메뉴가 더해진다.

그리고 리저브 로스터리 같은 플래그십으로

'특별한 경험'까지 제공한다.


피츠커피는 달랐다.

원래 있어야 할 메뉴가 없었다.

정답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기본을 유지하면서 레이어를 더하는 것'과

'기본을 바꾸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

컨벤션도, 브랜드도, 경험도 마찬가지다.

그 도시의 '시간의 레이어'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위에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지,

기존의 것을 지우는 게 아니라는 것.



5. 완성하지 말고, 여백을 남겨라

5일의 상해는 길어보였지만 짧았다.

아팠던 첫날, 115팀 대기로 포기한 양꼬치,

비로 인해 못 간 예원 정원와 콜롬비아 서클,

그리고 마지막 날 아침 공항 가기 전에야 먹은 지엔삥.

하지만 이 아쉬움이 오히려 좋았다.

상해는 나를 다시 오고 싶게 만들었다.



QR코드와 앱으로 완벽하게 시스템화되어 있어

현지인과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아도

여행이 가능한 효율성 속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3시간씩 줄을 선다.


직관을 따라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재즈 공연을 보러 간 하우스오브블루스앤재즈는

역사적 공간이었지만 공연은 형편없었다. 관광객용이었다.

하지만 운좋게 들어간 히든바 Speak Low에서의 칵테일은 황홀했다.

비를 피하고자 우연하게 들어간 빵집에서 최고로 즐긴 빵맥,

대기가 길어 포기한 바 대신 만난 Pre-opening 바,

계획이 틀어진 순간들이 오히려 가장 특별한 경험이 됐다.



이국적이면서도 편안하고,

시스템화되어 있으면서도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고,

트렌디하면서도 역사가 살아있는 곳.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좋은 컨벤션은 모든 것을 보여주지 않는다.
다시 오고 싶게 만드는 '여백'을 남긴다.



모든 세션을 완벽하게 채우는 것보다,

참가자들이 스스로 발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계획된 네트워킹보다, 우연한 만남이 일어날 수 있는 틈을 만드는 것.

완성된 경험이 아니라, 참가자 각자가 완성해가는 경험.


데이터와 시스템은 중요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직관이 이끈 순간'들이다.


상해는 나에게 그것을 가르쳐줬다.



시간의 레이어 위에 경험을 쌓다

호텔 근처 작은 칵테일바에서 이영지 노래가 나왔다.

상해에서, 한국 래퍼의 노래를. 이질적이면서도 자연스러웠다.


그것이 바로 '레이어'의 힘이다.


1920년대 석고문 위에 2025년의 카페가 서고,
쌀이라는 전통 위에 마티니 기법이 쌓이고,
역사적 공간 안에서 K-POP이 흐르는 것.


컨벤션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것은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 아니라,
참가자들의 기억과 기대 위에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는 새로운 경험이다.


상하이에서 돌아온 나는,
다음 컨벤션을 다르게 기획할 수 있을 것 같다.

건물을 새로 짓지 않고, 역사가 있는 공간을 찾고,
셀럽/인플루언서 광고 대신, 참가자들이 경험하고 찍어 퍼뜨리고 싶은 공간을 설계하는 것.
완벽한 타임테이블 대신,

우연한 만남이 일어날 틈을 만드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은' 컨벤션을 만들고 싶다.

왜냐하면 좋은 경험은 완성되지 않는다.

레이어처럼 쌓인다.


P.S. 틱톡의 나라에서, IT강국의 면모를 보면서도,

결국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일본 바텐더가 만든 칵테일 한 잔이었다.

기술은 사람을 모으지만, 사람은 경험을 기억한다.

그것이 내가 상해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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