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거리에 울려퍼지던 크리스마스 캐롤이 어느 해인가 부터 어떤 연유로 들리지 않게 되면서 예전의 감성을 뺏긴 느낌이었는데 이즘은 몇 몇 거리나 가게에서 또 주변에서 들리는 캐롤을 들으며 잊고 있던 레트로 감성이 뭉클 거린다.
더불어 문득 떠오르는 한 사람.
그는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고 충분한 재물을 누리고 살 수 있는 수준이었는데 사람들에게는 인색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다. 한 해의 축제 같은 크리스마스이브날도 여느 평범한 날과 무엇이 다르냐며 다른 사람들을 축하하기는 커녕 오히려 마음을 나누려는 사람을 거부하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런 그에게 오래 전 세상을 달리 한 친구가 나타나 그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주는 유령의 존재를 전하고
그 유령과 함께 들여 본 과거와 현재,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통해
삶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에 대해 알게 되고 주변인과 제대로 나누며 진짜 행복을 찾아 가는 사람.
찰스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캐롤의 스크루지 이야기이다.
너무나 잘 알던 그리고 늘 잊지 않으리라 하던 그 이야기는 이미 조금은 진부한 스토리로 넘어가 있는 듯 하지만 실재로 우린 늘 그렇게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 그리고 미래에 나에로 공간 이동을 하기도 한다.
과거의 불행이 지금의 나의 컴플렉스가 되고 지금의 내 삶이 미래의 내 행복을 주도할 때 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실 고민이 된다.
스크루지처럼 동생과 구걸에 가까운 삶을 살며 소중한 동생을 잃은 것은 아니어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도 평범한 내 삶에서 내가 제대로 모티베이션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나의 현실보다 타인의 고난 스토리인가?
죽을 때 아무도 자신을 돌아봐 주지 않고 오히려 죽음을 기뻐하거나 잘 되었다고 하는 미래를 본다고 해서 지금으 나를 어떻게 변화 시킬 수 있나
그렇게 현재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스크루지를 미워해야 마땅할 듯한 조카는 오히려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린다.
과거의 그를 보고 측은지심을 느끼고 미래의 그의 모습에 안타까움과 연민을 느끼며 현재의 그를 안타까워 하는 조카의 기도를 들으며 결국 알게 되는 것은.
삶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여야 하며 그 함께를 위해 내가 내어야 하는 마음과 자리가 얼마만큼이어야 하나를 돌아보게 한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타인과의 동행들로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이라면 분명 나의 오픈이 부족하고 더 공감하고 나누고 몰입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다.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누구와 함께 하고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가 가장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가 아닐까.
실상 난 스크루지의 작가적 관점에서이 준비된 성찰과는 다른 관점으로 누군가 주변에 두려워서 몰라서 혼자인 사람을 드러내고 돌아보게하고 잠재된 무언가를 끄집어 내어 행복할 수 있게 하는 코치가 되고 싶고 되고자 하는 데
그 이전에 나의 다듬어지지 않은 스크루지적 감성은 없는지
있따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변화하고 성장 시킬 지. 이즘은 그렇게 자기 성찰을 하는게 바쁜 일이다.
돌아보면 유령으로라도 돌아와 과거 현재 미래를 돌아보게 해주는 그런 친구조차 없는 부족한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그 정도는 아니니 혼자라도 헤쳐나가는 정도인거 같기도 하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여야 하고 나눌 수 있는 깜량도 되어야 하고 늘 나 자신을 제대로 돌아 볼 줄 알아야 한다.
올 크리스마스가 오기 전까지는 내 안의 스크루지를 제대로 잘 보내어 보고 싶다. 어디서 부터 시작해보아야 할까......
메리 남은 2019. 해피 뉴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