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이야기 3] 새로운 oo장이 부임하다
소설
오월의 둘째날, 새로운 OO장님이 부임하셨다. 이 지국에서 이미 십 여년 전에 근무하신 적이 있으므로 열 분 정도의 선생님과 잘 아시는 사이인 것 같았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카톡 메시지에 언제나처럼 몇 명 신실하고 적극적인 분들만 답을 했다.
원래 이 단체방의 분위기는 그다지 화기애애하진 않다. 대체로 몇몇 분들 위주로 간간이 대화하거나 별 의미도 없고 눈이 아프게 요란한 이모티콘이 올라오곤 한다.
단체방이란 보통 수십 명의 사람이 보는 문자이므로 조심스럽다. 그들이 모두 봐야 하는 내용인가 싶기도 하여 문자를 올리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고. 단체방이란 몇몇은 한참 즐거운 대화가 오갈 수도 있으나 관심 없고 일상이 바쁜 다른 사람들을 방해하고 짜증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는 마의 공간이 아닌가?
단체방에서 대화가 시작되면 기억난 듯 방을 나가는 사람들이 꼭 있다. 도둑이 제발 저리고 뜨끔하여 ‘헉, 그만 떠들어야겠다.’ 싶은 순간.
S는 대충 문자를 훑어보거나 넘기며 관망하고 있었다. OO장은 아직 직접 마주하지도 않았는데 엄청난 에너지와 사교성이 느껴진다. 부담스럽다.
다음 날 S는 마음이 급하여 OO장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저는 좀 답답한 상황이어서 앞으로 OO 선생님과 상의하셔서 OO지역 수업을 좀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OO장은 두 번의 문자가 오간 후 전화를 걸어서 사무실에서 만나자고 했다.
S는 출근일 하루 전이지만 이분을 알현하려면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조용할 때 가는 게 상책이다 싶어서 얼른 늦은 점심을 먹고 채비를 마친 후 사무실로 갔다.
OO장은 온라인에서는 만난 경험이 있는 본부에서 다시 지국으로 오신 분이다. 기골이 장대하고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리는 삼국시대로 표현하자면 장비와 같은 여장부 스타일이셨다.
두 명의 팀장이 있는 방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것 같아서 자리를 옮기자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다.
“혹시라도 다른 분들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고 마음 상하게 하는 대화가 오갈 수도 있어서요.” 다른 방으로 들어서며 S는 조용히 OO장에게 말했다.
“그래요? 제 목소리가 커서 다 들릴 텐데요.” OO장은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S는 그간의 심적인 고통을 OO장에게 토로했다. 학생 모집이 전혀 되지 않은 상황, 월세 지원이 되지 않은 연유와 비하인드 스토리, 전 OO장의 소통 불가한 대화 방식 등등. 삼박 사 일을 떠들어도 끝나지 않을 이야기들이 천일야화처럼 흘러나왔다.
OO장은 한참을 들었으나 중간에 말을 끊었다.
“자, 선생님 여기까지 제가 선생님 말씀을 다 들은 거로 하고요. 앞으로 우리 새로 오픈한 마음으로 시작해봅시다.”
이십몇 년을 근무하셨다는 애사심 가득하신 OO장에게 S는 마지막 일침을 놨다.
“저도 OO회사 믿고 들어왔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알만한 이 회사가 이렇게 회원모집이 부진할 줄 알았을까요?”
오늘 나눈 대화가 머릿속을 떠돌아 밤잠을 이루지 못했지만 할 말은 다 한 것으로 여한이 없고 만족스러웠다.
S는 한 시간 반을 떠들었으니 대부분의 이야기보따리는 풀어놓은 셈이었다. 그간의 불신과 답답한 소통으로 인해 새로운 OO장이라고 해서 그닥 신뢰가 가진 않았다.
하지만 무슨 다른 패가 있는가? 다시 한번 믿고 젖먹던 힘을 짜내서 공부방 학생 모집에 박차를 가해보는 수밖에는? 아직 근무한 지 일 년이 되지 않았으니 얼토당토않은 위약금을 물고 그만둘 생각은 없지 않은가?
다음날 출근일에는 예년과 다르게 전원 출근을 하는 희한한 광경이 펼쳐졌다. 자리가 꽉 찰 만큼 빽빽하게 앉은 선생님들에게 OO장은 미리 준비한 열정적인 교육을 시연하셨다.
본사에서 제공되는 사 년제 대학을 나온 자도 이해하기 어려운 온라인 교육을 틀어놓고 멍을 때리게 하는 것보다는 나았으나 한 시간 반이 넘도록 ‘우리는 하나다’라는 반복되는 정신 교육(?)을 하는 건 무척 피곤했다.
이 회사는 고상한 교육회사라기엔 다분히 실적을 철저히 강조하는 다단계나 보험 회사 같은 분위기가 흐른다. 교육이 끝나고 보니 변변히 화장도 하지 못하고 나온 것 같은 몇몇 선생님들의 얼굴이 핼쑥하다.
“오랜만에 맨날 딴짓하다가 집중해서 들으니 피곤하네요.”S는 너스레를 떨면서 선생님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 피차가 일반이요, 초록은 동색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씁쓸한 웃음으로 화답하는 쌤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무리 감동적인 메시지도 너무 길어지고 목소리가 높으면 보통의 사람은 집중력을 잃는다. 연설이든 교육이든 짧고 굵게 핵심을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 않은가?
“아이고, 엉덩이가 다 아프네요.” 첫 OO장과의 대면이라 옆에 앉은 샘도 신체의 피곤함을 토로하셨다.
“왔다 갔다 엉덩이 운동이라도 좀 해보세요.” S는 농담하며 마주 보고 킥킥 웃었다.
앞으로 과연 S의 공부방에는 OO장의 눈부신 능력으로 찬란한 햇빛이 비쳐올 것인가? 눈 앞에 흐릿한 먹구름이 계속 끼어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