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나도 서울의 북서쪽 북가좌동이라는 곳의 골목길 사이에 있는 단독주택에서 살았다. 골목에서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소꿉놀이나 고무줄 놀이를 하고 스카이 콩콩도 타고 개천가에서 스타킹을 적시며 잠자리도 잡았다. 피아노와 주산 학원을 잠시 다녔지만 초등학교 시절은 거의 골목이나 뒷산에서 뛰어 놀면서 보냈다.
동생의 켈리그라피 작품! 훌륭하다 화이팅!
급식이 없던 시절이어서 항상 투박하고 커다란 보온 도시락통을 가지고 다녔다. 우리 엄마는 사실 그렇게 요리를 잘하시는 편이 아니어서 함께 도시락을 먹는 단짝 친구가 싸온 도시락 반찬이 더 기대되기도 하였다. 도시락 반찬은 분홍색 소시지(갑자기 먹고 싶다 쩝쩝)와 빨간 오징어채 볶음이 자주 나왔고.
그 당시는 꼭 감자나 고구마로 간식을 싸오도록 했는 데 다른 친구들은 대부분 기름에 튀긴 바삭한 것이었는 데 우리 엄마는 항상 어정쩡하게 프라이팬에 구운 고구마를 싸주는 게 불만이었다. (매일 도시락을 싸주었던 엄마는 얼마나 귀찮았을까)
나는 연년생 여동생이 한명 있다. 늘 한방에서 붙어 자곤 했는 데 여름날에는 방안에 가득 차는 커다란 모기장을 치면 그 위로 점프를 하면서 무척 신이 났었다. 겨울에는 위풍이 무척 센 집이어서 이불밖으로 나온 코는 시렸고 계속 연탄을 땐 방바닥은 뜨끈뜨끈하였다. 손가락 한뼘은 족히 되는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자기 전 동생과 티비에서 본 드라마를 재연하는 연극 비슷한 것을 했다. 엄마한테 얼른 자라고 혼이 나면서도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는 지 이불 속에 숨어서 깔깔거렸다.
그 당시에 넉넉한 청자켓에 청바지 패션이 유행이라 나도 늘 그렇게 입고 다녔었는 데.한동안은 서로 새로 산 예쁜 옷을 입겠다고 옥신각신하다가 동생이 내 새옷을 자꾸 몰래 입어서 한바탕 격렬하게 싸운 이후로 다시는 서로 옷을 같이 공유해서 입지 않게 되었다.(드라마에 나오는 살짝 미친 것 같은 언니 역할이 바로 나)
고등학교 때 하이틴 로맨스 소설도 은근히 혼자 부끄러워 하면서도 열심히 읽었고 대학 때 친구들과 수업을 제끼고 노량진에 있었던 동시상영 영화관에 가기도 했다. 드라마에 나온 영화 '투문정션'은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으나 왠지 제목이 익숙하다.
어린시절 살던 골목길 사이의 단독주택에는 초봄이면 눈부시게 하얀 꽃이 피어나던 목련나무도 한그루 있었고 다닥다닥 빨간 열매가 끝없이 열리던 앵두나무도 있었는 데.언젠가 가을날에 코스모스 꽃에 반하여작은 마당에 개천가에서 뿌리채 뽑아온 코스모스를 잔뜩 심기도 하였다. 나중에 할머니가 싹 갈아엎으시고 콩밭을 만드셨지만.
그 골목길 모퉁이의 그 집에는 아직도 비슷한 풍경에 정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다시 한번 어린아이가 되어서 그 골목에서 아무 시름없이 뛰어놀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