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려주세요, 엄마

내가 다시 갈때까지

by 사각사각

집으로 갔다. 엄마는 담담하게 나를 맞이한다. 초저녁잠이 많은 엄마는 일찍 잠자리에 들고 나는 동생과 밤늦도록 수다시간을 가졌다. 새벽녁에야 겨우 잠자리에 든다.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핸드폰을 손에 꼬옥 쥐고 뒤척였다. 아침부터 엄마가 일찍 일어나 달그닥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휴우~ 아직 일어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아침 식사를 차리는 엄마는 분주히 움직였다. 칠순이 넘은 엄마는 쉽사리 자리에 앉지 못하고 손수 아침을 준비한다. 나에게 이것저것 시키지도 않고서. 냉장고에서 끊임없이 반찬 거리가 쏟아져 나온다. 어린 시절 나의 기억에 엄마는 요리를 아주 잘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시장에서 사온 것이든 엄마가 서툰 솜씨로 미리 만들어 놓은 반찬이든 나에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 무엇을 먹든 충분히 행복하다. 엄마가 한 상 그득하게 펼쳐 놓은 반찬을 연달아 칭찬하면서 밥을 먹었다. 나는 오랜만에 엄마와의 오붓한 시간에 버무려진 은근한 사랑을 꼭꼭 씹어먹고 있으니까.


밥을 먹은 후에도 엄마는 계속 먹을 것을 내온다. 어린아이처럼 누가 먹을 새라 냉장고 깊숙이 꼭꼭 숨겨놓은 간식도 꺼내온다. 잣이나 호두 같은 견과류나 말랑말랑한 곶감 같은 혼자 아껴서 먹는 것들도 서슴없이 가져다 준다. 엄마와 나는 살가운 말을 많이 하진 않지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엄마의 애틋함을 맛본다. 엄마와는 아무 말없이 함께 있어도 편안하다. 우리는 오랜 질곡의 시간을 함께 했고 엄마는 언제든 나의 편이고 항상 나의 평안을 기도하고 있음을 알고 있으니까.


아침을 먹고 나면 엄마는 TV를 켠다. 하루 종일 비슷한 드라마 속의 사람들은 웃고 울고 싸운다. 엄마는 “혼자 있는 날에 TV의 소음 없이는 적막하여 견딜 수가 없다.” 하였다. 귀가 조금 어두워진 엄마는 볼륨을 한껏 올려놓았고 귀가 살짝 아파올 정도이다. 밥을 먹고 엄마 옆에 앉아서 함께 드라마를 본다. 엄마가 자기 일인 듯 신나게 설명해주는 드라마의 줄거리를 듣고 그와 유사한 젊은 시절 엄마의 혹독한 시집살이에 대한 푸념을 듣는다. 이미 녹음기를 틀어놓은 듯 여러 번 들은 이야기지만 마치 처음 듣는 것처럼. 함께 출연한 배우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그들의 사생활도 아는 대로 꺼내놓는다. 꽃다운 나이부터 출연한 배우들은 이제 중년의 나이를 지나고 흰머리가 희끗희끗하다. 지지고 볶는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엄마 곁에 앉아서 이런저런 가벼운 대화를 나눈다. 간간히 드라마에서 우리의 살아온 이야기로 넘어올 때도 있고 엄마의 삶에 드라마 장면이 오버랩 되기도 한다. 드라마와 우리의 삶이 한데 얽히면서 엄마와 나의 시간은 공유되는 것이다.


이틀 밤을 자고 함께 밥을 먹고 저녁이 되었다. 이제 이야기도 할 만큼 하였고 똑 같은 드라마도 두 번씩 보았다. 잠시 조용한 방에 숨어 들어가 혼자 책을 한 권 읽었다.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쓰여진 여행기라 한 시간 만에 뚝딱 읽고 나왔다. 엄마는 계속 떠들어대는 TV를 그대로 켜놓은 채로 소파에서 졸고 있었다. 엄마가 깰 새라 숨을 죽이고 침대에 누워 하릴없이 핸드폰 검색을 하였다. 엄마의 침대에서는 아련하게 기억나는 희미한 엄마만의 향기가 난다. 얼마 후 나가보니 낮잠에서 깨어난 엄마는 다시 드라마 삼매경이다. 불도 켜지 않은 어두운 거실에서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는 엄마의 한껏 작아진 모습… 굽은 등과 어깨가 왠지 애잔하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하는 마음을 돌려 다시 주저앉는다. 곧 동생이 집으로 돌아오겠지만 그 때까지 혼자 어두운 공간에 TV를 말동무 삼아 오도카니 앉아 있을 엄마가 안쓰럽다. 한껏 높은 목소리로 제안한다.


“ 엄마 우리 저녁 먹으러 나갈까?”


아직 배가 고프지도 않았지만 엄마가 시장한 듯 하여 얼른 집을 나섰다. 엄마는 한사코 말리 지만 정갈한 밥 한끼 정도는 꼭 사고 싶었다. 엄마가 먹고 싶으신 것을 정하라 하였다. 갈비탕을 먹을까 오리고기를 먹을까 하며 일단 가보자 하신다. 엄마는 내가 오후에 먹고 싶다고 하던 치킨 가게에 불이 켜진 것을 보고 치킨 한 마리 사서 들어가자고 하였다. 엄동설한 날씨가 매섭게 추우니 음식점까지 걸어 가는 것도 힘에 부치는가 보다.


“그래~ 엄마."


집 앞 길가에서 지글지글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먹음직스럽게 구워지고 있는 녹두전을 보고 엄마가 반색을 하였다. 방금 구운 녹두전 두 장과 치킨 한 마리를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와 머리를 맞대고 다정하게 녹두전과 치킨을 먹었다. 다시 무심히 흘러가는 한 겨울의 적막하고도 캄캄한 저녁 시간…

저녁을 먹고 나서도 집에 바로 돌아가기는 망설여진다. 밖은 이미 어두움이 가득하고 버스를 갈아타고 집에 가려면 두 시간 가까이가 걸린다. 마음이 조급해졌다. 하지만 엄마가 혼자인 것이 나의 마음을 계속 붙잡는다. 엄마가 더 이상 어서 가라고 귀가를 재촉하는 말을 하지 않으니 더 일어서기가 힘들었다. 엄마는 언젠가부터 내가 집에 빨리 돌아가는 걸 아쉬워 하는 눈치이다. 매년 작년과는 다르게 엄마는 늙어가고 어린 아이처럼 점점 약해지는 것이다.


무거운 마음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버스에 올라 창 밖을 본다. 십 수년을 살았던 익숙한 거리로부터 서서히 멀어져 간다. 수없이 오고 갔던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대학가 옆에 다닥다닥 정답게 붙어 있는 가게들이 스쳐간다. 청담대교 위에서 보는 놀랍게도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한강의 불빛..문득 눈물이 날 것 같다.

무정한 버스는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리며 서서히 엄마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마음은 아직도 미적거리며 엄마의 곁에 남아 있고자 하는데..


서울을 떠난 이후로는 엄마를 자주 만날 수가 없다. 무심하고 게으르며 때론 바쁜 나는 수개월에 한번씩만 엄마를 찾아간다. 엄마는 조금씩 늙어가는 데 나는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어쩌면 그저 보고 싶지 않은 지도 모른다. 나에게 엄마란 어린 시절에 내가 바라 보던 중년 여인의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더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다. 동그랗고 네모진 얼굴과 날씬한 팔다리와 춤이라도 추려면 어정쩡한 몸동작, 때로는 대책 없이 밝고 세상 일에 어수룩한 성격이 닮았다. 꼿꼿하게 서서 이를 닦는 뒷모습까지도 매우 닮았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나를 닮은 엄마를 사랑할 수 밖에 없다.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하였고 자기 것을 기꺼이 희생하여 나를 길러낸 나의 엄마… 엄마와 나는 본래 하나였고 나는 엄마의 몸 안에서 떨어져 나왔으니 나는 본능적으로 엄마를 찾아 항상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엄마를 그리워하면서도 엄마와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하다니 이율배반적이다. 꽃피는 봄이 오면 엄마와 근교로 나들이라도 가서 벚꽃 가득한 거리를 팔짱을 끼고 걸어봐야겠다. 엄마와 내가 함께 걸어갈 시간이 얼마나 더 남아있는지 정확히 잴 수가 없으니깐.

엄마가 내 곁에 있을 때 나는 부지런히 엄마를 만나러 가야 한다.
기다려주세요.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