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은밀한 즐거움

나는 글을 쓴다. 고로 존재하고 소통한다.

by 사각사각

겨울방학이다. 요즘 나의 하루 일과는 매우 단순하다. 수업이나 약속이 없으므로 일단 아침 시간이 매우 게을러졌다. 얄팍한 핑계임이 분명하지만 날씨가 너무 추우므로 별다른 일이 없는 한 침대에서 바로 일어나기가 싫어졌다. 취침 시간이 새벽 1시 정도로 늦어져서 기상시간 자체가 늦기도 하고 잠이 깨어도 핸드폰으로 검색을 하거나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거나 하면서 한껏 게으름을 피운다. 하지만 그것도 서너 시간이 지나면 한계에 이르는 법.. 자리를 박차고 나와서 샤워를 한다.


샤워를 하는 것은 집에 있다고 하여 너무 지저분한 꼴로 있으면 기분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더욱 더 외출을 하려는 욕구도 사라지게 되고. 사실 겨울방학도 2주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매우 지루해지고 급격하게 사회생활이 줄어들면서 약간의 우울감이 찾아온다. 매일 의무적으로 가야 할 직장이 있다는 것은 삶의 축복 중에 하나라고 생각된다. 정기적인 일이 없다는 것은 내 자신이 무익하다는 생각이 들기 쉽고 급속한 사회와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


한 며칠간은 집안에서 꼼짝하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애써 게으름과 우울감을 떨쳐내고 나는 집을 나선다. 목적지는 집에서 걸어서 20분정도의 거리에 있는 도서관일 때가 많다. 도서관에 가서 나란히 서 있는 여러 개의 서고 사이를 이리저리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눈에 띄는 책을 대여섯권 골라온다. 실내에서는 따스하게만 느껴지는 창 밖의 햇살을 가끔 힐끔거리면서 따뜻한 집에 자리 잡은 고양이처럼 꼼짝 않고 골라온 책들을 마음껏 읽는다.


때로는 목적지가 집 근처에 늘 자주 가는 커피점일 때도 있다. 이곳은 일층과 이층으로 나누어져 있는 데 조용한 주택가에 있어서인지 항상 손님이 많지 않다. 거의 반정도의 자리는 늘 비어있고 원하는 시간 동안 쭉 눌러앉아 가져온 책 두어권을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써도 전혀 눈치가 보이지 않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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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는 이유가 무엇일까? 일단 나는 머리 속에 생각이 넘쳐날 때가 많고 글을 쓰고 싶은 열망에 늘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지 않을 때는 여유로운 시간을 때우고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서 번화가의 여러 상점들을 심드렁하게 돌아다니며 쇼핑을 주로 하였다. 현재는 소비를 최대한 줄이고자 노력하고 있어서 글을 쓰는 것이 무엇보다도 안성맞춤이다. 커피 한잔과 도넛 몇 개의 값만 지불하면 하루 종일 즐거운 책 읽기와 글쓰기를 할 수 있다니 너무 행복하지 않은가?


어린 시절부터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였다. 나의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들이 세계명작 동화집 이나 위인전들을 전집으로 구매해 주는 것이 유행이었었나 보다. 서고에 나란히 서 있는 책이 수십 권이 되므로 읽을 거리가 넘쳐났다. 숫기 없고 얌전하기만 해서 집에 주로 머무르며 어머니 일을 잘 도와드리는 착한 딸이었고 날마다 책 속에 빠져서 살았다. 책 한 권만 있으면 겨우내 식량을 미리 비축해둔 다람쥐처럼 야금야금 책을 읽으면서 하루가 다 꽉 찬 듯 행복한 시절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일기쓰기’를 매우 강조하시는 분이셨다.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써서 제출하여야 했기에 하루 일과의 이야기를 동화처럼 엮어서 일기를 썼다. 아마도 동화책을 많이 읽어서 자연스럽게 일기도 대화체를 넣어서 쓴 것 같다. 선생님은 내가 무척 글을 잘 쓴다고 날마다 칭찬하시며 내 일기를 학생들 앞에서 크게 읽어주곤 하셨다. 그때 거의 눈에 띄지 않고 평범했던 아이였던 나는 그 일이 무척 자랑스러웠고 더욱 선생님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일기쓰기에 매진했었다.(아마 공개가 되어도 그다지 부끄러운 내용은 없었나 보다) 그 때 쓴 일기가 공책으로 12권정도가 된다. 방학 전날에는 정전이 되어서 촛불을 켜고 힘들게 울면서 쓴 기억도 있어서 나중에도 버리지 못하고 보관하게 되었다.


아버지는 신문사의 편집기자로 일하셨다. 꽤 큰 신문사에서 상당히 높은 직책에서 일하신 일도 있지만 연세가 드신 후에는 아주 조그만 신문사의 편집장을 맡게 되셨다. 80년대의 가장으로서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였던 아버지는 신문에 칼럼도 쓰셨다. 그러나 그 시절의 전형적인 아버지답게 새벽부터 출근하여 밤늦게 퇴근하시고 주말에는 주로 잠을 보충하셨기 때문에 나와는 대화가 많지 않았다. 살가운 대화 대신 항상 나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사를 오려서 나의 방에 조용히 가져다 놓곤 하셨다. 그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하고 싶은 말 이였고 나에 대한 애틋한 애정표현이었던 거다.


그 후로도 고등학교 시절에 시를 한편 써서 학교에서 상을 받은 일이 있다. 전교생이 참석한 운동장 조회에서 높은 단상에 올라가서 교장선생님께 상을 받다니…그 당시에도 조용하고 존재감이 크지 않던 나에게는 매우 뿌듯했던 기억 중의 하나이다. 여기까지가 나의 글쓰기의 역사이자 뿌리라고 해야 겠다.

그 후로도 성인이 되어서도 작은 독서감상문 대회, 글쓰기 대회에서 간간히 상을 받았다.. 그건 조그만 부상이 주어지거나 큰 댓가가 없다고 해도 은근한 기쁨과 성취감을 주는 일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되는 대로 글을 쓰고자 했다.


그러므로 글을 쓰는 것은 나의 은밀한 취미생활 중에 하나이다. 사실 특별한 재능이나 취미는 없다. 운동에는 영 소질이 없어서 걷기, 등산 정도만 좋아하고 피아노나 기타 같은 악기도 배워보았으나 타고난 소질이 없는 지 능숙하게 하지는 못한다. 여행은 매우 좋아하나 충분한 경비가 없으면 힘든 일이다. 그래도 어느 정도의 여유만 있으면 2,3년에 한번씩은 훌쩍 비행기를 타기는 한다. 글쓰기는 언제 어느 때고 비용 부담 없이 계속 할 수 있으니 매우 권장할만한 취미생활이라고 해야 겠다.


글쓰기를 해서 좋은 점은? 나의 삶과 시간을 의미 있게 채워준다는 점이다. 쇼핑을 하거나 잠을 자거나 티비를 보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글을 쓴다. 글을 쓰는 동안 얽혀 있는 생각이 정리되고 흥분했던 마음이 차분해지며 조곤 조곤 지친 나의 마음을 스스로 위로할 수도 있다. 그러하니 글쓰기는 늘 언제고 수수한 모습으로 만나서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절친한 친구와 같은 존재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점은 글쓰기도 하나의 ‘연습’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어 습득의 과정과비교해보면 영어도 ‘듣기와 읽기’는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교재를 이용하면 쉽게 실력이 느는 편이다. 하지만 ‘말하기, 쓰기’는 직접 영어로 대화를 해보고 글로 써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나의 경우에도 외국에 장기간 체류한 경험이 없어서 영어로 ‘말하기’는 20대 전후만 하여도 영 신통치 않았다. 나의 말하기는 십여 년이 넘도록 출석한 영어예배에서 수많은 외국인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서서히 늘었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글쓰기도 날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계속해야 한다. 마치 야구선수가 하루에도 수백 번씩 똑같은 타구 연습을 하는 것처럼 부단히 쓰고 다시 읽어 보고 수정하는 반복과정이 꼭 필요한 것이다.


글쓰기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인정과 소통’의 욕구 때문일 것이다. 이건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 스토리, 인스타그램 같은 각종 SNS를 하는 것과도 비슷한 이유이다. 자신의 사진과 글을 올리고 ‘좋아요’가 얼마나 눌러졌는지 체크하고 다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코멘트를 하는 과정을 통해서 그들과 소통을 계속 하려는 강한 욕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개인주의가 강한 현대인의 특성상 직접 사람들을 얼굴을 마주하고 만나는 시간은 적다. 그러나 외로움은 잊을만하면 시시때때로 찾아온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다소 소극적이고도 자유로운 SNS 소통은 계속 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나의 진실한 내면의 경험을 주로 쓰고 싶다. 그것만큼 내가 잘 알고 허심탄회하게 쓸 수 있는 재료는 없을 것이다. 소설이나 시를 써 보려고도 했지만 그건 타고난 언어와 이야기에 대한 천재적인 감각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아주 잔잔하지만 따뜻한, 매우 평범한 매일의 일상에서 느끼는 삶을 찬미하고 싶다. 보통 사람들의 위대함과 소중함에 대해서 쓰고 싶다.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굴하지 않는 긍정을 전파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겪는 인생의 고통과 슬픔에 대한 작은 위로이고 싶다.


그래서 결국 글쓰기는 끊임없이 계속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철학자 데카르트 님의 말을 마음대로 살짝 인용하여 쓰자면 다음과 같다.

“나는 글을 쓴다. 고로 존재하고 소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