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치민 도착 다음날 씨클로 운전사에게 사기를 당한 후 내 카드는 은행 ATM에 걸려버렸다. 마침 토요일이라 은행은 문을 닫았고 카드를 다시 찾으려면 월요일 아침에 오라고 하였다.
현금도 거의 없고 카드도 사용할 수 없게 되어 나는 패닉 상태에 들어갔다. 혹시나 카드가 다시 나와서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이 사용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호텔 직원에게 상담한 결과 카드는 일단 카드사에 전화하여 지급정지를 하고 다른 카드로 출금을 하려고 했는 데 여의치 않았고 American express 카드여서 신한 은행에서만 출금할 수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호텔 직원 분들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정말 신속하고 친절하게 여러 정보들을 알려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해외에서는 visa나 master 카드가 좋을 듯)
호텔 바로 앞에 경복궁이라는 한글 간판이 걸린 음식점이 있어서 들어가 보았다. 사장님을 만나서 한국말로 시원하게 오늘 하루의 스펙터클한 사연을 하소연한 후에 혹시 카드로 결재하고 현금을 좀 융통(?)할 수 있는 지 여쭤보았는 데 오픈 하신지 얼마 안되어 카드기 자체가 없다고 난감해 하셨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나는 일단 저녁으로 맛있는 비빔밥을 먹고 신한 은행 카드기까지 걸어가보기로 하였다.
음식점을 나오는 데 사장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셨는지 식사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셔서 깜짝 놀라기도 하고 매우 고마웠다. 해외에서 어리버리 하는 동포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해 주시겠다는 따뜻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래도 만원 짜리를 한사코 내고 한결 기분이 좋아져서 오토바이 소리 가득한 저녁 거리를 걸어 신한 은행 ATM에 가서 무사히 출금도 하였다.
다음날은 호텔에 문의하여 메콩강 일일 투어에 참여하기로 하였다. 혹시 일일 투어를 원하신다면 머물고 계신 호텔에 문의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다음날의 투어에 참여할 수가 있다. 다음날 호텔로 픽업을 오기 때문에 가장 편리한 단체 투어 참여 방법인 것 같다.
화창한 일요일 오전 나는 투어버스에 올랐다. 근처 호텔을 돌면서 예약한 투어 참가자들을 모았고 십 여명의 참가자들의 간단한 소개가 있었다. 이탈리아, 스페인, 에스토니아, 유럽 각국에서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서 매우 즐거웠고 화기애애한 시간이었다.
마침 출장을 오셨다가 홀로 투어에 참가한 중국계 독일분이 계셔서 자연스럽게 나와 짝을 이루게 되었다. 같은 동양권의 뿌리를 가진 사람이어서인지 통하는 점이 많았고 투어 내내 서로 사진도 찍어 주면서 다양한 주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메콩강 투어에서는 작은 노 젓는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는 과정도 있었는 데 저마다 논라를 쓰고 유유히 흐르는 강물과 주변의 무성한 코코넛 나무들을 구경하면서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섬으로 들어가면 각종 과일을 시식할 수 있고 커다란 생선튀김을 비롯한 맛있는 점심이 제공된다.
그리고 전통 악기와 음악을 연주하는 분들이 와서 잠시 공연을 하기도 한다. 나의 투어 짝꿍은 바이올린 연주를 하셔서 직접 전통 악기를 연주해 보기도 하였다. 점심 시간 후에는 나무 사이에 묶여 있는 해먹에 누워서 잠시 쉴 수 있는 시간도 있다.
아~ 그리고 마을에서 키우는 매우 커다란 구렁이도 관람할 수 있다. 나는 잠깐 쓰다듬어 주기만 하려고 했는 데 우리 가이드님이 갑자기 내 목에 구렁이 스카프를 둘러주셨다. 상당히 묵직하기도 하고 스믈스믈 움직이는 뱀의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으나 새로운 경험이었으므로 모두들 한번씩 둘러보며 즐거워하는 매우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베트남인 가이드 님께 어제의 사기사건을 구구절절 이야기 하였더니 다시 한번 길에서 덥썩 오토바이 택시나 씨클로를 타지 않도록 당부하였다. 나도 이제 조금은 만인의 호구를 벗어나 경계의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 사이에 신뢰가 없다는 것은 아쉬운 일이기는 하나 이해관계가 얽힌 인간관계에서는 항상 적절한 지혜로움을 발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쉬는 시간 짬짬이 각국에서 모인 투어 참여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혼자 온 여행이었지만 함께 할 수 있다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매우 감사하였다.때로는 혼자 다니는 여행이 외롭고 힘들기도 하지만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낯선 이들과의 만남도 그 자체로 여행의 큰 기쁨 중의 하나이다. 각국에서 온 새로운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이 어우러지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내 자신도 다시 돌아보게된다.
투어에서 돌아와서 다시금 맛있는 한국 음식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앞으로 더욱 번창하기를 빌어드렸다. 먼 타국에서 만나는 정겨운 모국어와 따뜻한 한국음식 한끼는 여행을 계속하게 해주는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준다.
나의 카드는 주말 동안 베트남 은행에 얌전히 모셔져 있었으므로 월요일 아침이 되어 찾으러 갔다. 관광객들이 여행을 할 때 가끔씩 현금을 출금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카드가 기계 안으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한다고 하니 혹시 이런 날벼락을 당해도 너무 놀라지는 마시기 바란다.
나는 공교롭게도 토요일 날 카드가 들어가서 주말 동안 기다렸다가 월요일 날 다시 찾아 가니 약간의 서류를 작성하고 다시 카드를 돌려받을 수 있었다.
호치민은 현재 인구 천 오백만명에 이르는 도시이다. 정말 24시간동안 오토바이 소리가 끊이지 않고 도시가 오래 전에 건설되었는 지 인도나 도로가 매우 좁은 편이다. 사실 나는 호치민이라는 도시에서는 딱히 베트남의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다. 중간에 방문했던 전쟁박물관이나 노트르담 성당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나 너무 사람이 많고 복잡하다. 도시도 궁합이 맞는 곳이 따로 있는 듯.
그래서 나는 예정에 없던 다낭으로의 여행을 슬며시 다시 꺼내게 되었고 다낭에 있는 베트남 동생 땀에게 연락을 시도하게 되었다. 호치민 근교에 있는 사막 같은 드넓은 사구가 멋지게 펼쳐진 무의네를 본 후 다시 나의 정든 친구들에게로 얼른 다시 날아갈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