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비행기를 타는 것은 힘들었다. 공항버스를 타는 정류장까지 30여분, 공항까지의 거리가 1시간 30분 정도, 탑승 2시간전에는 도착해야 하니 새벽부터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새벽 네 시부터 일어나서 부산을 떨었기 때문에공항에는 제시간에 도착했지만 겨울방학의 피크 시즌을 맞이한 공항은 여행객들로 가득하였다. 엉뚱한 비행기의 카운터에서 잠시 기다리다가 직원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제대로 탑승 카운터를 찾은 후 나의 비행편에 짐을 실었다.
비행기에 오르고 나서야 비로서 ‘휴우~’ 안심을 한다. 이제 진짜 출발이다.
하지만 아직도 길고 긴 비행시간을 지나서 홍콩공항에 경유하여 다섯 시간 정도의 대기 시간을 기다려야 나의 최종목적지인 호치민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오르게 된다.
나의 자리는 이코노미석의 가장 앞자리, 뒷자리 보다는 다리를 약간 더 뻗을 공간이 있으므로 흡족한 마음으로 좌석에 기대었다. 무사히 이른 아침 비행기를 늦지 않고 탔다는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나른함과 지루함이 슬슬 몰려온다.
옆자리에는 인도계로 보이는 청년이 한 명 탔다. 얼핏 보아도 인상이 수수하고 착한 청년인 듯 하여 무료해지는 참에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청년도 혼자 탔기 때문에 꼼짝없이 자리에 조용히 앉아 있어야 하는 시간에 내가 말을 걸어주니 기분 좋은 미소를 띄며 응대를 했다. 어두컴컴한 실내였지만 반짝이는 검은 눈동자와 부드러운 미소가 상당히 매력적인 청년이었다.
청년은 어제 자국 여행사의 실수로 공항에 왔었는 데 승객 명단에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아서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고한다. 영어를 이해하기는 하지만 청년은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어서 자세한 정황을 알 수는 없었지만 어제도 이런 긴 여정을 거쳐 공항까지 왔는 데 다시 돌아갔어야만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 지 공감이 되었다.
두 시간여의 비행시간 동안 청년은 네팔에서 왔고 한국에서 4년 10개월을 일했으며 다시 네팔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임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 고향을 방문하지 못했고 이제 고향의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게 되어 매우 행복해 보였다. 비행 일정도 비슷하여 청년도 역시 홍콩 공항에서 7시간여를 보내고 카트만두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청년은 한국어도 거의 이해를 했고 나는 신이 나서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계속 대화를 하였다. 청년은 새벽부터 서둘러 나와서 피곤한 듯 했지만 시종일관 부드러운 미소를 띄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우리는 그야말로 형제를 만난 듯 의기투합하여 홍콩공항에서 길고 긴 대기시간을 함께 보내기로 하였다.
점심 시간이 되어서 식사를 선택하라고 하여 나는 소고기 라이스를 선택하였고 청년도 똑 같은 것을 주문하였다.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하는 데 청년이 머뭇거리면서 자신은 힌두교여서 소고기를 먹지 못한다고 하기에 나는 뒷자리에서 서비스를 하는 스튜디어스에게 얼른 메뉴를 교체해 달라고 하였다.
닭고기 메뉴를 받아 든 청년은 만족한 듯 하였고 청년과 나는 아주 평화롭게 식사를 마쳤다. 찬란한 햇살이 비춰오는 정오가 가까운 시간에 홍콩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는 광경은 매우 아름다웠다. 흰구름이 마치 방안에 깔아놓은 이불처럼 포근포근하게 펼쳐져 있고 푸르른 산맥도 손에 잡을 수 있을 것처럼 가까이다가왔다.
홍콩 공항에 가까이 다가가니 푸른 바다에 떠있는 작은 배들도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청년과 나는 이 경이로운 광경을 어린아이들처럼 들뜬 마음으로 조그만 창문에 매달려서 함께 구경하였다.
홍콩 공항에 도착하니 카트만두로 가는 청년을 찾는 직원이 친절하게 우리를 안내해주었고 다시검색대를 지나갔다. 청년이 가지고 있던 지갑에 열쇠가 있어서 경고음이 울리는 바람에 조금 당황했으나 별일 없이 검색대를 통과하였고드넓은 홍콩공항에 들어섰다.
홍콩 공항에는 무료 음료대도 있어서 물을 마시기도 편리했고 시간이 많이 남았으므로 게이트 옆에 자리에 앉아 나는 베트남 여행기를 펼치며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과 경험을 동원하여 베트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청년은 다음에는 자신의 고향으로 꼭 놀러 오라고 여러 번 당부 하면서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나는히말라야 같은 높은 산을 등반하는 것은 딱 질색이지만 청년의 진심어린 설득에 다음에는 한번 네팔에 가볼까 하는 생각이 강하게 스쳐갔다.
공항에서 다섯 시간을 보내는 것은 사실 무료하였다. 우연히 만난 착한 네팔 청년과 대화를 나누며 이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 나는 무척 고마웠고 청년도 그러하다 하였다. 언제나처럼나는 넉살 좋게도 브라더를 남발하였고 (사실 나보다 12살이나어리니 남동생뻘이지 않은가) 점심 한끼라도 꼭 사주고 싶었다. 그러나순진한 네팔 산골 청년은 굳이 배가 부르다며 사양하였고 혼자 점심을 먹기에 머쓱한 내가 계속 권하니 가장 저렴한 음료수 한 병을 골랐다.
식사도 마치고 우리는 공항 내의 상점들을 기웃기웃하다가 청년이 폰 케이스를 사고 싶다고 하여 여기저기 물어보았으나아쉽게도 삼성 폰의 케이스는 판매가 되지 않고 있었다. (갤럭시 7이최근 폭발해서일까) 상점마다 물어보기에 조금 지친 내가 왜 한국에서 사지 않았냐고 하니 청년은 새 폰케이스를 집에 두고 왔다며 아쉬워한다.
다시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충전하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다시 연락이쉽도록 페이스북 친구를 맺으려 했는 데 왜 그때는 공항 무료 와이파이를 켜지 않았는 지 모르겠다. 할수 없이 나중에 검색할 수 있도록 청년에게 내 이름을 적어주고 페이스북 사진을 찍어 주었다. 청년은자신이 일하던 회사의 사장님과 직원들의 사진을 보여 주었는 데 아주 성실하게 일하였는 지 사장님은 한국으로 다시 오라고 당부하였다고 한다.
나는 다시 가이드북을 펼쳐 동남아 나라들을 여행했던 경험과 앞으로 가고 싶은 곳들을 들려주었고 청년은 시종일관조용히 웃으며 내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호치민으로 가는 비행편의 게이트를 확인하였고청년이 가는 카트만두의 비행편은 아직 안내가 되지 않고 있었다. 아직 두 시간이 남았으니 게이트가 정해지지않은 것이라고 설명하였으나 넓은 공항에서 제시간에 게이트를 찾지 못할까 하여 청년은 조금 걱정하는 듯 했다.
몇 번이나 전광판을 다시 가 보았으나 안내가 되지 않았고 도중에 나는 내가 탑승해야 할 게이트에서 final call을 알리는 메시지가 뜬 것을 보고 매우 당황했다. 나야말로비행기를 놓칠 뻔 하지 않았는가?
청년과 급히 악수를 하고 “걱정하지 말라. 게이트는 곧 찾을 수 있을 거다’” 라고 하며 비행기로 급히 달려갔다.
허둥지둥하며 좌석에 앉고 나니 문득 미리 직원에게 물어서라도 청년의 게이트를 알려 주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되었다. 긴 비행 시간 동안 ‘혹시 게이트를 찾지 못해 비행기를 놓친 것은아닐까. 설마 그렇진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한동안 교차하였다.
그 후로 몇 일 동안 페이스북을 볼 때마다 청년의 소식을 기다렸으나 아쉽게도 청년은 아직 연락이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여 나는 그 때 청년이 찍어간 나의 프로필 사진을 아직 수정하지 못하고 있다.
여행을 하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미지의 나라에여행을 온 기쁨으로 대부분 매우 신이 나 있고 즐거운 한 때를 함께 보내고 나면 헤어질 때는 아쉬움이 들기 마련이다. 때로는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신의 나라에 꼭 방문할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일부는 얼마간은 연락이 되기도 하고 다시는 연락이 되지 않기도 한다.여행지에서의 짧은 만남이므로 어찌할 수 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살아가다 보면 어떤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나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헤어지게 된다. 이별의 순간에는 늘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며 또 다른 새로운 일들과 사람들이 나의 시간을 채워 가면서 그들과의 만남은 서서히 잊혀져 간다.
어떤 악연을 만났을 지라도 ‘이 인연도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자신을 위로했으면 좋겠다. 다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어느정해진 그 시간 동안은 그 사람을 견딜 수가 없다고 해도 더 이상 만날 수 없고 시간이 흐르면 그 극한 미움의 감정 조차도 까마득히 희미해진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으로 채워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떤 사람과는 좀 더 길고 깊은 인연을 이어가고 대부분의 사람들과는 우연히 만나 짧은 시간을 보내고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아주 짧은 만남일지라도 그 만남 후의 기억은 무심코 현재를 살아가다가도 문득 문득 떠오를 때가 있다.
나의 네팔에 있는 동생은 히말라야의 어느 산자락에서 어느 날 잠시 나를 기억하며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