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사람을 사귀려고 할 때 여러 사람을 지켜봐요. 한 사람에게만 집중했다가 잘 안되면 실연 당하는 것처럼 상처가 커서 처음부터 한 명에게만 마음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거예요."
그녀는 애써 담담한 척 했으나 마음속으로 꽤나 충격을 받았고 표정이 굳어졌던 것 같다. 무어라 답을 해야 할지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왜요? 동의하지 않으세요?" 그는 의외라는 듯 천연덕스럽게 물어보았다.
훤칠한 키에 매력적인 이 청년의 말은 오래도록 머리 속에 남았다. 그녀의 연애관으로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충격적인 말이었다.
언뜻 들으면 상당히 합리적이기도 하고 일부 공감이 되기도 하며 참 편리하고도 영리한 발상이다. 확실하게 만남을 시작하기 전에 혼자 마음 졸이거나 짝사랑을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는 것.
사랑의 형태가 개인에 따라 다양하기는 하나 이보다는 덜 계획적이고 더 무조건적이어야 하는 게 아닐까? 사랑은 짝사랑의 시기도 있고 언제 어떻게 고백을 할 것인가 서로 하염없이 눈치만 볼 때도 있으며 사랑이 넘쳐나 세상이 다 아름답고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기도 하고 의견이 맞지 않아 치열하게 싸우고 다투는 때도 있는 그리고 또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화해를 하는, 이 모든 희노애락의 파도와 지난한 과정을 다 포함하는 게 아닐까?
이 청년은 데이팅 어플을 이용해서 만남을 갖기도 하고 한창 혈기왕성한 그 또래 다운 연애를 했다. 몇 년을 만난 연인도 있었으며 한 사람을 사귀는 동안은 그녀에게만 집중하였으나 미래를 약속하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끊임없이 사랑은 찾아다니나 새벽에 이상한 꿈을 꾸고 깨어나는 것처럼 공허함과 허탈함이 있었다. 사랑을 해도 모든 것을 다 내어주지는 않는 다는 것. 사랑은 하지만 결혼까지 해서 미래를 책임지고 싶지는 않다는 것.
그 맘 때 우연히 보게 된 영화가 있었다.
제목이 '메이트'라는 영화였는 때 소위 Y세대라 하는 20대 후반 청춘 남녀들의 고민과 사랑의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아~ 이 영화을 진지하게 감상한 후 'Y세대의 사랑이란 이런 모습이었구나.' 하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었다. 아마 그 사랑스러운 가을 밤에 이해할 수가 없었던 청년의 발언과 이 영화가 오버랩되며 깊은 인상을 준 것 같다.
물론 같은 세대 사람들이라 하여 모두 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거나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환경을 겪고 살아가는 세대별로 두드러지는 특징이나 전형적인 모습이 있긴 하다.
이 영화의 남자 주인공인 준호는 은지라는 여자 주인공을 만난다. 준호는 프리랜서로 살아가며 학자금 대출도 갚아야 하고 경제 상황이 빠듯한 상황이다. 외로울 때는 가끔 데이팅 앱을 통해서 여자 친구를 만나기도 하지만 책임지는 사랑은 하고 싶지 않고 외로울 때 가끔 만날 수 있는 깃털 같이 자유로운 관계만을 원한다.
은지는 준호와 같은 세대의 여성이지만 좀 더 사랑에 맹목적이다. 헤어진 연인과 은지 사이를 양다리를 걸치며 왔다갔다 하는 다른 남자에게 마음을 쏟기도 하고 준호와는 다른 어수룩하기도 하고 순진하기도 한 사랑을 한다. "돈은 펑펑 쓸 수 없지만 마음 만은 펑펑 쓸 수 있어야지." 라고 말하는 사랑에는 계산이 없고 절대적인 여자이다.
이들은 동네 친구처럼 가볍게 만났지만 어쩔 수 없는 계속적인 끌림으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부유하지는 않지만 알콩달콩하고 풋풋한 연인이었고 현실적이나 마음이 따뜻해지는 대화나 장면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계속 어긋나고 멀어져 가는 그들의 모습이 참 안타깝고 아쉽기만 했다.
물론 취직도 어렵고 평생 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지며 어려운 경제 상황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그들이 사랑에 대해 부담감을 느끼는 걸 이해못하는 건 아니다. 게다가 마치 재난 영화같은 현실인 코로나와 함께 침체된 경제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사랑은 모든 것을 , 모든 어려움과 시련을 극복하게 해주는 유일한 에너지가 아닐까? 그 사랑이 굳이 연인 사이가 아닐지라도. 가족이나 친구 관계에서도 진정한 사랑은 우리를 어떤 극한 상황에서도 지탱하게 해주는 불가사의한 힘이라고믿는다.
다시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 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책 '사람만이 희망이다' 중 '다시' - 박노해 시인
시대가 달라지면서 사랑의 모습도 변해 가는 것일까?
인간과 인간 사이의 고립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가혹한 코로나의 시대에도 모두에게 진실된 사랑이 찾아오고 사랑이 그들을 구원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