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짓고 살지 말자.

나도 괴롭고 너도 괴로우니

by 사각사각

갑자기 떠오른 지난 일이 있다. 이미 5~6년 지난 일인 데 그 당시에는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교무실 중에 별실이라는 곳은 보통 교감 선생님이 계시는 2층의 큰 교무실이 아닌 층마다 부서별로 있는 작은 교사실이다. 이 곳은 보통 교감 선생님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위치에 따로 있기 때문에 꽤 화기애애하고 자유로운 곳이다.


이 곳에는 나를 포함 네 명의 여 선생님들이 계셨다. 처음에는 꽤나 즐거운 분위기였으나 점점 한 명이 왕따가 되어갔다. 그것은 슬프게도 바로 나. 또르르, 나를 제외한 세 명의 여 선생님들은 나이도 비슷하고 자녀 수도 둘씩 똑같았고 함께 근무했던 경험이 있었다. 나만 새롭게 그 부서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교사들은 수업 시간 외에는 상당히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도 떨곤 한다. 인간과의 소통을 꽤 즐기기 때문에 그 대화에 끼어 들고 싶을 때가 많았으나 번번이 실패하곤 했다.


왜냐? 그 분들의 주요 대화 소재는 오로지 내 자식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제 oo이가 무엇을 했다. oo이의 어떤 행동 때문에 속상하다. oo이 저녁으로 무엇을 해주었다.” 하아, 날마다 반복되는 어제 저녁으로 당신 자녀가 뭘 먹었는지까지 들어야 하나? 그리고 빠지지 않는 시집 이야기.


결혼은 하였으나 별달리 시집살이를 하지 않고 무자식이었기에 한 마디도 끼어들 수 없는 내용이었다. 거기서 뜬금없이 내가 가끔 다른 화제를 꺼내 놓으면 받아주는 이가 없고 거의 허공에 하는 수준으로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래서 점차 밖으로 나돌게 되었다. 같은 기간제이고 나이대도 비슷한 다른 부서의 샘들과 어울려 다니게 된 것이다.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같은 부서의 샘들과 주로 식당으로 내려가서 먹는 경우가 많다. 나의 부서의 샘들은 건강과 다이어트를 생각하여 도시락을 지참하기 시작하셨다. 아, 귀찮은 일은 되도록 피하려 하는 나의 습성과는 참 안 맞는 분위기였다.


사회성이 있는 인간이라 한 두 번은 도시락을 싸 와서 이 샘들과 함께 식사를 하긴 했으나 결국 포기하고 식당으로 내려가 먹게 되었다. 또 한가지는 작은 교무실에서 음식 냄새가 나는 건 나중에 들어오면 괴로운 일이기도 했고.


이 단독 생활에도 딱히 불만은 없었으나 가끔 부서별로 회식을 가는 일이 있는 데 이 날마저 이 샘들이 자연스럽게 나를 제외하고 나가기 시작하셨다. 부서별로 회식을 가기 때문에 딴 부서에 끼어들기도 애매하고 그야말로 개밥에 도토리 같은 모양이 되어 버렸다.


여기서부터 점차 분노가 쌓여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무렇지 않은 척 하였으나 점점 소외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였고 그 샘들이 왁자지껄하며 즐겁게 회식에서 돌아올 때 우두커니 교무실에 앉아서 조금씩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 중 한 선생님은 은근히 둘만 있는 자리에서 내가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하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는 날마다 비판적이 되어가고 점차 고립되어 갔다. 그래서 결국은 부장님과 한바탕 언성을 높이고 싸우는(?)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그 학교를 떠나고 5~6년이 흘러서 우연히 그 부서에 있던 부장님을 다른 장소에서 만나게 되었다. 그 부장님은 나를 보자마자 반색을 하면서 갑자기 고백을 하기 시작했다. 본인은 지금까지 남에게 큰 잘못을 한 적이 없는 데 가끔씩 내게 한 잘못이 떠올라서 괴로웠다고 한다. 왜 하필 평생 타인에게 큰 잘못을 한 일이 없는데 그 한 명이 나여만 했을까? 참 복도 지지리 없네.


그러면서 내 손을 잡고 거의 용서를 구하다시피 하여 담담하게 “저는 그 당시의 일이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이미 다 잊었다. 그 때 분위기가 힘들었고 소외되었으며 마음이 괴로웠던 것 사실이다." 고 대답했다. 너무 갑작스럽게 마주친 터라 그리고 현실에 묻혀 사느라 순간 그 당시의 기억이 쉽게 안 나기도 했고 그 분이 그리 괴로웠다니 용서를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 부장님은 문 밖까지 마중 나왔고 그 날 바로 나에게 문자도 보냈다. 하지만 쓰디쓴 과거의 기억이 떠올라 그 문자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웠다니 참.


문득 오랫동안 땅에 묻어둔 것 같은 기억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왕따의 기억과 함께 결정적으로 그 학교에서 재계약을 못하게 되었던 사연까지. 재계약을 거의 당연하게 여기며 기대감을 가지고 면접을 갔었는데 아마 "부장님과 왜 좋은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냐?" 라는 류의 질문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분명 그 후에 내가 용서를 구하고 화해를 했는데도 그 부장은 부정적 평가를 하면서 내게 등을 돌렸었던 것이다.

그렇게 학교를 떠나게 되었는 데 그 부장님이 아무렇지 않게 전화를 하기에 상당히 싸늘하게 면접 시에 들었던 이야기를 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마 순간순간 이 불편한 전화통화를 잊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면접관이 부장들끼리의 뒷담화까지 면접 하면서 아무렇지 않게 말할 줄 몰랐겠지.


아마 그 분은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기 위해 용서를 구했을 수도 있다. 그 분은 다시 나를 만난 그날로 마음에 오래도록 남아있던 일을 떨쳐낸 듯 보였다. 그나마 스스로 양심에 가책을 느꼈다면 그렇게 나쁜 인간은 아닐 수도 있다. 그리고 나도 애써 망각한 기억으로 인해 “괜찮다. 다 잊었다.” 라고 답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수년 동안 문득문득 떠오르는 자책감에 괴로웠다니 그 벌은 충분히 받았을지도.


하지만 가능한 타인에게 죄는 짓지 말고 살자. 한 사람의 마음의 상처는 잠시 잊혀질 수는 있으나 완전히 지워지지는 않는 것이니.

용서는 한다만 다시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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