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핸드폰을 새로 개통하게 되었다. 사용하던 폰에서 새 폰으로 전화번호부를 옮겨받고 미처 답하지 못한 문자가 있나 살펴보았다.급한 문자만 얼른 처리를 하고.
사정상 명의도 바꾸게 되어 새 번호 알림 서비스를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헐~ 혹시라도 꼭 필요한데 연락이 안 되는 사람이 있을까 걱정이 되어 전화번호부를 쭉 넘겨보았다.
학교에서 담임을 했던 시절도 있어서 수년 전의 학생이나 학부모님 전화번호도 그대로남아있다. 정기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전화번호 리스트에는 수백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럼 이 중에서 새로운 번호를 알려주어야 하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일단 이력서를 뿌려놓은 과외 회사 담당자들에게 새 번호를 알렸다. 4~5군데 정도. 그리고 최근 연락하거나 만나는 지인들 몇 명. 혹시나 빠진 사람들이 있나? 여러 번 전화번호부를 넘겨 보았지만 애석하게도 없었다.
친구나 지인들의 숫자가 너무 적은 것 아닌가? 그럴 수도 있다. 나의 친구들은 함께 했던시간이 지나고 지방으로 이사하거나 외국으로 옮겨가는 이들이 많았다. 한 때는 지인들 중에 외국인이 절반은 되었고 그들은 한국에서 체류 하다가 본국으로 대부분 돌아갔다. 그러니 내 친구들은 페이스북에서가끔 존재를 확인하는 정도. 언젠가 시간이 있고 여유로우면 이 친구들을 한명씩 만나러 여행을 가 볼까 궁리하며 남몰래 즐거웠던 적도 있었다. 코로나가 끝난 후에나 다시 생각해봐야 겠지만.
역마살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2~3년에 한번씩은 해외로 여행을 다니는 것이 크나큰 즐거움 중에 하나였기 때문이다. '제발 역마살아 나를 더 멀리 자주 보내다오.'이렇게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원을 할 정도였다.
나이가 들어가는 지금은 활어처럼 팔팔하던 역마살이 한결 잠잠해진 것 같다. 더 멀리 여러 장소를 가보고 싶은 것 보다는 한 곳에 머물러 '한달살기' 같은 걸 해보고 싶다. 베트남 같은 곳에 가서 한국어 과외를 하면서 몇 개월씩 여유자적하면서 살아 보려는 계획도 있다.그래서 온라인으로 한국어 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기회가 된다면 베트남에 살며 몇 개월에 한번씩 그리운 한국에 왔다갔다 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돈을 벌어야 할 절실한 이유가 없다면 더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은 데.
사람의 관계란 유한하다고 본다. 오래도록 인연이 닿고 혹은 평생토록 연락을 하고 만나는 사이도 있겠지만 대부분 시간이 지나고 장소가 변함에 따라 관계가 느슨해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인생은 만남과 이별로 촘촘하게 짜여진 옷감과 같다.수많은 만남과 이별이 어우려져 씨줄과 날줄로 엮어지며 다채로운 빛깔과 모양을 만들어내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계절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이치와 비슷하다. 한 사람이 가면 다른 사람이 오고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이러하니 우리의 삶에 늘 새로움과 희망이 있는 게 아닐까?
인간 관계에 집착하지 말자. 관계도 미니멀한 것이 좋다고 본다. 떠들석한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도 그 모임이 끝난 후에 마음은 더 공허할 수 있다. 항상 내 곁에서 나를 이해하고 다독여주는 몇 명의 가족과 친구만 있어도 삶은 살아내기에 충분하다.
얼마 전 십년이 훌쩍 넘게 만나지 못한 친구가 나의 SNS에 메시지를 남겼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다소 과장스럽게 사랑한다는 답글을 달았다. (문화적인 이유로 친구에게 영어로 love you하는 건 더 쉽다.)2007년쯤 내가 방문했던 캐나다에 사는 친구이다. 이제 만나기는 힘들지만 결혼을 해서 두 아이와 남편을 두고 가정을 이룬 행복한 모습의 친구.
만나지 못해도 마음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고 가끔은 문득 보고 싶고 수 만리 먼 곳에서도 응원을 보내줄 수 있는 것이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인생은 사람들과 어우러져 살아가지만 결국 나 홀로 수많은 선택을 하고 책임지고 고독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독고다이! '인간은 외로운 존재이다.'라는 명제를 진리로 받아들이면담담하게 그 외로움을 받아들이기가 한결 쉬워질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SNS에 집착하는 것도 결국 사람 사이의 애틋한 관계에 목마르기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럴 수도 있지만 우리 사이에는 적절한 거리가 존재한다는 것이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