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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Mar 26. 2021

인간 관계에는 소통 기한이라는 게 있을까?

미니멀한 관계 5

공적인 관계에서 갑자기 사적인 관계로 발전된 인연이 있었다. 처음부터 서로 잘 맞고 성격도 비슷하여 마음을 열게 되었다. 하지만 공과 사의 중간에 놓인 애매한 이 관계는 점점 내려앉은 문처럼 삐걱되기 시작했다. 서로를 진심으로 대한다고 믿었지만 점점 상대방의 진심에 대해 의심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혹시나 이 사람이 다른 의도를 가지고 나에게 사적으로 친밀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인가? 라는 의혹.


원래 사람을 잘 믿고 순수한 편이다. 어찌보면 나이에 비해 어리숙해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동안 소리를 듣는 걸수도. 일할 때는 잔머리를 잘 굴리는데 인간 관계에서는 속기 쉬운 타입이라고나 할까. 결정 장애라던가 사람에 대한 경계라는 게 없는 스타일이다. 일단 믿고 본다. 딱히 돈이 어가는 일이 아니면  큰 손해를 보는 건 아니다.(자잘한 손해를 손해로 여기지도 않고)

오히려 마음을 활짝 열고 다가가면 상대방도 호의적으로 대하는 경우가 더 많다.


공적인 관계를 사적인 관계꾸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돈이라는 이슈가 있기 때문이다. 돈의 문제가 둘 사이에 놓이게 되면 공과 사는 뒤섞이게 된다. 깔끔하게 정리하면 되는데 사적인 사이에서는 돈이란 단어를 꺼내드는 것 자체가 어색해진다. 나의 경우는 특히 돈 문제를 입에 올리는게 힘들다. 그래서 깨닫게 된 바는 '사적인 관계에서 과외는 하지 말자.'이다.


과외를 하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서이다. 시간이 남아 돌아서 혹은 자아 실현만을 목적으로 일을 한다면 모르겠으나(그럼 취미 생활을 하지 과외를 하진 않으리) 나는 생계형 과외샘이다. 그러니 사적인 관계라 할지라도 부모, 형제, 자녀라도(?) 과외비에 에누리는 없다. 그런데 은근히 과외비가 비싸다고 어필을 하면서 나의 약한 마음을 흔드는 일들이 있었다.


마음은 상하지만 과외비는 대장부답게(?) 대폭 깍아주었다. 사적인 마음이 개입되다보니 마음이 흐믈흐믈해졌다. 하지만 이 시점부터 마음에 의심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이 분이 런 목적으로 나에게 친절한 마음을 베푼걸까? 과외비란 일종의 시간제 '몸값'같은 거라 과외비를 낮추는 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고 심적인 괴로움이 컸다.


게다가 그 분은 매달 과외비를  때 착착 송금하지 않았다. 그저 잊어버린 걸수도 있지만 돈 얘기를 꺼내지 못하는 마음은 타들어갔다. 어찌 생각하면 그깟 과외비 때문에 친절을 가장한다는 게 말도 안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겸사겸사하여 그럴 수도 있는 문제다.  분에게 받은  친절(혹은 작은 선물들) 때문에 돈 얘기를 못 꺼낸 걸수도 있다. 가끔은 우유부단하기도 하고.


그리하여 돈 문제로 속이 부글부글 끓던  중 결국은 과외를 그만두아야 할 사정이 있다고 문자로 통보를 하고 말았다. 과외를 하는 공적인 사이라도 다른 이의 문자 통보에 대해서는 그리 욕하던 나인데. 역시 사람은 입장을 바꾸어 봐야 그 상황을 분명히 인지할 수 있다. 이상하게도 외를 그만둔다는 것이 너무 미안한 마음이었다. 과외를 그만두는 것으로 그 분과의 관계도 끝날 조짐이 보였다.


양가 감정이란 이런 것이다. 분명 잘못된 부분이 있었지만 힘든 시기에 위로를 받은 일도 많으므로 마음은 갈팡질팡한다. 신의를 저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소개받은 과외도 있어서 더 복잡했다. 상당히 고상한 문자를 서로 주고 받은 후에 한참 혼자 울었다. 정확히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요즘은 여러 복잡한 감정이 합쳐져서 어느 무엇 하나 때문이라고  골라낼 수가 없다. 아직 치유받지 못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눈물이 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살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항상 진심인 편이다. 만나는 사람에게 마음을 다 쏟아주고 올인을 한다. 그리하여 결혼 생활을 미련하게도 십 사년이나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진작에 끝냈어야 할 일을 꾸역꾸역 긴 시간을 끌고 온 것이 좀 후회가 되긴 한다. 그야말로 의리! 여기에서 또 남자 사주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사주라는 게 내가 본 바로는 미래는 맞출 수 없다고 해도 과거의 이력에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증거들이 있었다. 사주도 통계학이라고 하니 맞는 부분도 있는 것. 


미래는 신이 아니라면 그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게 아닐까? 미래는 알 수 없다는 점에 매력이 있다. 현재에 집중하여 살아 보는 수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매일의 현재가 모여 시간이 흐르면서 닿지 못하는 미지의 세계인 미래로 가고 있다. 미래란 우리에게 보장되어 있지 않으니 항상 현재에 살아야 한다.


누구라도 인간적인 정과 진심 어린 시간들을 주고 받은 사람과 헤어지는 건 어렵다. 하지만 어떤 인연이든 한번 어그러지는 사건이 있으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화해를 하고 다시 관계를 이어간다고 해도 깨진 그릇처럼 원래 상태로 돌이킬 수 없는 관계들이 있다. 얼기설기 다시 붙여 놓은들 원래의 깨끗한 그릇의 형태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진심이었을지라도 우리의 인연은 이미 멀어지고 있으므로. 


인간의 마음이란 자기가 생각한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상처는 나아도 흉터는 영원히 남는 것처럼. 유통기한이 끝난 음식과 같이 인간의 인연이란 정해진 소통 기한이라는 게 있는 걸까? 


언제 다시 만나서 밥을 먹자고 했으나 과연 처음의 애틋했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 분은 나와 아무 가 없는 지인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걸까? 나는 우리의 인연을 계속하고 싶은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인간의 사랑이라는 것도 의심스럽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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