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정해진 수업 시간이 삼 십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 수업은 바틋하지 않고 오후이므로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삼십 분 정도는 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습관대로 살짝 시간을 체크해보면서 혼자 생각하고 있었다.그녀는 수업에매우 열중하고있다. 한시간 반의 시간이 지나고 끝날 시간임을 알려주면 "벌써요?"라며 아쉬워한다.
그녀는 어렸을 적에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한을 육십이 된 이제야 다 푸는 것 같았다. 학구열이 넘치고 지적 호기심이 있으신 편. 학생이 이토록 열정적으로 배움을 원하면 어느덧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된다. 가르치는 자는 배우는 자가 즐거워하고 수업에 몰입하며 열심을 보이는 때가 가장 보람차다. 그리하여 수업은 두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그녀의 사무실에는 항상 테이블 위에 수증기를 뿜어내는 가습기가 켜져 있고 아로마 향이 가득차넘실댄다. 처음에 이 방에 들어왔을 때는 이곳은 한약방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강한 약재 향이 났다. 수업 중에 어쩌다 아로마 테라피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녀는 드문드문거침없고 시원시원한 단어를 사용하여그간 살아온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는다. 나는 지금까지 늘 부족함을 느꼈을뿐 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에 대해 부모님께 큰감사를 하지는 못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정규 학교 과정을 거쳐 대학까지 나온 배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므로.
"선생님도 어렸을 때 학교에서배우지 못했으면 나하고 같았을 거야." 라는 말에 좋은부모님 밑에게서태어나 대학까지 학비를 편안하게 지원받고 지식의 욕구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을 다시금 깨우치고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그녀는 번듯한 기업의 대표이다. 배움이 중요하다지만 결국은 벌어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면 계산을 해보자면 나보다 훨씬 나은게 아닐까 싶다. 변변치 못한 남편을 만났지만 아이들 셋을 모두 가르치시고 한 사업체의 대표 자리까지 올랐으니 존경스럽기만 하다. 수십년동안일하며고생을 많이 하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신경성 통증 증후군을 앓으셨다한다.
어느날 우연히 만나게 된 아로마 테라피로그 병을 고치게 되셨다니 사뭇 솔깃해졌다. 여기 저기 부실한 몸에 어디 한번 특효가 있는아로마 오일을처방해볼까나. 그녀는 병원에 가도 낫지 않던 다리부터 이어지는 전신의 통증을 천연 오일을 발라서 마사지 하는 것으로 나으셨다고 한다.
오일병들을 모아놓은 가방에는 여러 종류의 갈색병들이 빼곡하고 즐비하다. 익히 알고 있는 레몬, 페퍼민트 부터 아직 이름도 외우지 못한 처음 들어 보는 오일들까지스무개 남짓한 병이 나란히들어차 있었다. 꽃과 풀향기 가득한 천연 오일들로 몇 밀리 안 되는 조그만 한 병의 가격도 꽤나 비싼 것들이었다.
'향수'라는 영화를 보면 장미향 한 병을 얻기 위해 커다란 투명한 증유기에 한트럭은 될 만한 양의장미꽃잎을가득넣고 오랜 시간 증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어마무시한 재료의 양과 증류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보면 향수의 가격은 비쌀 수밖에 없다. 주인공은향수혹은 사랑에 대한 갈구에 미쳐서 결국은 여자들을 한명씩 살해하여 그녀들이 가진 독특한 향을 추출해 낸다는 기괴하고도 끔찍한 내용이지만,이상하게 끌리며 음산한영화 전반을 통해서 향이 얼마나 인간을 매료시키는지 탐색하며공감하게 된다.
손목에 떨어트려주는 각각의 향을 하나씩 맡아 보니 온갖 몸의 병이 치료되고 심신에 무한한 안정이 올 것만 같았다. 한시간이 넘게 시향을 하고 향에 대한 열정적인 강의(?)를 들은 후엄지 손톱 만한 병에 레몬 오일을 담아왔다. 찬물에 한두방울씩 떨어뜨려서 마시면 디톡스 효과가 난다고 한다. '레몬 오일은 비교적 저렴한 편이니 조만간 구입할 수도 있겠구나.'
전나무향가득한 근처의집에 살면 만성적인 목에 염증도 가라앉힐 수 있다고 한다. 그 옛날에병원도 가기 어렵고 약을 쉽게 구하지 못했을 때는 산과 들에 피어 있는 꽃이나 나무, 풀에서 천연 치료제를 찾아서 사용했을 것이다. 오히려 화학 물질으로 만들어진 약보다 천연 오일은스트레스가 어느 시절보다 극심한 현대인들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제일 수도 있겠다.
이로써 단지몇 시간만에 아로마 테라피에 푹 빠지고 지갑을 언제든 선뜻 열 준비가 되어버렸다. 이제는돈만 많이 벌면 될 듯. 참으로 귀가 얇고 무엇이든 꽂히면 쉽게 잘 빠져들어절대적으로 믿는,민들레홀씨만큼이나가볍고도하찮은 인간이로다. 아이고, 못 말린다.
향기로운 아로마 치료와 함께 오전 수업이 끝났다. 아스름한풀, 나무, 꽃이 섞인잔향이오래도록 손목 끝에 남았다. 자연의향이 떠도는 분자에 취하여행복한목요일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