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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Jun 04. 2021

비 온 다음날의 산책

비는 바람을 데리고 오고

오후의 산나섰는날씨가 참 좋았다. 어제의 비는 완전히 잊은 듯한 푸른 하늘과 쏟아지는 초여름의 햇살에 딱 적당히 기분이 좋아지는 람이 불어왔다. 비가 데리고 온 바람은 무어라 말할 수없이 좋은 오랜 친구같다. 약간은 더운 공기를 감싸며 최적으로 어우러지는 바람, 초록 나뭇잎들이 일제히 제멋대로 파르르 춤을 추게 하는 바람. 어제의 비로 공기마저 깨꿋하게 씻어 말린 옷같이 보송보송하고 맑다. 

쑥쑥 자라나는 식물들

벚꽃이 진 자리에 작고 예쁘장하고 콩알만한 빨간 열매가 달려있었다. 이 열매를 버찌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빨간 열매가 익으면 까맣게 변한다. 어떤 맛일지 궁금하기는 하나 차마 따서 먹어볼 용기가 나진 않는다. 꽃이 진 자리에는 열매가 맺히는 것이 자연의 이치로구나. 인간이 지나간 자리에도 쓸모있는 열매가 열려야 할텐데.

버찌는 무슨 맛?

이 호수에는 예전부터 십 여년이 넘게 터줏대감처럼 살고 있는 오리들이 있다. 진한 회갈색빛의 오리 가족과 흰 오리 한 쌍이 늘 물위에서 유유자적하고 둥둥 떠다니면서 수영을 즐긴다.

오늘은 이 오리들마저도 위로 올라와서 햇살을 즐기며 뒤뚱뒤뚱거리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회색 오리 한 쌍이 낳은 대 여섯마리의 아기 오리들이 이제 청소년기로 접어든 것 같다. 땅위를 걷는 오리를 가만히 따라가 보니 바닥을 툭툭 치며 입을 오물거리는 것이 아마도 비 온 뒤에 땅으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를 특식으로 먹으러 나온 것 같았다. 틀거리는 살아있는 지렁이는 또 어떤 맛이려나. 산낙지 맛?


실나온 리 둘을 계속 쳐다보니 움직이지 않고 호수를 잠깐 바라보더니 훌쩍 날아서 호수로 들어가버렸다. 동물 친구들도 참 인간만큼이나 무정하게 떠나가는구나.

오리가 나는 것에 순간 놀랐지만 '오리 날다' 라는 노래도 있고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 중 '닐의 모험'에서도 닐은 오리 등을 타고 날아서 여행길에 올랐다. 오리는 날 수 있는 데 호수가 좋아서 안주하고 사는 걸까 아니면 이주를 할만큼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은 불가능한 걸까? 문득 궁금해진다.

오리아 가지마라 집착증 ^^

늘 한 쌍을 이루어 사이 좋게 물 위를 유영하던 하얀 오리는 오늘은 혼자 머리를 물 속에 넣었다 뺐다 하면서 호수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남편 오리와 싸운 걸까 아니면 혹시 한마리가 죽기라도? 이 넓은 호수에 홀로 흰 오리로 살아간다는 상상은 너무 안 됐으니 잠깐 싸워서 떨어져 있는 걸로 하자. 남편 오리는 어느 구석의 풀숲에 앉아 쉬면서 화해의 순간을 기다리고 씩씩거리며 숨을 고르고 있겠지.

너의 짝은 어디에?

오늘 금요일 수업은 저녁 때 밖에 없다. 오후에 북적이는 주말이 오기 전 마트에서 일주일치 을 볼 작정이다. 냉장고를 꽉 채워 놓으면 또 일주일은 건강하게 집밥을 먹으며 살아갈 수 있겠지.


오후에 아메리카노 한잔을 할 수 있는 절대적인 여유와 널널한 시간이 감사한 날이다. 비가 그친 후에는 해가 반짝 나는 것이다. 인생의 순간순간도 이와 다르지 않으리. 괴로움의 때가 지나가면 기쁨의 날이 오는 것이고.

이 극단의 감정들의 무한 반복. 그러나 삶은 유한하다.  언젠가는 오리 한마리처럼 훌쩍 떠날 갈 세상만사에 연연할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여유를 즐기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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