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1 학생과 처음 수업을 하였다. 사실 초등학생과의 수업 경험은 많지 않다. 주로 중,고등학생이 나에게는 익숙한 나이대의 고객님들이시다. 기억도 가물가물한 십 여년 전 아주 예전에 초등학교에서 방과후 수업을 한 적은 있으나. 이제 여덟 살 정도되는 아이와는 단둘이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은 없는 셈이다.
처음 만나는 초등학교 어린이는 참으로 귀여웠다. 키도 의자에 앉은내 키 정도 되는 것 같고 여리여리한 들꽃이 연상되는 아이. 방안에는 핑크 물결이 넘치는 각종 인형놀이 집, 책, 미용 세트, 헝겊 인형들이 벽면마다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어느 나라 공주님이 부럽지 않을 방이었다.
아이는 아직 읽기는 하지 못했고 교재에 나온 단어는 feelings(느낌)라고 하여 angry(화난), sad(슬픈), happy(행복한), scared(무서운),hot (더운), sleepy(졸린)등이 있었다.
아이는 happy외에는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단어가 없었고 조금 난감해지는 순간이었다. 장난기가 가득하고 활발한 아이를 보니 나도 모르게 과장된 동작을 넣어서 단어를 읽기 시작했다. 단어를 외우기는 요원하기만하고 주주장창 같은 어조로 단어만 읽을 수는 없으니 우리 어린 고객님을 어떻게 하든 즐겁게 해드려야만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밀려 들었다. 팔을 위로 들고 마구 흔들며 '앵그리'를 외치니 아이가 한층 더 과장하여 팔을 격렬하게 흔들며 다른 동작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몸동작에 재주가 없는 나는 아이를 다시 따라서 하게 되고 아이는 별 것 아닌 동작에도 앞니 빠진 이를 보이고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좋아했다. 나중에는 침대에 누워서 sleepy(졸린)을 하기에 이르렀고 기대했던 것보다 이런 해맑은 아이를 보는 나도 꽤나 즐거웠다. 이거야말로 책으로 배웠던 전신반응 교수법(Total Physical Response)이던가. (ㅋ)
역시 마음이 어린아이 같으면 천국에 들어가고 인생이 좀 더 행복해질 것 같기는 하다. 아이들도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그 나이대의 아이들은 아직 세상이 신기하기만 하고 모르는 것 투성이에 재미난 일들이 가득한 것이다. 그 아이의 천진난만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나 또한 조금 더 젊어 질 수 있을 것 같고 부족하고 어설픈 감정 표현과 얼굴 표정이 풍부해질 것 같다. 예전에고등학생들에게무덤덤한 성격과 피곤한 일상 때문에 "영혼이 있네 없네." 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건만.
그 다음에는 머리, 어깨, 무릎 등의 신체 용어들이 나왔다. 아이는 자연스럽게 '헤드 앤 숄더~'로 시작되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아~나도 몸이 기억하는 듯 머리, 어깨, 무릎 등을 차례로 가리키며 그 익숙한 노래를 하게 되었다. 올해 초인가 유치원 파견 영어 연수를 잠깐 받았으나 코로나가 시작된 후 일절 수업 연락이 없었는데 이제야 제대로 써 먹게 되다니 인생 참.
이래서 인간은 부단히 먹고 살려면 다양하게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배워두고 경험해봐야 한다. 자~기억을 되살려 유투브에서 어린이 영어 동요와율동을 상기하고 연습할 시간이다.
이 초등학생과 자아를 내려 놓고 한참 놀다보니 어느 새 수업이 끝나간다. 아이가 내가 더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고 내일 또 오면 안되냐며 아쉽다고 했다. 이 단순한 어린아이다운 감정 표현이 은근히 감동적이어서 목소리를 높여영어와 한국말이 저절로 섞여 나왔다. 영어 수업이니 영어로만 하기도 하나 기초 수준이라서 쉬운 문장만 섞어서 하고 있다. " I am so happy to hear that."(그 말을 들으니 참 기쁘구나) 역시 난 어른들보다 아이들이나 심지어 처음 보는 남의 집 개들에게 인기가 있는 편. (가는 집마다 개들이 죽마고우를 만난 것처럼 놀자고 달려든다) 비결은 별 게 없다. 눈높이를 딱 여덟 살에 맞추고 아이가 웃으면 따라 웃고 다소 유치찬란한 농담을 주고 받으면서 아이가종알종알하고 싶어하는 말을 귀 기울여 잘 들어주면 된다. 밤 12시가 넘으면 인형들이 귀신처럼 돌아다닌다던가 하는 그야말로 귀신 씨나락 까먹는 뜬금없는 얘기를 아주 진지하게 맞장구를 치면서. "정말? 그러니 열 두시 전에는 자야겠지?" 하고 교훈적인 메세지를 남기면서. (아- 토이 스토리의 영향?)아이는 열 시에는 잔다고 한다. 순진하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