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장 파입기

옷은 왜 이리 많은가?

by 사각사각

한 때는 옷 사는 걸 매우 좋아했다. 직장에 출근이란 걸 했으므로 품위 유지비라는 명목으로서 옷에 신경을 꽤 썼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쇼핑을 하는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공허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스스로 주는 위로' 정도라고 보여진다. 마음이 붕 떠 있고 채워지지 않을 때 눈에 보이는 물건으로 그 자리를 메워보려는 애절하나 별 소득은 없는 심리.


다른 변명을 하나 하자면 외모에 관심을 두는 편이기도 하다. 옷이 날개라고 새로운 옷을 사서 입어보고 그 날 따라 자신이 유달리 괜찮아 보이면 기분이 좋아진다.


프리랜서가 된 지금은 딱히 옷을 차려 입을 일이 없게 되었다. 과외라는 건 주로 만나는 대상이 아이들이고 그 부모님들과 잠깐 스치 듯 마주치는 정도이다. 장소도 거의 누군가의 집으로 간다. 이러니 더욱이 외모에 대한 관심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직장에 다닐 때는 아침에 만났을 때 여성 동료분들과 인사성 멘트 내지는 주된 대화의 주제가 옷이나 외모 일때가 많았다.

"와~, 쌤 오늘 옷 정말 잘 어울리시네요."

"쌤, 머리 새로 하셨어요? 퍼머 예쁘신대요."


이런 시시껄렁한 대화로 시작하여 화제를 꺼내놓은 외모나 옷에 대해 여러 질문이나 감탄을 하며 더 디테일하게 파고 들어 간다. 이러니 날마다 연예인도 아니건만 기대에 부응하고자 다른 옷으로 갈아 입고 좋은 평가를 받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사람들의 시선에 민감하기도 하고 칭찬을 들으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날마다 만나서 장시간을 보내는 동료와 마주하여 할 이야기도 단편적이고 땅에 묻힌 천연자원처럼 고갈될 때가 많지 않나? 그러니 누구 하나를 도마위에 올려 놓고 씹고 즐기는 것이 인간들이 모였을 때 많이 하는 일 중에 하나이다. 인간이란 가끔 만나야 할 이야기도 무궁무진하고 넘쳐나지 너무 자주 만나도 소재가 떨어지고 지루해지는 것이다.


이제는 내 외모에 대해 꼬치꼬치 관심을 두고 평가하고 칭찬해 줄 인간도 없고 하니 옷 생활은 더욱 단순해지고 말았다. 이틀 정도는 당연하게 똑같은 옷을 입는다. 보통 수업은 하루를 걸려서 월, 수 이런 패턴으로 있을 때가 많다. 그러니 한 아이를 만나더라도 이틀을 연속으로 만나기는 어려운 것이다. 고로 같은 옷을 입어도 모른다는 지극히 쓰잘데 없으나 나름은 만족스러운 크나큰 발견. 하지만 지대한 인생 과제인 의,식,주 중에 옷 걱정 하나만 덜어도 삶은 급격하게 단순해진다.


날씨도 덥고 하니 대부분 청바지에 반팔 티를 주워 입으면 오늘의 외출복은 완성이다. 온도가 더 올라가면 원피스 한벌을 쓱 걸쳐 입으면 바람이 아래 위로 잘 통하는 시원하고도 심플한 착장의 완성. 충만한 뱃살도 가려줄 만큼 넉넉하고 풍성한 원피스들이라서 더 마음에 든다.

오늘도 옷 한벌을 우연히 꺼내 입었는데 내가 산 옷이 맞는가 싶을 만큼 몇 년동안 보지 못한 낯선 옷이었다. '너는 누구냐?' "우리 초면이 아니었나요?"

평소 옷 정리를 꼼꼼하게 잘하지 못하니 눈에 띄면 바로 선택하여 입는다. 그러니 옷장 사이에 빡빡하게 늘어선 옷 틈에 끼어 있으면 존재조차 잊고 고립사한 옷들이 백골이 될 때까지 몇 년동안 발견이 안 될 수도 있다. 일단 새로워서 입었는데 하늘하늘한 옷이 가슴 쪽이 많이 파여서 브롯치 하나로 막아서 급하게 중간을 가려보았다. 다시 벗고 입기도 심히 귀찮아서. 이 옷에 이런 하자가 있음을 모르는 것은 지난 몇 해동안 입었던 기억이 전혀 없어서이겠지.


우리나라에는 왜 사계절이 있어서 날씨에 적응하기 피곤하고 옷도 철마다 갈아입어야 하는지 푸념하며 외국에서 살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동남아가 좋은 이유는 사계절이 여름이나 초가을에 가까운 날씨라 옷도 비슷한 종류를 번갈아 입으면 된다는 점. 겨울이라고 점퍼, 코트를 구비하지 않아도 되고 무거운 옷을 이고 지고 다니느라 몸이 눌릴 일도 없다. 여름 옷이란 마음까지 날아갈 만큼 보통 가볍고 하늘하늘하지 않은가?


또 하나는 우리 나라 사람들이 유난히 외모에 관심이 많다. 패션 분야에서도 유럽의 이탈리아를 능가할 만큼 멋쟁이들이 많다고 본다. 항상 위, 아래 깔별로 옷을 잘 맞춰 입고 공작새 같이 깃털을 쫙 펴고 알록달록하고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우월한 외모를 뽐낸다. 오히려 아메리칸들은 사람과 취향에 따라 다르지만 옷도 실내복과 실외복 구분없이 대충 꿰어입고 다닌다.


예전에 학교에서 같이 일하던 원어민 샘은 일주일동안 똑같은 옅은 핑크색 후드티를 입고 학교에 출근했었다. (이 분이 여군에서 오래 근무하시고 맥ooo 에서 매니저로 일하셨던 이력이 있으셔서 인지도 모른다. 미국인들은 군대에 복무하면 학비, 의료비 등의 혜택이 크다고 들었다)


이 또한 처음 보는 광경이고 똑같은 패션이 지루하다 여겨지고 극단적이라 생각되었지만 외모에 대해 과도한 신경을 끄는 것도 인생이 한결 가벼워지는 일 중 하나가 아닐까? 내 인생을 누가 잘났느니 못났느니 신랄하게 평가하더라도 그 짧고도 얕은 관심이 식으면 곧 그만둘 것이고 나의 내면의 가치나 실체가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게 한낱 외모라면 더더구나.


이 참에 옷 정리를 대대적으로 하여 '언젠가는 다이어트를 하면 맞겠지.'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헛되고 헛된 부질 없는 기대를 받으며, 몇 년동안 바깥 바람 한번 못 쐬고 대기 중인, 이제는 억지로 집어넣어도 안 맞는 작은 옷들을 모두 버려야겠다. 나이가 들수록 비례하여 살은 부단히 찌고 전보다 더 마르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원래 몸매를 유지만 해도 천만 다행중에 다행.


그래도 즐겨입고 총애했던 몇몇 원색의 시원한 여름 원피스들은 못내 우리 함께 했던 추억이 아쉬워서 못 버릴 지도 모르지만 옷장 파먹기를 하면서 이 가혹한 시절을 꿋꿋하게 버텨보리라.

어쩌면 선호하고 자주 입는 옷 몇 벌이면 사시사철을 지내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다. 옷장도 냉장고도 싹 비우고 진정한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리.

머리를 채우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