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책을 했다. 장마가 왔다고 하니 하늘은 흐리고 공기에는 비가 스며들어 있는 것 같고 때 아닌 선선한 바람이 불어왔다. 칠월 초에 장마라니. 여느 때보다 장마가 일찍 찾아온 것 같지만 차라리 비가 잠시라도 뿌려주는 게 맹렬한 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에어컨이 없이는 낮에는 버티기 힘든 더위가 찾아왔다. 그동안은 맛봬기였을 뿐 진정한 여름이 '어디 한번 제대로 느껴봐라.' 하며 성큼 다가온 느낌.
산책길은 매일 비슷한 듯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운 빛깔과 모양의 꽃이 수줍게 피어났다. 땅 가까운 곳에 피어난 손톱만한 꽃을 보고 일일히 눈맞춤을 하자면 산책은 길어지나 이야기는 더 풍성해진다. 마음이 자연에 녹아들면서 자연스럽게 근심이 잊혀지고 푸른 빛에 물들고 윤이 난다. 아무 말도 불평도 없이 꿋꿋하고 담담한 자연에 동화되어 나의 흔들리고 불안한 존재도 잊게 되고.
평화롭기만한 오리 무리도 잠시 관찰하였다. 흰 오리 두 마리는 약간 떨어져서 각자의 사색에 젖어있고 갈색 오리 두어 마리는 수영을 즐기고 다른 몇 마리는 기둥에 올라 앉아 물끄러미 호수를 바라보고 있다. 흰 오리 한마리는 바닥에 앉아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있는 것이 불쌍하게도 아침 기온이 다소 추운 것 같기도 하였다. 단체 생활하는 오리들도 각자 떨어져서 자기 뜻대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구나.
산책길을 걷는데 맞은 편에서 오른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세가 있어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남자 분이 한걸음씩 걸어오시는 게 보였다. 아직 몸이 상당히 불편하신 듯 한데 다소 걸음이 빨랐고 발걸음이 꼬이는 듯 하더니 갑자기 몸의 균형을 잃고 쿵 바닥으로 쓰러지셨다. 단 몇 초만에 일어난 일이어서 주변에 있던 커플과 지나가던 한 사람이 얼른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그 분은 마치 나무가 쓰러지듯이 뻣뻣하게 오른쪽으로 쓰러지셔서 몸을 지탱하기 위해 팔로 땅을 짚지도 못한 무방비의 상태였다. 다리와 팔과 얼굴이 차례로 기울어 그대로 땅에 닿아있었다. 그 분의 고집있어 보이는 단단한 얼굴에 아픔과 당혹감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이 보였다. 커플 중 남자분이 좀 호들갑스럽게도 위험하다며 119를 불러야 한다고 했고 넘어지신 분은 어눌한 몇 마디로 간신히 그를 만류하고 있었다. 이미 세 사람이 있었고 그 분이 너무 당황스러워 하시는 것이 역력하여 나는 그대로 그 장면을 지나쳐갔다. 그 분이 다시 무사히 일어나시기를 마음속으로 잠시 기도하면서.
겨울 날 멀쩡히 시내를 걸어가다가 빙판길에서 넘어져 본 적이 있는가?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고 과도한 관심을 가지면 더 창피하고 마음이 불편할 것 같다. 거기에 한쪽 몸에 마비가 와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면 더더구나 사람들의 무례한 시선이 힘들 것 같았다.
다행히도 반 바퀴쯤 돌아서 다시 같은 장소에 이르러 보니 그 분은 다시 일어서서 같은 길을 천천히 걷고 있었다. 병원에 실려 갈만한 상황이 아니고 다만 일어날 힘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잠시 손을 내밀어 일으켜주기만 한다면 다시 자기 힘으로 한걸음씩 걸을 수 있는 것이다. 그 걸음이 매우 어색하고 돌 지난 어린 아이가 막 걸음걸이를 배우는 것 같을 지라도. 부단히 걷다보면 언젠가는 몸의 마비에서 나비처럼 자유롭게 풀려나 날아갈 날이 있을 것이고.
긴 장마를 함께 데리고 올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이제 집에 가서 매콤한 오징어볶음을 만들어 밥을 먹고 또 오후 수업을 준비할 시간이다. 현재 힘들어하는 모두에게 일어나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길 힘이 생기길 간절히 바라며.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