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이의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아이가 수업 후에 어머니가 잠깐 이야기하기를 원하신다고 말을 꺼내 놓았다. ‘음~올 것이 왔구나.’ 기말고사가 끝난 시점. 아이의 성적이 예상보다 더 좋지 않았고 이에 실망한 부모님이 과외를 그만하고 싶다고 이야기할 것이라는 느낌이 이미 들었다. 남다른 촉으로. 평소에도 그리 해맑지는 않지만 아이의 표정도 영 밝지가 않았다.
어머니와는 처음 상담할 때 만난 이후로는 얼굴을 마주대한 적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이가 너무 공부를 하지 않는다. 아이와 감정이 좋지 않아서 여행을 다니며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이사를 갈 예정이고 그래서 과외는 그만두고 싶다.”는 이야기를 속사포처럼 털어 놓으셨다. 솔직하게 대화를 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 없다. 그간 속 시원한 사정에 대해 듣지 못하고 어느 날 날벼락처럼 문자 하나로 과외가 중단되는 일이 힘들었을 뿐이다.
청소년 아이들을 가르치다보면 부모님과 아이들 사이에 골이 매우 깊은 경우가 많다. 특히나 중학생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 들다보니 자기 의견이 분명하게 생기고 부모님의 입장에서는 ‘반항’을 하는 일이 많고 충돌이 생기는 것이다. 어머님의 하소연은 길었고 아이와 소통이 잘 안 되는 것 같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의 입장은 난감하다. 내 앞에서 아이는 기초 실력이 매우 부족하고 습득이 느리고 자기표현이 확실하지 않은 편이기는 했지만 말 잘 듣고 얌전하고 착하기만 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다 듣고 보니 어머니에게 객관적인 평가와 함께 약간의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
첫째, 십대 아이를 가진 부모님들은 백이면 백 아이들과 충돌이 있다. 물론 개중에는 사춘기를 다소 무난하게 보내고 부모님 말씀도 잘 듣는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본 사례 중에는 거의 없다. 중학생 혹은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은 한결같이 아이들과 냉전중이다. 그러니 어느 정도는 ‘질풍노도의 시기로구나.’ 하고 마음을 비우고 아이와 조심스럽게 소통을 시도하면서 마음을 서서히 열도록 했으면 좋겠다. 복장이 터지더라도 조금 기다려 주고 아이가 성숙하는 과정을 인정해주는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더 이상 고분고분 부모님 말씀을 듣는 세상 모르는 초등학생 어린아이가 아니라는 점. 자기 뜻대로 자기의견을 펼치기 시작하는 때이다. ‘내 아이만 이렇게 막나가는 반항아가 아니다.’ 라고 하면 좀 위로가 되지 않는가?
둘째, 아이가 집에서 볼 때마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 사실 이 아이는 스터디 카페에 다니고 있었고 문제를 많이 틀리더라도 숙제는 꼭 하는 성실함이 있는 아이였다. 아이 입장에서는 “제가 공부할 때는 엄마가 집에 안 계시고 놀고 있을 때만 보시고 잔소리를 시작하세요.” 라고 미치고 팔짝 뛸 억울함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하루 종일 아이가 공부를 하는 지 눈으로 지켜볼 수 없다면 아이가 숙제를 했거나 공부한 흔적 정도를 확인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도 자기 패턴대로 혹은 여력대로 공부를 하고 있는 데 부모님이 계속 볼 때마다 질타만 하면 마음이 상하고 더 사이만 멀어지게 될 것이다.
셋째, 공부가 체질에 맞지 않는 아이가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사실 안타까운 경우가 있다. ‘이 아이는 공부 외에 다른 길을 찾는 것이 좋겠다.’ 는 생각이 분명히 들기 때문이다. 과외를 하는 입장이니 그렇다고 밥줄이 걸려 있는데 이런 직언을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아직 십대이니 더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는 것을 안다. 하지만 엄연하게 다른 아이들과 경쟁을 해야 하고 결과가 영 긍정적이지만은 않은 경우도 꽤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넷째, 부모님은 객관성을 가지고 아이를 바라보았으면 좋겠다. 물론 이것이 ‘금쪽같은 내 새끼’에게는 어려운 일인 것을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아이에 대한 부모님의 기대가 너무 높은 건 아닌지 나만큼도 안 되는 것 같은 아이를 그 아이의 능력치는 고려하지 않고 심하게 닦달하는 게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고학력에 엘리트인 부모님이 더 심하다!) 아이에게 과도한 기대나 부담을 주는 것도 또 다른 형태의 학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십 대 아이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부모님의 맹목적이거나 지나친 교육열에 부응하지 못함을 자책해서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아이를 잘 관찰하고 이 아이의 재능이 무엇인지 발견해보고 그 방면으로 아이를 이끌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 공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이 어머님은 간단히 끝내고 싶은 대화였을 수도 있으나 부모님의 판단이 아닌 제 삼자로서 지켜본 아이에 대해서 변명 내지는 평가를 하느라 시간이 거의 삼십 분 이상 소요되었다. 하지만 이 대화를 통해서 어머님이 오랫동안 기간제 교사를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안에서 공감대가 더 깊어지게 되었다. 학교에서 10%가 될까 말까 한 기간제 교사로 근무를 하다보면 주관적일 수도 있으나 온갖 설움과 차별의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하니 함께 싸운 전우와 같이 무용담을 나누며 으싸으싸하게 되고.
이렇게 어색하게 시작된 대화이지만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인간 세상에서 개인사를 진솔하게 나누다 보면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는 깊어지게 된다. 우리가 보거나 판단하는 타인의 모습은 극히 일부분 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 누군가의 딸이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
꽃으로도 때리지 말하고 하였거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