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수업이 하나밖에 없다. 점심을 먹고 가야 해서 마음은 조금 조급하지만 그래도 오후 커피와 함께 하는 글쓰기 시간은 즐겁다. 밥때는 무슨 일이 있어도 확실하게 챙기는 한 인간. 혹시라도 수업 시간에 기력이 떨어지거나 배가 고프면 안 되지 않을까 미리 하는 기우이기도 하고 핑계될 것도 없이 그냥 먹는 걸 좋아한다. 인간이 기분이라던가 몸의 상태가 최상에 있어야 일도 잘되고 하는 것이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 이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어제 브런치 북으로 올라온 "우리는 미국에서 망했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미국에 이민 가서 겪었던 온갖 어려움과 실패담을 쓴 글이었는 데 다음 화가 은근히 기대되고 계속 궁금증을 자아내고 흥미진진했다. 저자는 가족에게 사기를 당한 일도 있고 이민 생활의 마음 아픈 경험을 적어놓았지만 시니컬하고 유머가 있는 문장들이 섞여 있어서 매우 흥미롭고 생생했고 거의 다 끝까지 읽게 되었다.
한 때는 미국에 잠시라도 가고 싶었다. 잠깐 공부를 하러 가는 정도였지만 영어를 전공하다보니 같은 과 친구들도 어학연수를 다녀왔고 영어권의 사회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나의 원대한 계획은 용기가 부족하여 무야무야 무산되었지만 그 후에 간접적으로 보고 들으며 미국이라는 나라에 점차로 흥미를 잃었다.
미국이란 너무 넓어 이동하기 불편하며 개인 의료 보험이 비싸고 서비스는 좋지 않고 재수 없으면 인종차별을 당할 수도 있으며 이민 1세대가 된다는 건 그야말로 타국에 정착하여 뿌리내리기 위해 내 몸을 갈아 넣는 일이다. 2세대라면 모를까 1세대는 싫도다. (우리 부모님이 이민을 안 가셨으니 이미 불가하고) 영어강사인 내가 미국에 가면 어느 날 캐셔가 되어야 하는 현실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하아~여기에서 처절한 자기 반성을 해본다면 나의 글에는 하나의 뚜렷한 주제가 없다는 점이다. 워낙에 인간이 하나에 몰두를 하지 못하고 이것저것, 여기저기에 관심이 많다. 그러다보니 각각의 글들이 다 목소리를 높이고 제 주장을 한다. 무언가 하나로 연결되고 관통하는 주제라는 게 없는 느낌이랄까? 이건 나란 인간이 원래 천방지축이고 그러해서이다.
글을 읽다보면 그 사람이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느껴질 때가 많다.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 흥미를 느끼는가? 이성의 경우에는 서로 반대되는 성향에 끌리고 동성의 경우에는 유사한 유형과 어울린다는 속설이 있다. 모든 경우에 백 퍼센트 맞는 이론은 아니겠지만 그래서 결혼 후에 부부들은 서로 다른 성향의 인간에게 매력을 느끼고 신나게 만나서 결혼까지 이르고 어느 날 환상의 꿈에서 깨어난 듯이 깜짝 놀라며 서로의 다름을 지적하며 지지고 볶고 하면서 싸우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의 경우는 대부분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만나니 의기투합하고 으싸으싸하며 만나면 즐겁고 헤어지면 아쉽고 하는게 아닐까? 하지만 여기에는 친구와는 24시간 붙어서 살지 않고 경제라든가 중요한 문제들을 공유하지 않는 다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
어찌 되었든 글은 생생하고 자기의 유일무이한 경험과 독특한 감상이 그대로 들어간 글이 마음에 와 닿는다. 내가 매일 글을 쓰는 이유도 그 순간의 살아 있는 느낌과 감정을 잡아내고 싶기 때문이다. 건망증이 있는 인간이라서 얼마 지나면 순간의 감정은 사라지고 다른 새로운 일과 감정에 또 몰두한다. 트라우마에 가까운 일이나 감정이 아니면 일상에 파묻혀 살아가다 보면 곧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치 글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형상이다. 이로써 나는 혼자 있어도 마음을 터놓는 상대를 만나는 것처럼 벅차게 글과 마주한다.
또 한가지 나는 글을 쓸 때 누구를 비난하거나 훈계하려고 쓰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겪은 일이나 당시의 감정상태를 써 내려가며 돌아보고자 하는 자구책일 뿐이다. 그러니 나의 글로 인해 마음이 찔리다던가 해도 그 뿐이지 나의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든지 하는 건 좀 그렇다. '어떤 일로 반복적으로 마음이 상하고 인간 관계에서 이런 결말이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당사자로서의 의견을 밝히는 데 '상대방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고 한들 내 마음이 일말의 위로를 받겠는가?(그렇다고 바뀔 마음도 아니고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 자신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고 있는 일이고 상대방의 행동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도 인정한다. 다만 내가 바라는 바는 한번쯤은 상대의 입장에 서서 같은 일을 내가 겪어도 괜찮은가 역지사지의 마음을 가지길 바랄 뿐이다. 다함께 사는 밝고 명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섣불리 다른 사람의 글에 조언을 다는 건 위험하다. 모두가 성인이고 자기의 생각과 주장을 펼칠 권리가 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글에 반박을 하는 건 그 사람의 입장이 아니면 매우 조심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커피 타임은 끝나가고 있다. 부드러운 피아노 음악이 흐르는 곳에서 다시 만나기를 고대하며 글과 아쉬운 이별을 한다. 다른 분들의 진솔한 삶과도 종종 마주하고 허물 없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 모두에게 건승을 빌며 이만 밥 먹으러 총총~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