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공주는 열 다섯이 되었고 첫사랑의 아픔을 겪고 있었습니다. 왕자가 깨어나서 동네 아가씨가 자신을 바다에서 구해준 것으로 착각하여 그 여자와 다정하게 왕궁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본 후였습니다. 인어 공주는 아직 어려서 사랑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사랑은 어떤 것일까? 사랑은 바다 위로 떠오르는 아침 햇살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것인 줄로만 알았어. 하지만 밤마다 아쉬움에 눈물로 지새고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파.’ 이제 처음으로 사랑을 느낀 공주는 사랑의 상실감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셋째 언니와 각별하게 가까운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언니에게 왕자를 만난 스토리와 혼자만의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 인어 공주야, 사랑은 달콤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쓰디쓴 맛도 있단다. 앞으로 살아가다 보면 다른 사람을 만나서 조금은 더 어른스러운 사랑을 하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언니는 과거에 자신이 겪었던 지나간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며 막내 인어 공주를 위로하였습니다.
‘ 아~ 사랑이란 쉽지만은 않은 것이구나.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또 다른 새로운 사랑이 찾아올 수도 있는 것이고.’
인어 공주는 눈물을 흘리며 깨달았습니다. 언니는 안타까운 눈길을 건네며 인어 공주의 머리를 가만히 안고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왕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인어 공주는 매일 밤 슬픔에 잠겨 구슬픈 이별 노래를 불렀습니다. 몇 달이 지나자 왕자에 대한 마음도 희미해지고 상처가 차차 아물어가는 것을 느꼈지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인간들의 바깥세상이 어떠한지 너무나 궁금하고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바다 속에서의 삶은 아무 걱정없이 평화롭고 행복했지만 외향적인 인어 공주는 새로운 세상을 보고 모험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인어 공주의 바다 나라에는 나쁜 마녀와 착한 마녀가 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먼저 나쁜 마녀에게 찾아갔습니다. "네가 지금이라도 왕자의 사랑을 빼앗아오려면 목소리를 나에게 주어야 해. 그리고 왕자와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너는 물거품으로 변해버릴거야." 마녀는 음흉한 웃음을 띄며 말했습니다. 공주의 목소리는 너무도 아름다워서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다른 인어들에게 비싼 값을 받고 판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아니오. 저는 제 목소리를 잃고 싶지 않아요. 왕자님을 다시 만난다고 해도 제가 구해 준 사실을 말할 수 없잖아요. 그리고 전 마음이 아팠지만 왕자님과의 사랑은 포기하였고 왕자님이 새로운 사람과 행복하게 사시길 바랄 뿐이에요." 공주는 미련없이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인어 공주는 스무 살이 되어 성인이 될 까지 날마다 바닷속에서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족들과 즐겁게 살았습니다. 색색깔의 예쁜 물고기들과 돌고래들이 함께 수영하고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면 바깥 세상을 한번은 꼭 가보고 싶은 소망을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인어 공주는 착한 마녀의 집에 찾아갔습니다. 착한 마녀에게 사람이 되어서 인간 세상을 꼭 경험해보고 싶다고 간청을 하였습니다.
"그래. 내가 너에게 신비한 약물을 줄 텐데 그것을 마시면 꼬리가 변해서 다리가 될 거야. 하지만 세상에 나가서는 너의 힘으로 돈을 벌고 자립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바다 속에서 사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 거란다. 그래도 독립을 해서 살다보면 진정한 어른이 될 수 있을거야." 착한 마녀는 인어 공주에게 물약을 건네주었고 공주는 자신이 가장 아끼던 어머니에게 물려 받은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인간 세상으로 나온 인어 공주는 초, 중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마쳤습니다. 그리고 수영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비록 꼬리가 다리로 변했지만 어린 시절부터 바다 속을 유영하며 지내던 실력은 보통 사람보다 뛰어났습니다. 아가미와 코로 숨을 쉴 수 있는 인어 공주는 물 속에서도 얼마든지 숨을 참을 수 있었지요. 체대에 들어간 인어 공주는 수영으로 세계 선수권과 올림픽에 출전하여 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느 새 이십대 중반이 된 인어 공주는 코치가 되어서 선수 생활을 그만두고 후배 양성에 힘을 썼습니다.
인어 공주는 항상 아침마다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의 수영장에 가서 혼자 수영을 하곤 했습니다. 사람이 적은 아침 시간에 수영을 하면 어린 시절 바다 속에서 살던 기억이 떠오르고 고요한 바다 속 세상의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바다는 인어 공주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었으니까요. 몇 달에 한번씩 인어 공주는 먼 바다로 배를 타고 나가서 인어 언니들과 약속한 무인도에서 만나 짧은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인어 공주와 언니들은 인적이 없는 새벽 바다에서 함께 웃고 수영하며 수다를 떨기도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언니들이 경험하지 못한 인간 세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언니들은 입을 딱 벌리고 신기하고 재미있어했지요. 언니들과 즐거운 몇 일을 보내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올 때는 마음이 쓸쓸해지기도 했습니다. 혼자 인간 세상에 사는 것이 외로울 때도 있었지만 인어 공주는 독립해서 사는 것에 만족하였고 아이들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일에 보람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수영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로비에서 한 남자를 마주쳤습니다. 아마 한참 인어 공주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남자는 수영장에서 몇 번 본 듯 했는 데 태도가 성실하고 배려가 몸에 밴 듯 보였습니다. 가끔씩 눈이 마주칠 때의 순진한 표정과 미소가 매력적이였고요. 남자는 바다처럼 푸른 미소를 띄며 인어 공주에게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바다에 부서지는 흰 파도 소리가 인어 공주의 귀에 아스라히 들려오는 것 같았지요.
" 저~수영장에서 몇 번 뵈었는데요, 혹시 시간 있으시면 커피 한잔 하시겠어요?" 조금 머뭇거리며 남자가 나지막하고 굵은 저음의 목소리로 데이트를 신청했습니다.
"아~ 네 그럴까요?" 인어 공주는 부끄러워하면서 발그레해진 볼로 대답했습니다. 다시 가슴에 파도가 치고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두근두근. 처얼썩.
하늘인가 바다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