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로 오랫만에 지인에게서 카톡이 왔다. 이미 몇 년인지 떠오르지 않을만큼 오래되었다. 카톡 메세지가 띠링 하고 오면 순간 망설여진다. 일단 먹고 사는 중차대한 일이 아니면 카톡에 바로 답하지는 않는 스타일이다. 오랫만에 연락하는 지인이라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열기가 두렵기도 하지 않나? 판도라의 상자를 바로 열 것인가 말것인가 한동안 주춤거리게 된다. 일단 열고 곧바로 답을 안하면 읽씹이라 비난을 받게 되는 카톡의 특성도 열어보는 데 뜸을 들이게 한다.
시간도 여유로웠고 호기심도 생겨서 몇 분 후 마음을 가다듬고 메세지를 눌러보았다. 내용은 극히 간단하게 다른 샘과 만나서 대화하다가 문득 내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낸다는 것이었다. 왈칵 그리움이 몰려왔다. 이 얼마만의 고립 생활 중에 단체로 대면 만남이 성사되는건가?
그리운 마음을 쏟아 놓았다. "예전에 샘들과 펜션에 놀러 다니던 시절이 그립다. 어디 일박 아니면 이박이라도 놀러가고 싶다." 이 항상 앞서 달려가는 생각 때문에 평생 고생인데 제 버릇 개를 못 주고 있다. 이 샘은 천상 여자같고 한국적인 단아한 외모에 미소조차 온화하시다. "그럼 우리 조만간 만나서 여행을 의논해 볼까요?" 하고 간결하게 답을 주셨다. 그리하여 우리 네 명 십 여년전에 함께 근무한 경력이 있는 샘들은 전격적으로 만남을 갖기로 했다.
그 당시 이 샘들과는 자주 만나고 틈만 나면 함께 밥을 먹고 시험 때마다 자축을 하며 명동이나 이태원으로 곳곳을 쏘다니며 쇼핑도 다니고 했던 추억이 있다. 따로 혹은 다같이 수많은 만남을 가졌으니 오랫만에 연락해도 그 기억들이 와르르 쏟아져 들어와 시간의 간극을 메우는 것이다.
한분은 위에 언급하였던 천생 여자 샘으로 세상 가장 부러운 사서 샘이다. 당시에도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시끄러운 공간을 꺼렸기에 이 샘의 뚝 떨어져 있고 심지어 건물마저 다른 고요한 도서관에 자주 찾아갔다. 눈길을 우아하게 깔아 내리신 이 샘이 처음에는 무척이나 차갑게 보였으나 실없이 말을 걸고 보니 다정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간식으로 떡볶이를 사들고 가기도 하며 또 동갑이어서 더 친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다른 한 분은 같은 과 영어샘. 이 샘은 화통하시고 시원시원하시다. 이 분의 주도로 우리는 중국 서안까지 함께 여행한 적이 있고 둘이 홍콩과 마카오를 따로 여행간 적도 있었다. 그 패키지는 중국 심천에서 시작하여 홍콩을 거쳐 마카오로 세 나라를 이박 삼일만에 번개 같이 통과하는 코스에 비해 꽤나 저렴하였는 데, 싼게 비지떡이라며 캐리어를 끌고 홍콩에서 마카오까지 가는 배까지 낑낑대고 다니면서도 헤헤거리고 즐거워했었다. 아마 패키지에 짐을 나르는 비용은 포함되지 않았나보다. 밤까지 무거운 짐을 끌고 다니며 숨이 찬 일정으로 고생했던 기억은 오히려 하나의 에피소드로 남아 잊혀지지가 않는다.
다른 한분은 우리 사이에서는 가장 젊으시고 천재과로 통하는 샘이다. 감히 범접할수도 없는 서ㅇ대학을 나오신대다가 항상 새로운 정보와 신문물과 재밋거리가 넘쳐나셔서 간혹 일반인 같지 않고 실로 엉뚱하나 늘 참신한 웃음을 주시는 분이다.
여기에 놀러 가는 여행이라면 묻지고 따지지고 않고 모든 일을 내려놓고 참여하는 나까지 포함하여 한번은 펜션으로 놀러간 적도 있었다. 이 검색의 달인이자 지식인들 덕분에 머리를 쓸 필요가 없어져서 불도저 같이 운전을 하여 이 분들과 포천 일대의 아트 밸리, 온천 등의 관광지들을 돌았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각자 개성이 뚜렷하나 조화를 중시하고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예의를 갖추신 분들이다.
이리하여 이 샘들과의 재회가 무척이나 그리워진다. 다들 방학이시라 몸이 근질근질하신듯 하니 여행은 곧 성사될 것이다. 코로나의 엄중한 시국에도 우리는 다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을 추억 하나를 만들고자 길을 떠난다.
꽃처럼 어여쁜 그녀들을 기다리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