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라 월요일부터 오전 시간으로 수업을 바꾼 아이가 있었다. 엄마 집에서 일요일을 보내고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삼 사십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언젠가 한번 월요일날 차가 막힌 일이 있어서 아예 한 시간 전에 출발을 했다. 요즘 두어번 일요일 아침마다 수업시간에 늦어서 죄송한 마음과 마음 한구석의 깊은 찔림이 있었다.
아이의 집에 도착해서 인터폰을 눌렀는데 반응이 없었다. 한참만에야 인터폰에 대답을 한 아이는 학교 온라인 수업을 하는 중이라며 원래 과외 시간인 오후 네시에 다시 오란다. 두둥~ 기가 막히네. 방학 때부터 월, 수, 금 오전 11시로 시간을 변경해달라고 부모님이 요청하셔서 엄마 집에서 노니락거리다가 서울에서부터 달려왔건만. 아이가 수업 중이라 더 대화를 할 수도 없었고 일단 몇 마디 꾸중을 하고 돌아섰다. 지난 주부터 문자를 보내면서 확인을 했는데 아이가 방학하는 날을 정확히 모르고 있더니 결국은 헛걸음을 하게 한 것이다.
이미 벌어진 일에는 포기가 빠른 편이다. 포기는 배추 셀 때나 하는 게 아니라 일이 어그러질 때마다 종종 해야한다. 이미 엎질러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이제 다섯시간이나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연구하는 게 속 편하다. 일단 집으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요즘 찜통 더위로 좁은 집안에 있는 것이 갑갑하기만 하였다. 그렇다면 근처에서 가능한 쾌적하게 길고 긴 시간을 버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다행히도 이 아이의 집 근처에 스ㅇㅇㅇ 커피점이 새로 오픈 한 것을 발견하였다. 급한 대로 아침부터 커피점에 득달같이 들어갔다. 마음에 쏙 들만큼 널찍한 공간에 오전 시간이어서 사람마저 거의 없었다. 음하하~이 정도면 만족.
아침도 자알 챙겨먹고 왔으니 커피 한잔만 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이상스러운 보상심리가 발동하여 쵸코가 가득 발린 케익에 한참 눈독을 들였다. 이 케익을 보는 순간 모든 화가 오뉴월에 눈 녹듯 사라졌다. 그렇다면 당연히 먹어주어야하는 것이 인지상정이지. 아침부터 일어나서 달려오고 허탕을 친 기분에 스스로 작지만 칼로리는 무한정 높은 위로를 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달달한 케익와 생크림으로 당을 머리끝까지 올려주니 화가 들어찰 자리가 없다. 대만족!
쵸코야~ 사랑한다 마침 고3 모의고사 문제를 보아야 했기에 신문지 만한 책을 떠억 펼쳐놓고 열심히 보는 척 했다. 하지만 왠지 집중력이 떨어져서 해설지만 대충 훓어보았다. 아~요즘 수능 문제를 풀다보면 화딱지가 버럭 난다. 대체 어디서 끌어다온 논문인지, 원서인지 한글로 읽어도 이해가 안되는 데 영어로 해석하라니. 이 따위로 이해가 안가게 쓴 글을 해석하려면 철학인지 심리학인지 과학인지 이 모든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할 판이거나, 이 저자가 글쓰기 수업이라도 들어서 일반인이 쉽게 알아 먹게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인용할 자료가 그다지도 없어서 요점도 모르겠고 이 얘기 저 얘기 삼천포로 빠지고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길이 뚝 끊긴 것 같은 두서없는 글을 가져오는가? 그래서 다시 슬슬 끓어오르는 짜증을 잠재우려 늦은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
아이의 집에 가니 이 놈의 고양이가 어제 준 간식이 맛있었는지 몇 달만에 처음으로 아는 체를 한다. 주먹만한 머리를 마구 나에게 들이대며 부비적거리고 추근대었다. 슬프게도 어제 간식을 모두 줘서 남은 것이 한 톨도 없는데. 요 녀석의 머리에 내가 순순히, 한알 한알 간식을 내어 주는 기계로 아주 단단히 인식이 된것 같았다. 모든 애교를 담아서 드러눕고 내 다리, 팔 여러 곳에 몸을 문질러대었다. 심지어는 내 샌들 냄새까지 사랑하는 듯 킁킁 냄새를 맡는다. 취향이 독특한 고양이같으니. "그래도 간식이 없다. 너도 아이와 함께 강제 다이어트에 들어간 거다." 말이 안 통하니 눈빛마저 간절하게 레이저처럼 쏘아보는 고양이를 외면할 수 밖에 없었다. '왜 간식을 내놓지 않느냐?' 하고 가냘프게 야옹대면서 눈으로는 욕을 하고 있었다.
그냥 드러누워도 예쁘지 않느냐? / 간식을 내놓아라
신발 냄새를 맡아도 간식은 없단다. 아이에게 아침부터 다섯 시간을 기다린 자초지종을 설명하면서 울컥 화가 좀 올라왔다. 기억 상실증이었다가 순간 아침의 기억을 회복한 것 같았다. 심지어 갑자기 졸리기까지 해서 커피가 있냐 했더니 아이가 미안한지 믹스 커피를 찬물에 정성껏 타서 대령하였다. 프림이 다 녹지도 않았고 물이 컵에 한 가득이라 밍밍한 믹스커피라도, 정성이 갸륵하여 마음이 한결 누그러졌다. 무슨 운명인지 모르겠으나 앞으로 방학동안에는 꼬박꼬박 일주일에 세번씩 만나자. 개념을 상실한 고양이와 아이야. 있을 때 잘하렴. (ㅋ)
먹으며 화를 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