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갔다와서 달콤한 낮잠을 청했다. 어제부터 배탈이 났는데 아이가 바나나 우유를 만들어주었다. 우유에 계란 노른자만 넣고 설탕 한줌과 바나나 몇 조각을 넣고 갈아서 만든 거란다. 이 아이가 아직 어리나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하는 걸 보니 미래에 요리사가 될 수도 있겠다. 배탈이 났지만 정성을 갈아 넣은 바나나 우유를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달달하고 당연하지만 바나나 향이 나는 맛! 설탕이라니 같은 다이어트하는 처지에 잔소리를 좀 하였지만 아이는 설탕이 없이는 이 맛이 안 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건 반박이 불가한 진정으로 옳은 소리지만. 그나저나 계란 노른자라니 쌍화탕에 계란을 띄운다고는 들어보았으나 바나나 우유에 생계란 노른자라니. 뭐 모로 가도 맛있으면 된거다.
몸이 갈구하는 라볶이를 꿋꿋하게 먹고 낮잠을 두시간 정도 푹 자고 자니 몸이 좋아진 느낌이었다. 아침보다는 컨디션이 상승하는 느낌. 지루한 오후 시간을 보냈으니 상큼하게 카페 나들이를 떠나볼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러 가지만 차가운 얼음을 먹어서 배탈이 났냐고 추궁하시는 팔 순이 가까우신 어머님께 산책하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카페에 왔다. 카페 나들이 후 공원에 산책하러 갈 생각도 있으니 백프로 거짓말은 아닌 셈. 원없이 쉬고 일어났더니 흐린 하늘에 비가 뿌릴 것 같은 날씨에도 기분이 묘하게 편안하게 안정되면서도 만족감으로 파닥파닥 날아갈 것 같았다. 세상이 다 아름다워보이고. 간판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오래된 동네의 풍경조차 친구처럼 말을 걸어오는 듯 하다.
얼마 전 방문한 점 찍어둔 카페는 대학 안에 있는 카페이어서인지 일요일에는 문을 닫았다. 다른 한 군데는 건물 전체가 공사중이었다. 잠시 당황했지만 카페는 넘쳐나니까 가볍게 세 번째 카페로 들어섰다. 친구들과 나지막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홀로 노트북을 들고 작업을 하시는 젊은이들이 대부분이다. 각자 노트북을 들여다보면서 그 숫자만큼이나 많은 다른 세계에 빠져있는 시간. 바로 옆 테이블에 옹기종기 함께 있으나 투명하거나 보이지 않는 유리막 하나로 막힌 자기만의 공간에 있는 것이다. 그들의 뇌는 각자의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중.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가 없으나 그대로 지극히 평화로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을 뿐.
코로나가 시작된 이후는 속세를 반쯤은 떠난 느낌이다. 게다가 하고 있는 일도 프리랜서이다 보니 사람들과 함께 모여서 일하고 하는 일이 없어졌다. 코로나로 인한 몸의 고립과 불편한 마스크 생활과 감염에 대한 끝도 없는 우려는 우리를 힘들게 하고 있지만 정신적으로는 훨씬 자유로워진 것 같다.
얼마 전 지인들과 만나서 그들의 지지고 볶는 사회 생활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드라마보다도 더 극적인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들을 듣다보니 재미는 넘쳐 났지만 그 사람들 속에서 떠도는 머리 아픈 일들에 얽히지 않는 삶이 다행이라고 여겨졌다. 인간 세상에서 살면서 서로 의도치 않았으나 상처를 주고 받고 의견이 엇갈리고 그 안에서 분노하고 하는 일쌍 다반사 드라마들이 얼마나 사람을 지치게 하는가? 오히려 일은 인간 관계보다는 쉬운 편이다.
속세를 떠날까?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의 애청자로서 속세를 떠난 삶에 아주 관심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자연 뿐 아니라 카페와 북적거리는 거리를 사랑하는 도시녀로서 속세를 아주 멀리 떠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몸은 속세에 걸쳐 있으나 정신은 속세를 반쯤은 떠나 살고 싶다. 코로나 시국에서 얻은 예기치 못한 고립의 달콤쌉쌀한 자유로움. 몸은 고립되었으나 정신이 맑아지고 숙성되는 시간이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 상황에서 비로소 오래 외면하였던 자기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나 자신을 만나서 소곤소곤 대화를 나누며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깊이 탐구해 나가는 시간. '앞으로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타인에게 묻던 엄중한 질문을 돌려서 자신에게 해보는 시간. 그리고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을 이루고자 잠시 웅크리고는 있으나 부단히 준비를 하는 때! 고양이처럼 숨어서 사냥을 나갈 때를 엿보고 있는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