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혼자 사는 것이 힘들다. 혼자 살아보니 왜 인간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족을 이루는 지 알 것 같다. 혼자 사는 것은 인간 존재 자체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 이상의 뼈에 사무치는 플러스 알파가 있다. 입에 거미줄을 치지 않도록 말 한마디라도 건넬 다른 사람의 온기가 집안에 있느냐 없느냐의 어마어마한 차이. 그리하여 매 주 토요일 수업이 끝나면 서울의 가족에게 직행하게 되었다.
동생에게서 엄마가 다치셨다는 카톡이 왔다. 단지 집에서 운동을 하려고 점핑 보드에 오르다가 발을 헛디뎌 넘어져서 발과 가슴 부위를 세게 부딪쳤다는 것이다. 이러니 코로나 때문에 집에 있어도 예기치 않은 일로 다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싶다. 피해갈 수 없는 운명같은 것이 있다는 것.
다행히도 동생이 곁에 있으니 엄마는 몸을 일으키고 위로를 받고 파스를 붙이고 다음 주에는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도 찍을 수 있었다. 큰 이상은 없고 타박상이나 근육통 정도인 것 같다.
이러니 가족이 있어야 위급상황에서 도와줄 수 있고 극단적으로는 백골로 발견되기 전에 고독사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119를 부르면 되지만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무방비 상태에서 낯선 이를 부르면 불안하고 창피하고 마음이 더 괴로울 것이다.
주말 동안 동생과 나, 나와 엄마, 엄마와 동생과의 언쟁으로 세 번의 다툼이 있었다. 가족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바탕에 깔고 있으나 서로의 입장과 주장은 팽팽하기만 하였다. 아무리 효녀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내 믿음의 근간을 흔드는 일은 할 수가 없다. 엄마와 나는 종교가 다르다.
효도를 한다고 해도 한 시간 동안이나 도무지 공감을 할 수 없는 교리를 내세우며 소리소리 지르는 영상을 나란히 앉아 보는 것을 참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으아,. 왜 수십년간 다른 길을 가고 있는데 이제와서 또 나를 개종 시키려 하는걸까?결국은 보기도 전에 몸서리를 치며 소리를 빽 지르고야 말았다.
결론적으로는 가족이 필요하기는 하나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존중해주고 본인의 생각 또한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자신만의 신념과 가치관이 있고 믿는 그대로 살아간다. 내 사고와 판단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이고 타인과 타협이 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그렇다면 비무장 지대처럼 서로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공간은 침범하지 않아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
과도하게 화를 내긴 했으나 산책을 다녀오면서 엄마가 좋아하는 비비고 전복내장죽을 세 팩 사왔다. 전날 그 제품이 없어서 보통 전복죽을 사갔지만 입맛이 까다로우신 어머님이 아쉬워하셨다. 식탁 위에 올려놓고 엄마가 외출에서 돌아올 때 밝게 외쳤다.
"엄마, 전복내장죽 사왔어."
이로서 어색한 사과의 말은 오가지 않았으나 화해의 무드는 조성되었고 다시 소파에 앉아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든 관계가 항상 매끄럽고 의견이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이로써 누구든지 함께 살고자 하면 의견 대립도 피해갈 수 없는 일이란 걸 명심해야 한다.
외로움과 다툼 중에 하나를 선택하려면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외로움 반 스푼에 투닥거림 반 스푼을인생의 간이 딱 맞도록 적절하게 버무려야 할까. 개인주의자 내지는 평화주의자이자, 무리에 들어갔다가도 홀연히 나오고 싶은 인간의 답이 없는 고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