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해외 입양을 보내는 것일까?

이해가 안됨...

by 사각사각

해외 입양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해외 입양의 어두운 면이 그려진 내용이어서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해외 입양을 보내고 있는 데 예전에는 이를 긍정적으로만 보았다. 부모님이 키우지 못하는 아이에게 훌륭한 양부모님을 연결해주어 그 아이가 잘 자라도록 해주는 제도. 아이에게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주는 따뜻한 과정으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만은 않았다. 미국에 입양된 분들 중 많은 분들이 시민권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수십 년을 살고 미국인으로 자라났는데도 부모님이 아이의 시민권을 신청하지 않아 국적을 갖지 못하게 된 것이다.


오십이 넘으신 한 입양자분은 부모님을 찾아 한국에 3개월을 오셨다가 어느 날 택시에서 영주권과 패스포트를 잃어버리셨다고 한다. 그 이후 중요한 서류인 영주권이 재발급되지 않아 3년 동안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계신다. 세상에나. 더욱이 기가 막히는 일은 마침내 수소문하여 어머님을 찾았는데 미국에 이민을 가셨다고 하였다. 어머님이 미국에 있는 데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입양된 미국인이라니.


이 외에도 입양된 분들 중 시민권을 받지 못해 청원을 하는 분들의 수가 매우 많았다. 양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셔서 힘겹게 살아가다가 갱단에 들어가서 범죄를 저지르고 복역한 후 시민권이 없다는 이유로 한국으로 추방된 분도 있었다. 미국인 담당자가 한국말도 전혀 못하는데 다짜고짜 한국에 데려와 공항에 내려놓고 갔다고 한다.


이 분은 비극적이게도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고 한국에서 은행 강도를 저질러서 감옥에 수감 중이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여럿 있었다. 미국인으로 살아가다가 척추에 이상이 생겨 일을 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시민권이 없어서 복지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도 있었다.


여기에서 드는 의문은 '우리나라가 아직도 해외 입양을 보내야할 만큼 경제가 어려운 나라인가?'라는 점이다. 아무리 코로나로 경제가 악화되고 있다고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순위로는 상위권에 드는 나라이다. 6.25 전쟁 직후가 아니라면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일이다. 심지어 동남아인들도 왜 우리나라가 아직도 해외입양을 보내는지 묻는 사람이 있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답을 하기가 곤란하였다.


다른 분과 이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우리나라의 출산률이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고 인구 감소를 늘 걱정하는 데 해외 입양은 왜 계속 하는지 하는 또 다른 의문이 들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이 아이들을 기르고 가르치면 우리나라의 급격한 출생률 감소를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아~ 또 다른 다큐멘터리의 내용도 기억이 난다. 미국에 입양된 두 쌍둥이 자매가 노숙자가 된 사연이었다. 이 자매는 양부모님께 학대를 받다가 집을 나와서 노숙을 하다가 한국행을 호소하게 되었다. 그래서 한국의 남동생과 아버지를 찾게 되었는데 부모님이 해외 입양을 보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마음을 닫아버렸다.


심지어 남동생이 미국으로 찾아가서 대화를 시도해도 완전히 외면하였다. 이 자매들은 자신들이 납치를 당한 것으로 여겼지 부모님이 스스로 해외로 입양 보냈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았다고 했다. 배신감에 화를 감추지 못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국이 우리를 버렸다.” 라고 소리를 치는 마지막 모습이 마음을 울렸다.


십여 년 전에 입양아를 캐나다로 데려다 준적이 있다. 이 아이는 건강하고 잘생긴 육 개월된 남자아이였다. 이 입양기관에서 경유 비행편을 준 바람에 그 날 경유 비행기를 놓치고 총 네 번을 연속으로 비행기를 갈아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굳게 믿었었다. '이 아이는 좋은 양부모님을 만나 선진국의 교육을 받아 훌륭한 성인으로 자라날 것이다.' 하루 가까이를 꼬박 비행기를 타고 울며 보채는 아이를 안고 비행기 통로를 서성이면서도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미국의 경우에는 양부모님이 직접 한국에 와서 아이를 입양하면 바로 시민권이 나온다고 한다. 아이를 한국에서 데려다 주면 다시 신청을 해야 하는 제도이다. 그렇다면 데려다 주지 않는 방향으로 돌리거나 최소 차후에 확인은 해봐야 하는 것 아닐까.


비몽사몽하며 새벽녘에야 퀘백 공항에 도착하여 아이를 부모님께 인계하였다. 눈물을 글썽이면서 아이를 받아 안고 감격스러워 하던 부모님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몇 마디 당부의 말을 하고 카드와 커다란 분유통 몇 개와 한국을 알리는 책자 같은, 긴 시간동안 팔 킬로가 되는 아이를 안고, 함께 들고 다니던 무겁디 무거웠던 짐들을 건넸다. 한없이 다정하게 보였던 그 부모님들이 그 마음 그대로 아이를 잘 길러내셨겠지.


장장 열 몇 시간이 넘도록 내 품에 안겨서 울다가 가끔씩 눈을 맞추고 바라보던 사랑스러운 아이. 너무 힘들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할 지경이었으므로 그 당시에는 아이를 건네는 것이 홀가분하기만 했다.


지금도 아이가 좋은 부모님을 만났다고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