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한다는 건

나 자신을 놓아주는 일

by 사각사각

아침 산책을 나섰다. 시월에 들어섰으니 이제 반팔 차림에 찬 바람이 느껴지는가 했는데 걷다 보니 여전히 후덥지근했다. 하늘은 비를 머금은 구름에 가려져 있고 아직 비가 쏟아지고 있지는 않지만 공기 속에 비의 기운이 가득하다. 게다가 마스크 안에 느껴지는 숨은 뜨겁고 이마에 땀이 맺히게 하는 주범이다. 그래도 다시 일어나서 월요일을 시작하게 되었음을 감사해야지.

주말에 지인들을 만나게 되었다. 각각 다른 시간에 만나 거의 세시간씩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타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누구에게나 마음의 상처는 있다는 깨달음이 온다. 산다는 건 만만치 않고 각자가 지고 가야 하는 숙명같은 게 있는 듯하다. 한 분은 어린 시절로부터 겪어 온 어머님에 대한 서운함을 아직도 가지고 있었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아들과 딸의 남녀 차별이 있고 산후조리를 도와주시지 않는 등 마음에 깊이 상처를 받을만 하였다. 하지만 어머님은 지극히 자기 중심적인 분이신 것 같고 아직도 사과하고자 하는 마음같은 것은 없다고 하신다. 그렇다면 기억 저편에 묻어두거나 잊고 사는 수 밖에는.


다른 지인분은 육남매의 막내이고 아직 미혼이다. 그래서인지 어머님의 병간호라던지 집안 살림이라던지 하는 일들을 자연히 도맡고 있었다. 형제, 자매들이 그리 많아도 각자의 가정을 꾸리기에 바쁘니 어머님께 금전적인 도움을 드리는 일은 힘든 것 같았다. 그래도 천생 효녀인 지인은 어머니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꺼이 모든 희생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둘이 타고난 기질이라던가 성격이 매우 다르긴 하다. 하지만 비슷하게 부모님께 경제적인 도움은 받지 못하고 스스로 삶을 개척해나가고 있는데 삶에 대한 태도는 다른 것 같다.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느냐 부정적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르게 평가될 수가 있다. 결국은 삶을 바라보는 눈에 따라 우리의 삶은 정해지는 게 아닐까.


어느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고 나의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우리가 알고 있는 타인의 삶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들이 소유한 단란한 가정, 화려한 외모, 훌륭한 집과 차등이 세상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인 우리를 열등하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이 나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고 괴롭다면 sns를 멀리하는 것이 어떨까. 어떤 연구 결과에서 보니 sns때문에 우리의 삶이 훨씬 더 우울해졌다고 한다. 우리 대부분은 오랫만에 여행을 하거나 행복에 겨운 몇 몇 순간에만 사진을 올린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또 하나는 가족을 용서하는 건 앞으로 주어진 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지에 중요한 요소이다. 덧붙여서 나 자신의 후회스러운 지나간 과오 역시 용서해야 한다. 과거가 붙잡고 놓지 않는 현재의 상실감에 사로잡힐 것이냐 긍정의 마음을 채워넣고 한 걸음씩 희망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만일 나를 고통스럽게 만들고 상처를 준 사람에게

미움이나 나쁜 감정을 키워 나간다면,

내 자신의 마음의 평화만 깨어질 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를 용서한다면,

내 마음은 그 즉시 평화를 되찾을 것이다.

용서해야만 진정으로 행복할 수 있다.

- <용서 >/ 달라이 라마

가을바람과 함께 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