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어린이와 수업을 하고 있었다. 이 어린이는 수 개월째 수업을 하고 있지만 아직 영어를 잘 읽지 못한다. 학원에 다니면서 한 권의 책을 끝냈고 연이어 두번째 레벨의 책을 하고 있는 데 아직도 못 읽다니 초초한 마음이 든다. 이 학년만 되도 청산유수같이 잘 읽는 어린이도 있는데 어찌된 일인가.
가만히 보면 책을 보고 읽을 때 글자에 그리 관심을 두고 있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자각이 들면서 좀 더 진지하게 강조를 하게 되었다. "자~알파벳을 잘 보고 읽어야지." 한 음절씩 소리를 내면서 읽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이는 그림을 보고 맞추는 것이지 글자를 읽는 것은 아니다.
이 어린이는 사랑스럽고 유머도 넘친다. 표정도 풍부하고 코믹한 말이나 행동을 할 때가 많다.
글씨를 빨리 쓰라고 재촉을 하면 "아~잠깐만요. 24시간이 모자라~" 이런 우스운 가사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집중력은 부족한 편인 것 같다. 공부를 하다가도 갑자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낼 때가 많다. 인형 몇 개를 놓고 뜬금없이 대화를 시작한다. 이 즉흥적인 동화가 언제 끝날까 싶지만 내 역할을 하면서 장단은 맞춰줘야 한다.
한 사십 분정도 되면 쉬는 시간이라고 하면서 놀이 같은 걸 하자고 한다.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책도 읽고 여러가지를 했다. 책을 읽을 때면 성우나 연기를 하는 것처럼 맛깔나게 잘 읽는다. '한글을 이리 능숙하게 잘 읽는 다면 영어도 곧 가능하리라.'
어쩌면 아직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는데 나의 마음만 너무 앞서 갔는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같은 소리를 반복하면서 아이가 습득을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한두 번만에 기계처럼 술술 읽어주는 무모한 기대를 한 것일지도.
아이들마다 공부에 대한 태도나 습득의 속도도 다르다. 어떤 평균적인 기준에 맞춰서 각 개인에게 기대치를 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늘의 쉬는 시간에 아이는 초성퀴즈를 하자고 했다. "선생님, 우리 초성퀴즈 하자요." 이 아이는 항상 "~하자요." 이렇게 반말과 존대말을 섞은 듯한 문장을 쓰는데 고쳐주기에는 참 귀여운 어감이다. 나에게 스티커를 상으로 준다고 하며 신나게 게임을 시작하였다. '어디에 쓰라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ㅅ ㄹ ㅍ (shrimp)' 'ㅊㅋ(chicken)' 'ㄸㅅㄷㅇ(Thursday) 이런 영어와 한국어의 초성을 섞은 문제를 냈다. '이럴 줄은 몰랐지?'
많은 상황에서 우리는 나의 기준에 맞춰서 다른 사람들이 움직여 주기를 기대한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인내심을 가지고 타인의 속도를 기다려 줘야 하는 때도 있다. 가끔은 성급해지는 마음에 브레이크를 걸고 천천히 가야 하는 것처럼.
마음의 여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