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산책을 하고 나오는 길이었다. 마음은 썩 평화롭지 않다. 지난 주 금요일이 1차 코로나 백신을 맞은 지 이 주쯤 되는 날이었다. 피로감과 함께 두드러기 같은 증세가 나타났다. 아주 심하다고는 할 수 없고 미세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였다. 병원을 갈 정도는 아니나 육감이 불러오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은 의심이 싹트기 시작한다. 이 바이러스가 혹시나 이 주 정도 잠복기를 거쳐 다시 반기를 들려는 건가.
이 백신을 맞을 수도 안 맞을 수도 없는 상황이 짜증스럽다.
백신을 안 맞았다가는 QR체크를 할 때마다 미접종자로 분류되고 만인의 역적이 될 것이니. 다음 달이면 접종률이 70퍼센트에 이른다고 하니 다수결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피로감.. 이 친구는 시시때때로 찾아오고 늘 달고 사는 것 중에 하나이긴 하다. 그렇긴 하나 코로나 백신을 그다지 신뢰할 수가 없다. 처음 보는 녀석이고 아직 명확하게 검증되지 않은 놈이다.
공원에서 나오는 길에 근처에 앉아 계시던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반사적으로움찔거리며 거리를 두게 된다. 할아버지께서 첫 마디 말을 꺼내기 전에는 무리한 부탁이라도 받을 것만 같았다.
할아버지는 본인의 핸드폰을 내미시며 문자를 안 보이게 해달라고 하셨다. 놀랍게도 폴더폰이었다. 거의 한 십여년 전에 보았던 모델이었다.
할아버지의 요구사항은 화면에 나와있는 메세지 1을 지워달라는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나 자신을 기계치라고 여긴다. 이런 처음 보는 기계를 어떻게 해달라고 요청하면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진다.
하지만 메세지를 열어보는 것쯤은 키 몇개를 누르면 되는 것 아닌가. 침착하게 열어보니 재난 알림문자 였고 메세지 1은 지워졌다. 굳이 남에게 부탁을 할일도 아니고 이 정도는 혼자 하실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
할아버지는 고맙다고 만족하셨고 나는 가던 길을 가며 얼른 자리를 떴다.
마음이 좋지 않다. 할아버지는 이 문자를 여는 간단한 일 하나를 물어볼 지인이 없는걸까. 나는 왜 이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섣불리 판단을 하고 물러서게 되는 걸까.
세상은 나날이 험난하게 돌아가고 알 수 없는 사건 사고들이 많이 일어난다. 코로나가 발생한 이후에는 낯선 이들과의 교류는 더 소원해지게 되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횡단보도가 바라다 보이는 카페 안에 앉아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가거나, 핸드폰을 보며 바쁘게 걸어가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저마다의 다양한 모습으로 지나간다. 각자의 속도대로 천천히, 보통 걸음으로, 혹은 바람처럼 빠르게 달려서, 주어진 인생의 길을 가고 있다.
동일한 한 지점을 스쳐 지나가나 모두 다른 각자의 삶. 그 안에서 우리가 잠시 마주칠 때라도따뜻한 마음은 잃지 않고 한 조각의 친절한 행동은 보여줄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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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를 주었으니까.
지금까지 늘 주먹을 꽉 움켜쥔 채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손바닥 위에 부드러운 깃털이 놓인 것처럼 평화롭게 손을 편 채로도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