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이 필요한 때

쉬어가기

by 사각사각

쉼이 필요하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느낌이 든다.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감정의 쓰레기들이 쌓여가고 있는 것 같다. 꼬박꼬박 일주일마다 한 번씩 장을 보면 집 안에 온갖 재활용 쓰레기는 차곡차곡 쌓인다. 주만 지나도 플라스틱, 캔, 병, 비닐 등등이 아담한 산을 이룬다. 외면하고 안 보거나 슬쩍 덮어두어도 물리적으로 쌓여가는 쓰레기는 그 자리에 존재한다. 이처럼 마음의 공간에도 마음을 괴롭히는 쓰레기가 쌓여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적당한 때에 내다 버리지 않으면 쓰레기에 함몰되는 감당이 불가한 사태에 이를 수 있다.


그리하여 쉬어가기로 했다. 완전히 쉴 수는 없어도 수업을 줄이기로 했다. 자연스레 줄었지만 더 늘리지 않고 살아가 보련다. 다시 더 하고 싶을 때까지 슬렁슬렁 놀면서 여유자적하며 지낼 거다. 지저분한 감정의 앙금들이 깨끗이 사라지면 그 자리에 새로운 의욕과 열정이 차오를 수도 있다.


요즘 위로이자 몰입의 대상은 그림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미술 수업을 들으러 가지만 집에서도 매일 그림을 그린다. 작년 언젠가 TV가 갑자기 나오지 않게 되었다. 수리를 요청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티브이를 안 보기로 마음을 접었다. 유튜브로도 그럭저럭 뉴스도 보고 하니깐 괜찮으리라.


시간이 남으면 언제나 스케치북을 펼쳐 든다. 실수로 B5 사이즈의 스케치북을 샀는데 크기가 작아서 오히려 만족스럽다. 지구력이 떨어져서 무슨 일이든 짧은 시간에 끝내는 걸 선호하기 때문에 이 크기의 그림을 그리는 게 적당하다. 디테일은 상당히 떨어지지만 마구잡이로 그리는 시간이 좋다. 핀터레스트에서 마음에 드는 그림을 고른다. 오일 파스텔과 스케치북을 꺼낸다. 잔잔한 음악을 틀어놓고 두 시간 동안 그림의 세계로 여행을 떠난다. 손가락 지문이 지워질 정도로 파스텔을 문질러야 하지만 스트레스도 풀리는 느낌이다.


어제는 미술 수업을 들으러 갔다. 네 명의 수강생들이 각각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세밀화, 아크릴화, 수채화 등 각자의 분야도 스타일도 천차만별로 다르다. 그림에는 개인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세밀화를 그리는 분을 보고 있으면 감탄이 절로 나오지만 세밀화를 따라서 그려보고 싶은 욕구는 전혀 일어나지 않는다.(사실 머리 아프게 뭐하나 싶다)


이러니 사람이란 취향이 모두 다르고 가치관도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같은 지구에 어울려 산다고 해도 각자가 인식하는 세계에서 살아간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그들의 알쏭달쏭한 세계를 인정하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머리 아프고 눈 아프게 왜 세밀화를 그리세요?"

라고 질문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짐작하건대 자를 대고 일일이 정확한 줄을 하나씩 긋는 것에 희열과 보람을 느끼기 때문일 터이니.


각자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자아를 드러내는 그림을 그리면서도 수다는 끝없이 오가고 간간히 즐겁다. 이로써 같은 듯 다른 삶이 그려져 간다.

막 그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