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마도 가르치는 일의 어려움에 대해서 토로했던 것 같다.
지인이 하는 말.
"언니, 제가 회사에서 오래 버티는 분의 노하우를 알게 되었거든요. 그분은 해외 영업을 하고 있기 때문에 성과가 금방 나오진 않아요. 그런데 그분은 항상 대표님에게 끊임없이 희망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그분이 신임을 받으며 오래 회사에 남아계시죠. 언니도 계속 희망을 주시면 돼요."
아하, '희망을 주라'는 조언은 내 마음속에 깊이 남는 한 문장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건 나도 알고는 있어. 하지만 희망고문을 하는 걸 수도 있잖아."라고 진심이기는 했으나 방정맞은 속마음을 내비쳤다.
어쩌면 오랜 가르침의 시간 동안 많은 절망의 사례를 경험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내 맘 같지가 않았다. 한사코 희망을 주려 하나 결단코 희망을 받지 않으려는 자들과의 실랑이. 이것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나 평범한 수업의 장면이지 않을까?
몇몇 학생들은 처음부터 절망한다.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전장에 쓰러진 군인처럼 "난 틀렸어. 먼저 가." 같은 태도를 보인다. 이제 고작 두어 달을 했을 뿐인데 왜 벌써 절망하는가 다그치고 어르고 달래고 하면서 조금씩 지쳤을 수도 있다.
"나도 못살겠으니 버리고 가겠노라." 눈물을 머금고 전장을 떠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늘 희망을 말하는 자의 역할을 맡고 있다. 슬그머니 돌아서려는 데 그들의 부모님이 나선다. "자, 우리가 함께 끌고 갑시다." 하하, 그러면 어깨에 다시 학생을 들쳐 메고 떨어지는 포탄을 피해서 살길을 찾아가야 한다. 아니면 혼자라도 질질 끌고 죽네 사네 하며 나가야 한다.
월요일 아침부터 다소 비장한 비유였으나 '희망을 주는 일"이라는 대목에서 다시 힘을 얻었다. 원래 사고체계가 단순하다. 절망을 주는 것보단 백번 나은 일인 것 같아서이다. 다만 희망을 얻으려는 자는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절망의 돌을 하나하나 꾹꾹 밟고 걸어가야 한다. 오늘도 과연 희망을 주는 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절망 뒤에는 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