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사가 결정되었다. 한 열 군데 집을 몰아치듯 돌아보고 그 중 가장 나아 보이는 집을 하나 골랐다. 예산 내에서는 최선의 집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 어쩌면 그저 극악을 피한 것일 수도 있다.
이사를 갈 집이 정해졌으니 이사갈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계약기간이 오 개월 여 남아서 현재 살고 있는 집도 새로운 세입자를 찾아야 하고.
쫒기듯 1년 7개월 동안 묵은 청소를 시작했다. 낯선 이들이 집을 보러 온다니 저절로 몸이 움직여 준다. 은밀한 치부를 최대한 감춰보려는 필사적인 몸부림. 여름철 긴 장마를 지나고 나니 화장실은 곰팡이 잔치가 벌어지고 있었다. 곰팡이 제거제를 뿌려가며 쓱쓱싹싹 틈만 나면 닦아낸다. 그 외에도 변기 및 바닥, 타일 홈 사이의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곰팡이는 닦고 닦아도 돌아보면 생긴다. 손도 닿지 않는 천장에 꽃처럼 피어난 곰팡이는 차치하고라도.
살림살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가구라고는 책상과 티브이, 전자레인지 정도. 다만 정리가 안된 사계절 옷가지들이 산을 이루고 있다. 하나씩 꺼내보면 구입하고 한번도 입지 못하거나 수년간 잊혀진 옷들이 많다. 오랜 미련을 버리고 바리바리 쓰레기 봉투로 직행시켰다. 아쉬운 마음에 한번씩 입어보고 더 이상 안 맞는 걸 씁쓸하게 확인한 후.
선풍기도 한 이년 정도 썼을 뿐인데 몇 주전에 딱 멈춰버렸다. 아직도 더운 날이 남았는 데 믿을 수가 없어서 이리저리 버튼을 돌려보았으나 잠시 돌아갈 뿐 반응이 없다. 이 분과도 이제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한다. 몇 년간 한 구석에 모셔두어 먼지가 뽀얗게 앉은 윗몸일으키기 기구와 가습기도 고이 보내드려야 한다.
이사갈 때가 되니 하나씩 다 버리게 된다. 그동안 그 존재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자잘자잘한 물건들과의 담백한 이별. 이제 마음 속에 켜켜이 쌓아둔 감정의 쓰레기들도 정리할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고 과거의 일은 과거로 보내주어야 한다. 어쩌면 매일 이별하며 산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나 자신의 어제와 함께 했던 사람, 물건, 시간 이들 모두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