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이사!

끝.

by 사각사각

이삿날이었다. 오늘 비가 온다고 하여 비가 그치도록 기도를 했다. 자는 동안 세찬 빗소리를 간간이 들으며 깰 때마다.


이사는 한 시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이사갈 집도 나가기 때문에 10시 반 정도 시작하기로 했다. 아무리 짐이 없다고는 하나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자잘한 활용품들 때문에 보따리는 하나 둘 늘어만 갔다.


용달차 아저씨가 도착하여 짐을 휙 둘러보시더니 추가요금이 발생할 거란다. 이 시점에서 극도로 화가 났다. 아니, 미리 견적을 꼼꼼하게 낼 것이지 대충 금액을 정하더니 보자마자 추가요금이라니. 몇몇 군데 업체에서 견적을 받아봤어야 했는 데 덥석 한군데서 결정해버린 것도 잘못이었다. 신경 쓸 일이 많고 심히 귀찮아서.


득달같이 이사 업체에 전화를 해서 이러저러 하여 추가 요금은 절대 낼 수 없다고 단정지었다. 급발진하는 화로 인해 목소리가 떨려와서 길게 말하진 않았다. 용달차 아저씨는 나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셨다. 업체에서 전화를 해서 수수료를 더 받기로 결정을 했다고 걱정말라신다.


하지만 난 이미 분노에 휩싸여 짐을 나르기 사작했다. 이미 이사를 해보았기에 어림잡아 총 한 시간이면 완료되는 짐인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왠지 짐이 많은 데 적은 것 처럼 잘못 말한 것 같아서 마음이 상해 힘을 보태기로 했다. 추가 요금만큼 내가 나르겠다! 이 노무 일 복을 타고난 팔자라니.


그래봤자 한 손으로 번쩍 들만큼의 자잘한 가구나 옷보따리들이었다. 끊임없이 작은 서고 같은 걸 번쩍번쩍 들어올리려니 느닷없이 체육인이 된 것 같았다. 노상 말하던 남다른 저질 체력 어디갔나. 과연 분노의 힘이란 괴력을 발휘할만큼 큰 것인가?


한참 씩씩대며 얼굴이 뻘개지고 땀이 줄줄 날 때까지 짐을 옮기니 (초반에 몇 개는 바닥에 던지다시피했기에) 아저씨는 더욱 안절부절하며 말렸다. 같이 온 아주머니에게도 들지 말라고 말리셨지만 아저씨도 힘이 딸려서 혼자서는 별 수가 없어 보였다. 나아~~참.


마침내 세 사람이 헐떡거리면서 비 맞고 땀을 흘리며 한 시간 반동안 짐을 다 옮기고 나니 화가 점차로 가라앉았다. 더 말할 기운도 없으니 얼른 가주셨으면 싶었다. 아저씨도 오십은 훌쩍 넘으신 것 같은 데 헉헉 거리며 힘들게 짐을 옮기시는 걸 보니 마음이 짠해졌다. 현금이 있으면 그 추가요금이라는 것도 식사비로 한 이만원 드릴까.


화 낼 때는 언제던가 급 자애로운 반성모드가 되었다. 아쉽지만 현금이 없는 관계로 생략했지만. 같이 땀 흘리며 이사짐을 나르더니 그새 끈끈한 동지애가 싹튼걸까.


전기세를 어떻게 계산하는 지 몰랐다. 이사 정산이라고 계량기를 보고 07이라는 숫자가 떴을 때 계량기 숫자를 한전 담당자에게 불러주어야 한다. 전기 계량기를 처음 봤을 뿐더러 07이라니 뭔 소리인지 겨우 알아들었다. 결국 계랑기를 열어보러 다시 이사 온 집으로 가야 했다. 허걱!


게다가 이사온 원룸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미리 말씀을 드렸는데 준비를 아직 못했다며 당근 마켓으로 구매하신다나. 집주인이 건물이 몇 채나 된다면서 웬 중고 마켓인가. 있는 사람이 더한 다더니만. 하, 추석에 집에 못 가서 냉동 갈비 사둔 것을 그냥 드시라 드렸다.


집주인 아주머니가 지하 어디엔가 한칸짜리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다며 무겁지 않으면 들고 올라가란다. 당연히 무거웠다. 그러나 어쩌랴 또 냉장고를 옮겼다. 하아, 내 팔자야! 기회가 되면 알바로 이사짐을 나를까 보다.


어쨌든 이사는 끝이 났고 짐은 대충 구겨넣었으며 마라탕을 먹고 배가 부르니 모든 것이 용서된다. 인간사 불같이 화내고 볼 일이 아니라 서로의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자 애쓰며 하나하나 잘 풀어가는 게 정신 건강에 좋으리. 덕분에 오늘 밤에는 꿀잠을 잘 수 있겠지.

배가 부르면 용서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