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눈이 소복히

마음에도 평화가 내리길

by 사각사각

운전을 하는 데 탐스러운 눈송이가 차창을 스친다. 커다란 창이 있는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눈오는 풍경을 감상했더라면 행복이 퐁퐁 샘솟았을지도 모른다. 운전을 할 때 눈이 많이 내리기 시작하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주변의 나무나 산 위에 눈은 아름답게 쌓여도 도로위에 눈은 스르르 녹아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 눈이 와도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할 의무가 있단 말이다.


눈길 위를 운전하는 건 위험하다. 차가 한바퀴 빙그르르 돌아가거나 쭉 미끄러져서 강제 놀이공원 체험을 하며 간담이 서늘해질 수도 있다.


오늘은 여러가지로 마음이 심난하고 울적한 날이었다. 건강 검진 결과가 나왔는 데 여기저기에서 고장이 나고 있었다. 당 지수도 높고 간 수치도 높고(비알콜성 지방간이라고) 폐에는 결절(?)이 보여서 종합병원에서 CT를 찍으라는 소견서를 받아서 의사샘이 다음날로 예약을 해주셨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새에 코로나에 결렸던 흔적일 수도 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매우 의욕적이신 동네 내과 의사 샘 앞에서 한숨을 땅이 꺼져라 푹 내쉬었다. 힘드오!


다시 피검사를 한다고 하여 순순히 손등을 내밀었다. 여기저기 혈관을 찾아 삼만리를 하느니 손등에서 한방에 뽑는게 낫다. 그깟 멍드는 게 대수인가?

몸의 각 기관에서 노화가 진행되고 있는 게 느껴지고 있다.

인정은 하나 명백한 결과를 보면 마음이 울적해진다. 괜히 틈만 나면 놀 궁리를 계속 하는 게 아니다. 아직도 각 과에서 건강검진 대상자라고 문자가 빗발친다. 산부인과 등 병원을 더 순회해야 할 것 같다.


게다가 새벽에 문득 한기가 느껴져서 일어났는데 보일러가 고장이었다. 차가운 방바닥의 감촉에 놀라 믿을 수 없어서 전원 버튼을 여러번 눌렀다 껐다 해봤다. 며칠 전에는 바닥이 너무 뜨거워서 깼는 데 아마 보일러가 마지막 숨을 토해내고 있었나보다.


안절부절하며 아침 여덟시가 되기를 기다려 집주인 아주머니께 이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알렸다. 이 아주머니는 어떤 일이든 무미건조한 로봇 같은 투로 대답을 하신다. 미안한 기색이란 조금도 없이. 이것도 짜증을 더하는 요인 중에 하나다.


아침부터 병원에, 서비스 센터에 불이 나게 전화를 해댔다.

온수는 가동이 되어서 머리는 감은 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이런 저런 액땜이 가득한 한 해의 마지막 한 달이 아닌가 싶다. 그닥 돈도 못 버는데 무척 바쁘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힘을 내보자. 어쩌면 힘을 더 들이는 게 아니라 마음을 툭 내려놓아야 할 순간일 수도. 겨울잠을 자러 들어가는 곰처럼 순순히.

다가오는 일들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다 보면 밝은 새 해가 반짝 밝아오리라 믿으며.

눈구경이나 나갔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