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수업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하얀 눈이 7~8센티미터는 쌓여있었다. 운전을 하고 수업을 하러 갈 수 있을까 계속 고민을 했는데 온통 하얀 세상으로 바뀐 것을 보니 깨끗이 포기하게 된다. ‘그래, 오늘은 수업을 모두 취소하고 쉬는 거다.’
나의 집은 작은 언덕 위의 고지대에 있다. 부동산에서 광고를 하는 걸 보니 ‘숲속의 전원마을’이라고 써있었다. 그러기에는 누추한 공간이라 웃음이 푹 나왔지만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도심지에서 살짝 올라와 있는 조용하고 인적이 드문 주택가여서 이 동네가 마음에 든다. 작은 산과 공원도 있고 가지각색의 길고양이들도 여러 마리 산다.
수업을 취소하는 마음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정해진 약속이 깨지는 걸 힘들어 하기때문에. 부모님들께 전화도 드려야 하고 오후 시간 내내 노는 것도 좀 그렇다. 하지만 완전히 놀기로 작정을 하니 한편으로는 웃음이 새어나온다.
내일 일을 걱정하여 차 유리에 쌓인 눈을 슥슥 치우고 주워온 박스를 하나 깔아두었다. 눈이 얼어붙으면 녹이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기 때문에 임시조치를 취해봤다. 하지만 차가 온통 눈에 덮여 있으니 내일 오후에 운전하려면 빗자루라도 들고 싹 치워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눈의 세상을 구경하러 나갔다. 눈이 온 풍경은 굳이 차를 몰고 나갈 일만 없다면 다른 세상에 온 듯 신비롭고 아름답다. 어느새 온 누리를 하얗게 덮는 눈. 뽀드득 눈 밟는 소리를 내며 걸어본다. 오늘의 눈은 비가 많이 섞여서인지 손에 닿으니 뭉쳐지지 않고 스르르 녹아버렸다.
어린 시절에는 눈이 오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는데. 걱정이란 없이 뛰어나가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눈싸움도 하고 눈사람도 만들고 마냥 즐겁기만 한 날. 어른이 되니 눈만 오면 운전할 걱정이 앞서는 게 서글프다. 삶에 주어지는 소소한 기쁨 하나를 놓치고 살아가는 것 같아서.
오늘은 다 비우고 내려놓고 따뜻한 방안에 부드럽게 흐르는 캐롤을 들으며 남은 시간을 즐기련다. 책도 읽고 글도 쓰면서. 눈 속에 푹 파 묻힐 수 있는 '리를 포레스트: 가을과 겨울 같은 일본 영화를 봐도 좋을 것 같다. 소리 없이 내리는 눈과 같은 평화로 마음을 새하얗게 채워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