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로운 주말, 근처 몰에 가서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려고 했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고 나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랜만에 ‘영화나 한편 볼까?“라는 뜬금없는 생각이 들었다.
’P’ 형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이러하다. 인생에 계획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가끔씩 즉흥적인 행동을 한다. 영화를 보려고 계획을 하진 않았어도 ‘오늘 영화를 보고 싶은 여건과 마음이 동하는데 그다지 특별한 일이 없으면’ 언제라도 영화를 볼 수 있는거다. ‘무계획이 계획이니 심신이 자유롭다.’고 주장하면서.
주택가의 작은 몰에 있는 영화관에는 늘 자리가 비어있었다. 심지어 한 해의 마지막 날에도 자리는 반 정도가 남아서 넉넉하다. ‘시내로 보신각 종이 울리는 걸 보러 가지 않으면 이런 여유를 누릴 수가 있다네.’ 꿈도 꾸지 않는데 종로 1가 역에는 정차하지 않는다는 문자를 얼마나 보내시는지.
코로나 이후로 아주 맛이 들어서 얼마나 알림을 보내대는지 이제는 알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거기까지 간 팔팔한 젊은이들이 종각역에 멈추지 않으면 종로 3가에서나 을지로에서나 어디서든 걸어가지 못할까봐?
영화관까지 올라가서 예매를 하려고 보니 ‘아바타’ 와 ‘영웅’ 이 두 영화 외에는 딱히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음, 잠시 고민을 했다. 13년 전에 나왔다는 '아바타'에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영웅'이라는 영화는 어떨까? 새삼 오늘 같은 날 엄숙하고 비장한 영화를 보고 싶지 않다.
‘그럼 판타지로 가야지. 암.’ 그래서 현실 세계를 잠시 떠나고자 아바타를 보기로 단숨에 결정했다.
몇 분동안 현실 세상 사람과 대화를 했다. 이제 이 갑작스러운 오지랖에서도 벗어나야겠다. 당사자들끼리 알아서 처리할 일에 너무 깊숙이 관여하는 것 같고 자고로 세상일은 흘러갈 대로 흘러간다. 괜히 힘을 쏟아봐야 기만 빠지고 기대에서 벗어나면 실망만 될 것 같다.
'모든 인간은 자기가 인지하고 살고 싶은 대로 산다. 할 바를 다했으니 내버려두자'
영화는 너무 길었다. 세 시간이 되는 상영시간부터가 마음에 안 든다. 대체 아무리 재미가 넘쳐나도 세 시간 동안 집중력이 약한한 인간의 관심을 온전히 붙잡아 두기는 어렵다. 한 시간 정도만 줄여도 즐겁게 감상하고 훨씬 나은 감상평을 쓸 수 있었을 텐데. 이미 점수를 오지게 깍고 들어간다.
'아바타 '라는 생물체는 대체 인간인지 동물인지 인디언인지외계인인지 알 수가 없는 그 중간 어디쯤의 존재인가 보다. 13년 전에도 이 파란 괴생물체의 정체가 참 궁금했는데 이제 공상과학계의 인디언으로 정의를 내린건지? 일부러 그런 자연 친화적인 캐릭터를 창조해 낸 것 같고.
인간을 닮았는데 꼬리가 달려있고 또 미래의 최첨단 무선 통신기기 같은 걸 사용해서 소통을 한다. 이런 뒤죽박죽 현재와 미래가 뒤섞이고 거기에 인간과 아바타, 혼혈인, 공룡, 물고기(?)까지 함께 등장해서 어지럽고,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참 복잡다단하다. 인디언과 우주선이 함께 나온다니 혼란하다. 혼란해.
복잡함을 기피하는 인간으로서는 좋은 평을 해줄 수가 없다. 아무튼 이 영화의 주된 주제는 ‘세계 평화, 인종차별 금지, 가족의 연대(We stick together!)와 자연 보호 등등’ 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훌륭한 가치는 다 갖다 붙여놓아서 오히려 집중이 안되고 아리송한거다. 파란 아바타와 초록 아바타가 서로 화합하고 거기에 튤룬인가 하는 상어같이 생긴 물고기와도 형제간이 된다고 한다.
다 좋다. 좋은 취지이다. 이 인간과 아바타와 동물이 하나로 노니는 바다 풍경도 그지없이 평화롭다. 하지만 지루하다. 아무리 좋은 주제여도 한 시간 동안 다큐멘터리도 아닌데 ‘인간과 자연은 하나다’ 이런 메시지를 끝도 없이 반복한다고 생각을 해보라. 알겠으니 ‘대체 저 인간과 아바타의 혼혈인 악당과의 스펙타클한 결말은 언제 나오는 거냐?’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실은 화장실을 다녀 왔는데도 두 시간이 지나는 무렵부터 다시 화장실을 가고 싶어져서 더 결말을 초초하게 기다렸다. 고심해서 고른 좌석의 제일 끝자리에는 난간이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살짝 나갈 수 있는 구조라고 상상했는데 꽉 막혀 있어서 당황스러웠다. 한 시간 동안 두 종족의 아바타와 상어가 세상 아름답게 교감하는 것을 참고 참고 봐야 했다.
아무튼 아바타는 끝날 듯 끝날 듯 하면서 끝나지 않는 메시지가 고결한 영화였다. 이렇게 썼다고 악평을 하는 건 아니고 다만 훌륭한 메세지라도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고 깔끔하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영화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 어쨌든 영상이 환상적이고 멋진 영화 감상을 해서 만족스러웠다. 새해니까 훈훈하게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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