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첫 만남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장시간 동안 대화를 나눠서 피곤하긴 했지만 괜찮은 시간이었다. 그는 다음에는 “영화를 보러 가자 혹은 여행을 가자” 라고 두 번째 데이트를 제안했고 그녀는 “그렇게 하자.”고 몇 번이나 시원하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럴만한 상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장시간 대화하는데도 화제가 끊이지 않고 편안하다.
그런데 집에 돌아간 그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잘 들어갔다.’ 는 뉘앙스의 연락이 와야 할 텐데 무소식이니 또다시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적극적이었던 지난 몇 번의 시도에서 예상치 못한 쓴맛을 본 후에 누군가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을 망설인다.
절친한 지인에게서도 “너무 앞서가지 말고 썸을 즐기며 기다리라.” 는 진심어린 충고도 들었던 터라.
그녀는 빈말을 하는 걸 싫어한다. 몇 번이나 다음 데이트에 대해서 언급을 하고 다짐을 받고 나서 이제와 마음이 바뀐 걸까. 인간의 마음이란 수시로 뒤집히는 거니까 그 열길 물 속보다 풀기 어려운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가 없구나.
그는 매일 아침에 담백한 문자를 보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었지만 그는 출근을 하고 그녀는 자고있는 시간이었다. 알림을 꺼 놓았기에 문자가 와도 잠이 깰 일은 없어서 다행이고.
그녀는 아침에 느지막히 눈을 뜨고 일어나면 문자가 와 있는 게 좋았다. 적어도 문자를 보내는 순간에는 내가 떠올랐다는 의미니까. 그리고 하루에 세 번 정도 문자가 지속적으로 왔다. 점심 시간이나 저녁 시간에 간단하게 안부를 묻는 내용으로.
거리는 떨어져 있어도 잠깐 몇 마디의 문자를 나누는 공유된 시간은 유대감을 준다. 다정한 시간이 흐른다. 밥은 먹었는지 퇴근은 했는지 서로의 소소한 안부가 궁금하고 바쁜 일과 중에 잠시라도 생각을 하고 있다는 증표이니.
하루 정도 지난 후 그녀는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라고 말문을 열었다. ‘최대한 담담하게, 부드럽게, 무모한 적극성을 배제하라!’ 그가 너무 바빠서 문자를 못 보내고 있다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중이어서. (몇 초면 보낼 수 있는 문자인데 무슨 소리냐 손가락이 부러지지 않고서는)
그리고 문자가 오지 않아서 섭섭했다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알렸다. "매일 받으니 문자에 중독이 된 것 같네요." 전혀 조심스럽지 않고 중독이라니 좀 기괴한데.
며칠 후 다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얼마 후면 설날이다. 명절을 보내러 지방에 가기 전에 만나고 가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이루어진 늦은 밤에 두 번째 만남. 그녀는 수업이 연달아 세 개가 있었고 아침부터 배탈이 시작되어 기운이 빠지고 피곤한 하루였다. 마지막 수업에서 그녀는 염치 불구하고 살짝 화장을 고쳤다.힘을 내야 하니 배탈약도 네 알 털어먹었다.
‘이 시간이면 피곤에 절고 얼굴이 초췌해 질텐데 화장으로라도 막아보자. 토닥토닥’ 그는 퇴근 후 계속 카페에서 기다리는 중이므로 문자를 보내서 곧 출발할 것을 알렸고. 자양 강장제를 먹은 듯 평소와는 다른 힘이 솟아났다.
마감시간이 임박한 카페를 거쳐,대학생들이 시끌벅적하게 북적이는 술집에서의 만남은 나쁘지 않았다. 무알콜 칵테일의 맛은 탄산음료가 떠오르고 그저 그랬지만 매콤함을 가미한 안주가 맛있는 곳이었다. 배가 고팠는지도. 언제나처럼 대화는 술술 풀려나갔고 수많은 주제의 말들이 오갔다.
어떻게 이렇게 죽마고우처럼 속마음을 내보일 수가 있는건지? 두 시간을 도둑맞은 것 같은 기분.
그의 빨간색 칵테일을 무심한 듯 들어서 한 모금 맛보고 그녀가 말했다.
"닥터 페퍼 맛이네요."
"그건 우리 세대나 알 것 같은데요."
'그런가? 닥터 페퍼가 이제 시중에 나오지 않는 건가.' 하는 가벼운 상념이 스쳐갔다. 내 초록색 칵테일은 쓴 맛이 감도는 마운틴 듀 맛이었는데.
역시 칵테일에는 알콜이 적당히 들어가야 제맛을 낸다!
(병원에서 절주 또는 금주해야 한다고 했건만)
귀향을 서둘러야 하는 시간이라 밖으로 나오니 또 비에 섞인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oo씨를 만나는 날에는 비 아니면 눈이 오네요.”
“그러게요.”
이것은 과연 좋은 징조일까 나쁜 징조일까. 그건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싸늘하게 얼어가는 날씨에 마음을 녹여주는 뜨거운 커피 한잔 같은 사람이 생기기를 기대해 보는 수밖에는.
그나저나 올해는 눈이 참 유난히도 많이 내리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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