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하루는 평소의 루틴에 비하면 믿을 수 없이 길었다. 아침 열 시에 출근을 하고 교육이 끝난 후 동료 선생님과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고단한 밥벌이를 씹었다. 지난주에 오픈을 했던 공부방에 일주일 만에 들렀는데 보일러가 그대로 켜져 있는 날 벼락같은 상황을 맞이했다. ‘세상에나, 대체 난방비 폭탄을 어느 정도 맞게 될까?“ 후끈하게 달아오른 방만큼이나 몸에서도 열이 났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누군에게든 책임을 묻고 화를 내어 무엇하리. 얼마가 나오든지 순순히 돈으로 막을 수 밖에는. 예상보다는 적게 나오리라 빌어본다. 망각으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는 심리다. 이 기가 막히는 사실을 몇몇 관련자들에게 하소연처럼 고하느라 기가 쭉쭉 빠지는 전화 통화까지 이어졌다. 오후부터 밤 아홉시까지는 연달아 수업을 했다.
그 중간에 그에게서 온 카톡 메세지를 얼핏 봤긴 했으나 열 수가 없는 문서였다. 다른 단톡방의 카톡 메시지들까지 날개를 달고 머릿속에서 춤을 추고 있다. 머리 속이 분주하기 때문에 대충 눈길 한번으로 다독거리고 나중에 처리하려고 닫아놓았다. 열지 못한 것이 다행이랄까?
뚜껑이 열릴 것 같은 상황에서 그 메시지까지 봤더라면 입으로 뜨거운 용암을 내뿜었을 수도. 그러기에는 피식 연기도 피워내지 못할 만큼 기운이 없는 내용이었지만. 오히려 위로를 한 줌 더해 주어야 할.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까지 먹은 후 피곤한 몸을 누이려는데 그 미확인 메시지가 그제야 떠올랐다. 얼핏 제목이 보이긴 하는 데 무언가 넘기기에는 불길하다.
역시나 이별을 고하는 메시지였다. 두 번을 친구처럼 수다를 떨면서 가볍게 만났을 뿐인데 이별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에도 머쓱하지 않나. 그러나 하루에도 몇 번씩 안부를 주고 받았으니 아련한 연애 감정이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다만 불꽃이 튀는 이성적인 매력을 느낀 것이 아닐뿐이다. 마치 오래된 죽마고우와 몇 년 만에 만나서 편안한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았다. 대화의 내용이 의미가 있고 발전적이며 나름대로 즐겁기는 했으나.
그 끝없는 대화와 비슷한 성향을 만난 편안함에 기대를 걸었는지도 모른다. 내 머릿속에서 마음대로 자기 길을 질주하는 상상력이란 존재를 믿을 수가 없다. 이상한 방향으로 제멋대로 이야기를 써 나가기 때문이 이것이 실제의 감정인지 소설 속의 허구인지, 한밤에 야릇한 꿈을 꾸는 것인지를 구별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늘 결말이 이상적이고 희망적인 것도 문제이고.
잘 되리라 믿으며 늘 대담하게 시작을 해보는 것이 인생에 득인지 실인지 아직까지도 답을 내리지 못했다. 사랑을 찾으려는 마음으로 불길한 기운에도 눈을 가리며 질질 이끌려 갔는지도.
다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그녀는 계속 긍정을 놓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러니 말릴 수가 없다. 그녀는 후회 없는 삶, ’시도조차 않은 일에 후회를 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목표다. 팔십이 되면 하고자 하는 일들은 다 경험을 해보고 이 세상에 더는 여한이 없다며, 훌훌 털고 잠을 자듯이 눈을 감고 싶다.
우울. 그녀는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 중에 하나이다. 그녀에게 우울은 잠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정도이니. 우울의 밑바닥까지 끌려 들어가서 우울이 우울을 낳고, 과거의 우울이 현재를 사로잡고, 그 우울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 탐낙하고, 온몸을 휘감고 붙잡는 경험을 해보지 못했다.
인간은 참 자기가 체험해 보지 못한 일은 절대 똑같이 이해할 수가 없는 유한한 존재라는 게 슬프다. ’우울하다고 대체 왜?‘ 이렇게 엉뚱한 질문을 되풀이할 수 밖에 없었다.
우울이란 밤새 축 쳐져서 습한 기운에 젖어들었다가도 아침 햇볕에 널어 말리면 보송보송하게 마르는 것 아닌가? 이런 속 모르는 소리를 하는 자이다. 우울에 빠질 충분한 시간조차 없을만큼 공사다망한 삶이어서인지. 어떻게든 우울에서 끌어내 보고자 애써 외면을 하고 딴소리를 한 것인지도.
최선을 다해서 할 수 있는 위로는 다 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어느 만큼을 그 끝 모를 추락을 더 견뎌야 하는지 그녀조차도 불안했다. 아마도 더 만남이 계속되었어도 결국에는 서로를 끝내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그나마의 예의와 연민과 참을성조차 밑바닥을 드러내, 더 극악하고 추레한 이별을 겪게 되었을지도. 눈물 한줄기를 흘리는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강으로 흘러 폭포를 이루는 것보다는 나을까.
다만 누군들 사랑을 해보지 않았는가? 그 지난한 과정을 모르고 시작을 하는 게 아니다. 끝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는, 본래 무모하기 짝이 없는 속성을 가진 사랑을 시작할 수 없는 노릇이다. 사랑이란 세상 어느 일보다, 나를 모두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한 과정이 아니던가.
한 사람의 존재를, 그 도무지 한평생을 바쳐도 파악이 안 되는 희안한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껴안아야 한다. 또 한 명의 똑같이 불완전한 존재가.
그러니 서로의 마음에 불안을 잠재우고 어루만져 믿음으로 가만가만 위로를 해야 한다. 설령 그 불분명한 믿음조차 근거가 없을지라도. 그런 굳건한 사랑을 찾을 수 있기를. '나는 너의 불완전함을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러하니.'한낱 다음 순간, 내일을 알 수 없는 변변치 않은 인간들일 뿐이지 않은가.
다만 그는 그녀의 모든 이야기를 오래도록 들어주기만 하면 되는 것을!
퍼즐과 터닝B 라는 회사에서 전자책을 출간하여 등록하였어요. 제목은 ‘30억이 있어도 공허하다면’입니다. 궁금하시면 한 번씩 방문하여 제 책을 읽어주세요. 책 홍보를 살짝 곁들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