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이석아 또 찾아왔구나. 언제 만났는지 기억이 안 나는 걸 보니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사실은 요즘은 어제 일도 잘 기억이 안나. 딱히 기억을 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늙어서 인 것 같기도 하고, 우울한 기억들을 잊고 싶고 이유는 정확하지 않다.
너는 가벼운 증상으로 살며시 귀을 두드리며 찾아 왔구나. 아침 일어날 무렵에 머리를 오른쪽으로 돌리는 순간 어지럼증이 살짝 느껴졌단다. ‘음, 이석이로구나. 너로구나.’ 언젠가처럼 천정이 빙글빙글 돌거나 하는 심한 증상은 아니어서 너를 살살 달래 보내야겠구나 싶었다. 아마도 추측하건대 너는 내 왼쪽 달팽이관에서 자리를 이탈한 녀석이 아닐까 추리해봤어. 그래서 왼쪽으로 톡톡 머리를 치며 너를 다시 제자리로 보내려는 노력을 해 보았단다.
내가 너에게 뭘 잘못했을까? 너는 그저 왼쪽 달팽이관에서만 머물러 사는 게 지겨운 거니? 그 마음은 나도 충분히 이해한다. 그래서 수년에 한 번씩 비행기를 타고 훌쩍 남의 나라로 떠나곤 했지.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코로나 이후로는, 그 몇 년전에도 사정은 좋지 않았지만, 자제하고 열심히 일만 하고 있어. 그러니 너도 자중하고 네 자리에서 균형을 맞춰 주렴.
다행히도 네가 심하게 난동을 부리지는 않는 것 같아서 머리를 감을 때 고개를 무심코 숙이니 너는 또 신나게 유람을 떠나려고 하더라. 핑 도는 어지러움과 다리의 휘청거림을 남겨 놓고서. 아, 그래서 다시 머리를 꼿꼿이 세우고 조심 조심하며 거품을 헹구어냈지. 너를 무시한다고 발끈해서 다시금 너의 분명한 존재를 드러낸 것이로구나.
너는 내 몸속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지만 직접 대면하여 만나지는 못했어. ‘너는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반항아 기질이 있고 한 곳에 머물러 있지 못하는 역마살이 있는 것 같다. 그럼 나와 아주 비슷한 녀석임이 틀림없다.
여기저기 장기가 반란을 일으키며 멀쩡하지 않아서 서글픈 참인데 너까지 나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구나. 너의 경고를 받아들여서 좀 더 나른한 휴식을 취해보겠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누워있기 좋아하고 게으른 자임을 늘 고백하지만 더 푹 쉬어 가라고 충고를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뭐, 또 게으름뱅이처럼 뒹굴거리며 살아보는 거지.'
근데 다시 새로운 전자책을 내놓기로 했으니 꼼꼼하게 퇴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지 않겠니? 야심차게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쓰고 목차를 정하고 마음 가는 대로 대충 써 놓은 글들을 고이 모아 모아 맞춤법 검사도 하고 해야 하지 않겠니? 그러니 이만 너를 다독거리며 더 달래줄 시간이 없으니 네 달팽이관으로 돌아가렴. 무단침입은 나쁜 행동이야. 안녕.
아, 이 참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쉬면서 글이나 정리하라는 깊은 뜻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너에게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케익 처럼 달콤한 재즈 한 곡 보낸다. 네 친구 고막과 왼쪽 달팽이관도 함께 즐겨봐.
진짜 잘가.
퍼즐과 터닝B 라는 회사에서 전자책을 출간하여 등록하였어요. 제목은 ‘30억이 있어도 공허하다면’입니다. 궁금하시면 한 번씩 방문하여 제 책을 읽어주세요. 책 홍보를 살짝 곁들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