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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Apr 01. 2017

내 안에 북극성이 있나요?

월트 디즈니 본사에 가다

월트 디즈니와 미니

월트 디즈니 본사는 캘리포니아 버뱅크에 위치해 있는데, 믿지 못할 정보원에 의하면 약 100개가 넘는 건물들이 있다고 한다. 지은님께서 이 곳과 Grand Central Creative Campus라고 디지털 관련 업무를 더 많이 하며 더 아기자기 한 곳 중에서 골라보라고 해주셨는데, 아무래도 역사가 더 깊고 디즈니가 살아 있을 때부터 보금자리였던 디즈니 스튜디오 랏을 선택했다.




 많은 친구들에게도 그랬겠지만, 나에게 디즈니는 중학교 때부터 꿈의 직장이었다. 그래서 지은님께 인터뷰 허락 메일을 받았을 때, 하늘을 걷는 기분이었다. 지은님께서 심지어 ‘서핑’을 같이 해보지 않겠냐고, 또 학교 선배님들 모임에 초대해주시겠다고 제안하는 메일을 보내주셨을 때, 열람실에서 펄쩍 뛸 뻔했다. 만 7세가 아닌 지금까지도  디즈니 공주 노래를 부르고, 욕조에서 물장구를 치면서 인어공주를 흥얼거리던 나는 벅참으로 가슴이 미어졌다. 그게 한 달 전이었는데, 지금은 오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를 빛의 속도로 구경하고, 우버를 타고 디즈니 스튜디오 쪽으로 넘어와서 ‘디즈니 스튜디오 랏!’을 구경하고 있는 거다. 마음은 벌써 춤추고 있었다.


디즈니 스튜디오 랏. 디즈니 CEO 밥 아이거와 C군단들이 일하는 건물. 

  월트 디즈니 본사가 어떤 모습일지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휑하다. 베이지 색 건물들만 띡띡 있다. 뭐지? 왜 이렇게 조용하고 평범할까? 디즈니랜드는 그렇게나 화려하고 활기찬데? 싶어서 찾아보면.. 정답은 드러나지 않으려고, '꿈과 상상의 나라'를 써포트 해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흠, 좀 감동이다. 

  또 외관이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 건물들은 월트 디즈니가 흑백의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부터 함께 해온 역사도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가 어릴 적 농장에서 본 '쥐'를 생각해 '미키 마우스'를 떠올렸다는 일화가 있듯 사실 무한한 상상력에게 때와 장소는 중요하지 않다.


또 다른 데는 불이 다 꺼져도, 이곳만큼은 늦게까지 불이 들어와 있을 때가 많다고 한다. 어린이들의 동심을 지켜주기 위해 밤늦게까지 일하는 어른들이 있다는 것도 많이 감동스러운 부분이다.


맨 위에 자리한 일곱 번째 난장이



  지은님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오시는 중이었고, 나는 메인 빌딩 앞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목에는 다들 파란색 끈의 목걸이를 하고 돌아다녔다) 삼삼오오 지나다녔다. 전체적으로 엷은 황토색과 주황색의 중간톤쯤이라 따뜻하면서도 아늑한 분위기였다. 사진으로 보았을 때는 그저 휑한 건물들 뿐일 줄로만 알았는데,  도로 위의 느낌은 달랐다.  파릇파릇 돋아난 잔디들이 건물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Veteran’s day [1]라 그런지 사람들이 일찍 퇴근을 해서 지나다니는 직원들은 많지 않았다. 간간이 불 켜진 곳들만 몇몇 보였다. 지은님의 말씀으로는 애니메이션 부서들이라고 했다. 그림 작업들은 무수히 많은 스케치들이 필요하며, 더 나은 작품을 위해 자주 다시 그려낸다고 했다. (심지어는 사람도 자주 교체되는 편이라고.) 창 너머로 은은한 주황색 불빛이 비쳐 나오고, 그 불빛 아래로 비스듬히 놓인 캔버스가 보였다. 그리고 그 비스듬한 캔버스 위로는 거친 스케치들이 놓여 있었다. 꿈의 공간처럼 보였다.


재향 군인의 날이라, 한산한 거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그 짧은 순간, 지나온 시간들이 머릿속을 날아다녔다. 나만의 그림 작업실을 갖는 게 어린 시절 간절한 꿈이었다. 세상에 없는 생물을 혹은 세계를 손 끝의 힘만으로 얼마든지 창조해낼 수 있는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다. 그러다 중학교-고등학교 때는 아이들이 뭐든지 체험해볼 수 있는 테마파크를 지어야겠다고 막연히 꿈꾸다가 대학교에 왔고, 3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디즈니 캐릭터들의 이름으로 지어진 골목, 도로(실제로 임직원들은 Pluto’s Street에서 만나자! 라며 약속을 잡는다고 하신다.)들을 보니 그 모든 순간들이 쓰나미처럼 머릿속을 훑고 갔다. 그러다 보니 새삼 지금 내 양발이 놓인 위치를 들여다보게 되는 거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전혀 다른 길 위에서 꿈꾸던 그 작업실 안을 바라보고 있다. 



저렇게 아래쪽에 '플루토의 코너(Pluto's Corner)'라고 쓰여 있다.


  지나쳐 온 건물 안의 애니메이션 캔버스가 떠올랐다. 마지막 스케치를 완성한 지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얼마 전에 만난 초등학교 때 친구는 나를 그림을 잘 그렸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었다. 무언가 뭉클하면서도 이상했다. 어쩌면 아주 멀리,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그것들로부터 나는 아주 멀리 밀려났을지 모른다. 하지만 밀려 밀려 다시 온 곳 역시 그토록 와보고 싶어 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물론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온 자리지만, 그래도 언젠가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오리라 마음먹었다. 이렇게 보니 그 자리에 도달하고, 목표를 성취하고야 만다는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물론 그런 도전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순간들이 훨씬 더 뜨거운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끊임없이 꿈꾸는 일, 꿈꾸는 동안의 들뜨고 행복한 마음, 언젠가는 이룰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희망과 그렇게 꿈꾸고 그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뜨거운 응원과 사랑. 그 모든 중간 단계들이 훨씬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각자만의 북극성 일지 모르겠다. 


내 가슴을 뛰게 해 주고, 그것을 향할 때 다시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그런 이상향. 쉽게 잊어버려도 몇 번이고 다시 떠올리면 된다. 어린 시절의 꿈이었든, 조금 더 머리가 큰 후에 가지게 된 목표든, 아니면 가장 가까운 사람과 아무 걱정 없이 웃을 수 있는 소소한 일상 속의 행복이든, 북극성을 떠올리기만 한다면 좋겠다. 북극성에 닿고 안 닿고 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으니까. 바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당당히 고개를 쳐들고 북극성을 향해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또 그 북극성이 늘 그 자리에 있음을 잊지만 않으면 된다. 벅찼다. 디즈니 공간이 부린 마법인지 온 마음이 희망으로 벌렁거렸다.





      

[1] 재향 군인의 날 : 미국에서 전몰 용사들을 기리는 날 (우리로 치면 현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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