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본사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 이지은 님
‘오느라 고생 많았죠?’
지은님께서 미소와 함께 건네주신 따뜻한 인사말에 스르륵 긴장이 녹아내렸다. 금요일 오후라 피곤하실 텐데도 해사한 웃음으로 맞이해 주시니 시차로 누적된 피로도 다 씻기는 기분이었다. 기념품 샵을 들리겠냐고 여쭤봐 주시는 말씀에 감사하게도 덥석. 가게 점원은 또 어찌나 친절한지, 물건을 계산하는데도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라고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물어보는데, 온몸이 다시 녹아내릴 뻔했다. 아니, 융해의 다음 단계는 증발이니 증발할 뻔했다가 맞을까? 기념품 샵 안에는 각종 쑴쑴(Tsumtsum) 이들이 가득했는데, 지은님께서 웃으시면서 얘네들 회사에 가면, 직원들 책상 위에 다 놓여 있다고 했다. 또 요즘 쑴쑴이 나오는 게임이 유행이라 서로 ‘목숨’ 같은 것도 메신저로 주고받는다고...
‘나라면 백만 개도 주고받을 수 있을 텐데...’
이상해 보일까 봐 속으로만 생각했다. 나 같은 디즈니 덕후에게는 상상만 해도 즐거운 회사 생활일 것 같았다.
지은님과의 인터뷰는 카페테리아 테라스에서 이루어졌다. 모아나 공연 소리가 배경 음악으로 건너편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테이블은 차가웠지만,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의 공기는 따뜻했다. 지은님은 차분하고도 충만한 분 같았다. 서핑을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 여려 보이는 몸 어디에서 그런 열정이 나오실까 싶었다. 질문이 어렵다고 하셨지만, (! 내가 문제를 내면서도 어렵겠다는 생각은 했는데) 대답은 끊김 없이 이어졌다. 말씀을 들으면서 디즈니는 환상의 공간이지만, 이 곳도 다 사람들이 일하는 기업이구나 했다. 그래도 왜 미국에서 직원들이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 1위로 매번 선정되는지 공감이 됐다.
“처음엔 커리어를 위해서 장거리 부부로 지낼까도 상의를 해봤는데, 그러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연애도 장거리였는데 결혼까지 장거리 하기엔 힘들기도 하고 (정신적, 신체적, 그리고 재정적으로 힘들어서요, 하하) 남편도 보고 싶을 것 같고.”
남편 말씀을 하시는 지은님의 얼굴에 행복이 번졌다. 미국에 오시게 된 계기가 남편이셨다니, 놀라웠다. 원래는 국제기구에서 일하시는 게 꿈이었다. 활동과 공부도 해당분야에서 해왔다. 일본에서 공부하셨고, 뉴욕에서도 일을 했고, 제주도에도 있었다. 그러다가 남편 분을 만나시게 된 거다. 지은님은 남편을 따라 바다를 건너오셨다. 디즈니만큼이나 낭만적인 선택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이야기 중간중간에 머리 위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올려다보면 담쟁이를 타고 돌아다니는 꼬마 손님과 눈을 마주쳤다. 우리에게 간식거리가 있을 줄 알고 찾아오는 다람쥐 친구였다. 안타깝게도 이 귀여운 친구에게 건네줄 음식이라고는 부스러기도 없었다. 그래도 그 친구는 우리 곁에 남았다. 마치 이야깃 소리에 함께 귀 기울이고 있는 기분이었다.
-1-
#행복이란?
#지향하는 가치
#하고 계신 업무
-2-
#커리어 선택의 배경
#미국의 지인 추천
#좋아하는 일 vs 잘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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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펙 경쟁을 하는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
#디즈니에서 일하고 싶다면 선택할 전공
#지금의 업무는 어떤 성향의 학생들에게 잘 어울릴까요?
#마무리 -지금 행복하신가요?
우선 지은님께 행복을 여쭈었다.
이 질문 너무 어려워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한 현자가 제자들에게 질문을 해요. 너희가 인생에서 하고 싶은 것 3가지와 이루고 싶은 것 3가지를 말해보라고요. 그리고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들이 서로 대립되는 부분은 없는지. 없다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스스로 생각해 보았을 때 전 개발도상국에서 힘든 사람들을 돕고 싶었어요. 그런데 행복한 가정도 가지고 싶고요. 이 두 가지가 양립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과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을 수 있단 생각에 나에게 무엇이 더 중요한지 방향을 잡게 되더라고요. 그러니, 행복은 바로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의 일치랄까요? :)
어렵다고 하시면서도 재미있게 답변해주셨다! 하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의 일치라.. 뭘 하고 싶고, 뭘 이루고 싶을까? 지은님께 국제기구 분야를 그만 두실 때 아쉽지는 않았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게 상충되는 일이라니, 얼마나 고민이 많으셨을지 예상이 갔다. 그래도 해오고자 했던 방향과 같은 길 위에 계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제기구에서 세상의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정책을 펴는 일도 디즈니에서 세상의 다양한 아이들, 어른들을 위해 서비스를 만드는 일도 결국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한 걸음이다. 누군가 '꿈의 언저리에 살더라도, 그 자체로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꿈 언저리에 살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꿈을 품었던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일하고 싶다’는 바람은 어디에서도 이룰 수 있을 테니.
당당한 겸손함이요.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미국에 와서 회사 동료들과 대화하며 느낀 게, 이들은 당당한데 겸손해요. 이것도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저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 같아요. 본인 의견을 내되, 내기 전에 "이런 것도 생각해 봤을 테지만~" 내지는 "내가 괜히 긁어 부스럼 내는 건 아닐까 걱정되지만 (I hope I'm not opening a can ofworms)~" 등의 말을 붙여가며 부드럽게 얘기해요. 제가 상사와 얘기할 때는 당연하겠지만, 제 상사도 저한테 얘기할 때 이렇답니다. 그래서 한국에선 상사의 의견과 반대일 경우 혼자 간직하곤 했는데 여기선 저도 분명히 의견을 내게 되었어요. 설령 의견이 반영되지 못해도 상사는 "좋은 의견이다. 분명 고려해야 할 점인데, 아직은 때가 아니니 그 점은 잠시 미뤄두고(put in a parking lot) 후에 다시 얘기해보자(revisit) " 라며 존중해 주어요.
미국이라면 자기 과시나 자랑도 있을 것 같고, 자기 PR도 잘 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나요?
물론이죠, 자기 PR 중요해요. 근데 이걸 겸손하게 해야 해요. 자만심과 자존감의 차이랄까. 잘난 척, 큰일을 이룬 척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성취한 건 팩트로 표현을 하고, 이것을 성취하기 위해 도움을 준 모든 사람들의 공을 알려요. 저도 아직 자기 PR은 소극적이라 변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같은 말도 사람 마음을 긁어놓을 때가 있는 가 하면, 작은 표현이 사람의 마음을 데워 줄 때가 있다. 같은 회사 환경 속에서라도 어떻게 팀원들과 소통하는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였다. 상사의 역할이 사기를 북돋워 직원들로부터 최고의 역량을 이끌어 내고, 다양한 의견을 잘 듣고 수렴하는 거라면 지은님이 계신 부서에서만큼은 그게 얼마나 효율적으로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 싶었다. 또‘디즈니’의 기업 문화 자체가 직원과의 소통에 초점을 맞춘다고들은 적이 있는데, 업무의 효율 면에서는 조금 부족해도 직원 개개인에게는 힘이 되는 일일 것 같았다.
디즈니 테크놀로지 서비스& 솔루션-모바일 비즈니스 기술 팀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우선 프로젝트는 대개 1년 미만의 유니크한 업무를 프로젝트라 칭해요. 이러한 프로젝트를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예산과 타임라인 내에 완료하도록 기획부터 설계, 그리고 이해 관계자 관리까지 담당하고 있어요.
여러 프로젝트가 돌아간다고 하셨는데, 지금 담당하고 계신 프로젝트는 어떤 종류의 프로젝트인가요?
저희 팀은 외부 클라이언트가 아닌 디즈니 타 부서들을 클라이언트로 두어요. 팀 목표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디즈니 본사) 직원들에게 비전통적인 직장 문화를 선사하자(의역)"로 직원들의 업무 및 여러 사내 경험을 발전시킬 수 있는 앱을 만들어요. 예로, 작년에 상하이 디즈니 리조트를 오픈했어요. 그 오픈식에 조니 뎁, 스티븐 스필버그, 제리 브룩하이머, 울프강 퍽 등 수많은 유명인사가 초대되었는데요, 유명인사들의 참석 및 관리를 디즈니 CEO실에서 쉽게 할 수 있게끔 앱을 만들었어요. 또 직원 가족 대상 내부 시사회가 있을 때 표를 관리하는 앱도 개발했죠.
담당하신 업무의 매력은요?
세 가지 매력이 있는데, 첫 때로는 항상 배울 수 있다는 것. 늘 새로운 프로젝트가 생겨서 항상 모르는 게 나타나고, 항상 배우게 되죠. 둘째로,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 같은 회사 사람들이어도 다들 자기 전문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한지라, 관점도 다양하고, 그런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게 좋아요. 셋째로는 따분할 사이가 없다는 것. 반복적인 프로세스를 따르는 일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업무가 생겨나서요.
아 그런데, 잠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원래 지은님은 국제 관계분야로 진출하는 게 꿈이었다는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지은님도 사회 초년생 때 여러 분야를 겪으며, 원래 디즈니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는 말이다. 학부 때는 관련 분야로스펙을 쌓아 학부 졸업 후 외국계 투자 은행(도이치 뱅크)에서일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그만두었다. 남들이 부럽다고 해도, 가치와맞지 않으니 오래 못 있었다고. 이후 국제기구에서 일하기 위해 석사 이상을 수료하고, 아태 지역의 전문가가 되자고 생각하셔서 일본 와세다 대학원에 장학금을 받고 진학했고, UN 대학교를 다녔다. 이후 커리어는 국제 관계 쪽이었다. UN대학교를 다니실 때는 UN 뉴욕 헤드쿼터에서도 일 해보시고, 한국에 돌아오셔서는 UNITAR(유엔 훈련 조사 연수원) 제주 센터와 아시아 재단에서 일을 했다. 그리고 미국으로 온 건데, 미국에 온 후로는 스타트업에서 일한 경력도 있었다. 대체 어떻게 이렇게 분야를 휙휙 바꾸시고, 스타트업을 거쳐 디즈니로 오셨을까? 궁금했다.
2탄
#커리어 선택의 배경
#미국의 지인 추천
[1] 재향 군인의 날 : 미국에서 전몰 용사들을 기리는 날 (우리로 치면 현충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