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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Jan 23. 2020

21세기, 2번째 10년을 보내며 가지면 좋을 태도

20200121 : AKA 두려움/불확실성과 마주하고 지속적으로 실천!

변화가 많은 세상이지만, 인간의 뇌 조차도 고대, 중세 시대에 비해 발전한 게 없다고 한다.

(물론 아인슈타인도 뇌의 4%? 정도 활용했을 정도로

우리 뇌의 잠재성은 무궁무진하다는 말도 있지만,

그 말을 제외, 생물학적으로..)

 

정보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어디에서부터 어떻게 다 보는지,

뭘 취사 선택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 넘쳐나는 정보를 다 흡수하는 건 물리적으로도 무리고,

뇌에 과부하가 오게 될 수 있는지라 번아웃도 당연하다.


하여, 요새 중요한 능력은

단순히 많은 정보를 흡수하는 능력이 아니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스스로에게 유용하고 우선적인 정보를 판별하고,

적용, 활용, 재생산하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2, 3차 산업 혁명까지도,

정보의 불평등이 곧 소유의 불평등이었겠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처럼 정보가 무수히 많아지고

누구나 다양한 경로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시대에서는

정보 취사 선택 능력과 판단 능력의 불평등이

결국 소유의 불평등으로 연결되지 않을지 싶다.


그렇다면 어떻게 정보를 취사 선택하고,

정보에 따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꾸준히 질문하고 사고하고, 실수하고

(인생을 AB테스팅과 그로스로..?ㅎㅎ),

주변으로부터 피드백도 받고,

다시 배움을 적용하면 될 것 같긴 한데,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만 생각하면

인생 재미 없쟈나ㅋㅋㅋ..!

그래서 여러 성장 과정 중에서 변치 않을 태도!

세상 어떤 쓰나미에도 변함 없이 지니면

좋을 태도에 대해 오늘은 생각해 봤다.




1. 미개척지, 불확실함,

모르는 것들은 당연히 두려울 수 있다.  

다만 두려움에 느끼는 두근거림을

신남으로 착각해주기.


나는 취업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두려웠었고

(나한테 뭐가 맞을지도 모르겠었으니)

내가 돈을 과연 벌면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글 쓰기, 말 하면서 돈 벌어 살기 등-라는 생각도 두려웠었고 해외 취업도 궁극적으로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만의 잘 벼른 스킬 셋(무기) 없이 가능할까 두렵기도 해서 주춤 했었다.


하지만 두려움에 얼어 있어봤자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선택 전에 많은 고민을 거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지만,

고민을 많이 하고 선택해도,

(심지어 내부 사정들에 대해서 알아보아도)

실제로 어떤 선택을 하고 나서 겪는

부수적인 불편함/기회는 늘 예상 밖이었다.


(분명 남들 다 맛있는 치즈 케익이라 하고,

보기에도 맛나 보이지만

실제 먹어보면 내 입맛에는 안 맞는 치즈 케익인..ㅎ

그럴 수 있는 현실..^^..

암튼 먹어도 보기 전에 그 맛을 어떻게 알까?

부딪혀 보기 전엔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도 크다.)


하여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극한의 상황이 아니라면,

한 살, 1분이라도 더 젊을 때에

도전해보고 싶은 일들이 있다면 다 해보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그런 마음 가짐으로

모르는 것들을 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평생 직장은 이미 없다.


평생에 걸쳐 직업도 평균 5번 바뀐다는데,

여러가지 미리 다 겪어보면,

내가 어떤 일들에 맞고 맞지 않는지,

어느 하나의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몸으로 부딪히며

한 시라도 더 빨리 체득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여러 번 직업이 바뀐다는 이 시대에,

여러 일들 맛보기를 미리 다 해볼 수 있고,

나에게 맞는 일이라 예상되는 그 어느 일이든

새로 시작해볼 단초와 기초 체력을 기를 수 있지 않을까?


작가? 유투브 크리에이터?

이름 있는 기업에 들어가는 일?

1인 기업가? 창직?

예술가? 기술 개발자?


하나의 길을 정진해서

그 분야의 최고가 되어

불멸의 화신으로 나는 남고 싶을까?


그런 극단적인 성공과 미래에 찾아올

부수적인 명예 등에 사로 잡혀

현재의 충만함을 포기하거나 놓치는 것보다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

하다보니 즐거워서 더 잘 하고 싶은 일..


그 길들을 가다 보니

나만의 전문 분야를 만들어가게 되고,

어떤 새로운 분야든 어렵지 않게 내 것으로 장착해 가며,

배움의 습관을 여기 저기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며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짧고 강하게 타올라 인류 역사에 획을 긋는 불길보다,

잔잔하고 뭉근하게, 오래도록 빛을 내어 세상을 밝히는

장작불이 되고 싶다.


또 높은 러닝 커브와 올바른 의사 판단 능력 등은

빠른 AB 테스팅에서 온다고도 생각한다.


그리고 사람의 뇌는 호르몬에 지배(?)되긴 하지만,

호르몬은 생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도 있어서,

'두려워서 느껴지는 두근거림'을

‘설레서 느끼는 두근거림'으로

선택적으로 착각해줘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상상 속에서 두려운 것들은 너무나도 눈덩이 같아서,

두려운 것을 미루고,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기도 했었는데,

막상 마주하고 정면 돌파하다 보면

별 거 아닌 일들도 많았다.


반대로 구상만으로는 쉬웠지만,

막상 해보니 예상 못한 결과로 돌아오는 일도 있는 것처럼


그러니 빨리 시작하고,

모르기 때문에 두려운 분야더라도

즐기며 다가서면 어떨까.


때로는 잡스런 생각을 잠시 내려 놓고,

일단 해보고 빠르게 방향키를 전환하는 것도

변화하는 시대에 발 맞춰주는 일 아닐까.




2. 쉽고 편한 길 따위는

애초에 없었다고 생각하기.

(원래 삶=힘듦..이 디폴트면

매사에 감사하게 된다.)


그간 복잡한 인생을

너무 단순한 명제만으로 해석해 살아 왔다.

(그리고 그 단순한 명제의 오류를 인지하지 못하고,

의심하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내 잘못도 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사람을 만나서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면 행복할거야'


이렇게 A하면 B할 거라는

(결국, 공부 잘 하면 행복할거야)

명제는 너무나도 복잡한 인생을 단순화한 거였고,

앞으로 더 복잡해질 세상에는 어울리지도 않는 명제 같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같은 말에

개인적으로 공감하지도 않고,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글로벌 사례들을 놓고 봤을 때

개인적으로 엄청나게 드라마틱한 성장기를 겪은 것 같지도 않다.


또 살면서 개인적으로 여러 어려움들을 맞닦뜨리는 덕에

매해 깊어져 나가는 중이라고 생각하지만,

작년에 얻은 큰,

하지만 지극히 현실적인 깨달음 중 하나가 있다면,


'원래 인생은 힘든 게 디폴트고,

그 디폴트를 인정하고 나면

하루하루가 감사해지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진다는 것.'


그리고 그 힘듦은 대체로

실제로 육체적으로 내가 힘들기 때문에 찾아오기도 하지만,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데에서 찾아오는 부분도 크다고 생각한다.


개개인이 느낄 불공평함은 돋보기로 들여다 보면

모든 사람에게 해당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불공평함은 '우리는 아무리 애써도 타인의 겉만 볼 수 있기에'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환경이었고,

누군가는 자라나면서 마음에 병을 얻었고,

누군가는 예상치 못한 사고를 당하거나 트라우마를 겪고,

누군가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할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릴 수도 있다.


똑같이 불행하다, 불행은 공평하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렇다기 보다,


공평한지 아닌지 비교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공평한지 비교 대상이 명확하고 동등한 카테고리어야 하지 않을까?


즉, 비교를 굳이 하고 싶다면 비교 카테고리부터 리셋해야 하고 현실적으로 카테고리가 잘못 되었다면 비교 자체도 불필요하며 그에 힘겨워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는 것.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고,

타인의 삶과 나의 삶 전체를 비교하기에

내가 볼 수 있는 타인의 삶은 지극히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비교할 시간에 내 삶에 더 집중하며 갈고 닦는 게 낫다.


또 어떤 측면에서 삶은 매우 공평하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쉽게 얻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

부럽고 불공평하다 느껴질 때도 있겠지만,

공평하게도 그 사람은 같은 것을

어렵게 얻은 다른 누군가가 깨우친 것들은 절대 얻을 수 없다.


어렵게 직접 깨지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며

쟁취해내며 몸으로 체득한 한 사람의 삶의 지혜는

그 깊이와 내공과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센스는

상속 될 수도 없고, 쉽게 얻어낸 다른 이는

평생이 지나도 체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다른 누군가의 삶과 나의 소중한 삶을 비교하며 좌절하거나 부러움에 속상해할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오늘은 힘들 것이고, 내일은 더 힘들 것이지만, 모레는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마윈의 말을 정말 좋아한다.


현실적으로 세계 경제(혹은 한국 경제)는 저성장 국면으로

개개인의 삶은 살기 더 어려워질 것이고,

환경 문제는 더 악화될 것이며,

자동화되는 일자리는 많아져,

무수한 사람들이 생계 수단을 잃을 것이고,

부는 더 양극화 될 것이다.


개인의 입장에서 봤을 때 노력해도 나아지지 않는 것 같은, 꽉 막힌 것 같은 답답함을 느낄 때도 분명 올 거고,

합리적이지 않은 처사에 울분을 삭이거나

더 맞는 타이밍을 기다리는 때도 올지 모르겠다.


하지만 상황이 어떻든,

객관적인 현실이 어떠하든,

그 상황과 현실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건

결국 내 마음 뿐이고,

오롯이 내가 조정할 수 있는 건,

그 누가 어떻게 해도 앗아갈 수 없는 건

사유의 자유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생각의 자유와 행동의 자유.


오늘도, 내일도 말도 안 되게 힘들겠지만,

그 힘듦을 헤쳐나갈 수 있는

내적 강인함만은 누구도 앗아갈 수 없으며,

내 안에 꿈틀대고 있다고 믿을 자유.


미친 것 같은 생각일 수 있지만,

내일 모레는 아름다울 것이라고

비이성적으로 무작정 믿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희망을 잃지 않을 자유는 결코 놓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삶은 연속 된 트레이딩 시스템이다.

(하나의 길을 선택하면, 다른 길은 놓치게 되고,

어느 길을 선택하든 공평하게 장단점이 있으니.)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만이 예측 가능하다고 할 때,

우리는 거지 같이 힘든 오늘과 내일..

현실적으로 아무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일 모레를 바라보며 희망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내일 모레를 오게 할 수 있는 힘,

사회 문제를 조금 더 풀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고 믿는 것, 나 스스로를 돕고 내 주변 사람들과 더 나아가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어 세상을 더 낫게 바꿀 수 있는 나 자신이라는 것을 어떤 상황에서도, 그냥 믿어주어야 한다.




3. 유연성 지니기

- 변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이기.


변화는 불편하다. 새로운 걸 배우는 일이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변화를 외치면, 누군가는 변화하지 않아야 시스템이 유지, 보수, 정진(?)되는 측면도 있으니까..


첫 직장에서 3개월이 지났을 때

팀장님께 갑작스럽게 독대 면담 요청을 드렸었다.


ㅋㅋㅋ식사 신청을 따로 드린 것이었는데, 당시 혼밥하는 문화가 있었던 회사였던 지라 팀장님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할까 처음엔 무섭기도 하고, 놀라셨었다고..ㅋㅋ


그런데 그 자리는 내가 일을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여쭤보기 위해 피드백을 받고자 요청드린 자리였다.


그러면서 회사 내부 이야기들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들을 전해 듣기도 했고, 나는 회사에서 어떤 인물로 어떻게 비춰지고 어떤 일을 어떻게 더 하면 좋을지 말씀을 나누게 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느끼기에 업무 프로세스 중 다같이 개선되면 더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말씀 드려보기도 했었는데, 그때 말씀이 인상 깊었다.


새로운 제안 좋고, 개선 되면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게 분명하지만 변화를 이야기하는 건 어쨌든 일부분은 피곤함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라는 거였다.


맞는 말이었다.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고 적용하고 하는 것을 누군가는 좋아해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은 분명 있다. 그리고 어쩌면 그건 당연하다.


물론 당시에는 나도 생각 정리가 완벽히 되지 않아 반박하지는 않았지만, 요새 좀 달라진 생각이 있다.


이제는 변화를 좋든 싫든 받아 들여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화를 따라가는 게 어렵다고,

모든 변화에 어떻게 대응하냐고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지금 내 몸이 편안한 일이

내일의 나를 불편하게 할지 모르는 일이고

지금 놓치는 1년, 1달이

미래에 되돌이킬 수 없는

몇 년, 몇 달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때로는 싫어도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 있는 것처럼

빠른 변화는 공기가 숨쉬기 위해 당연한 존재이듯

앞으로 더 복잡도가 높아질 세상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빠른 변화에 대비하고, 한숨 쉬거나 불평하거나 화를 내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할 바에 그 변화에 직면하고 즐기는 게 현명하다 본다.




4. 관성 만들기 (A.K.A. 습관 만들기)


그리고 위에 언급한 변화를 즐기는 유연한 태도를 관성으로 만들고자 한다.


일종의 태도 자동화로, 내 삶의 일부가 되도록 장착하는..


아시다시피(Also Known As) 어떤 일이든 처음 한두번이 어렵지 내 몸의 습관처럼 딱 달라붙어 자동적으로 무의식적으로 하는 일이 있고 나면 더 어려운, 의식적인 선택들을 자연스레 쌓아 나가면서 더 높은 난이도의 일들도 해낼수 있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차장님께서 최근에 말씀 주신 ‘습관을 만들기 위해서는 습관을 나의 정체성과 결부시키면 좋다’던 말씀이 떠오른다.


습관 형성에는 생물학적으로 66일이 걸린다고 하고,

행동 자체가 보상이 될 때가 가장 좋다는데 그보다 더 좋은 건 ‘나라는 인간의 아이덴티티의 일부=습관화’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는 매운 음식 별로 안 좋아해”가 나의 정체성이라면, 나는 그 말을 주변 사람들과 자주 나누게 되는데, 그렇게 자꾸 이야기 하다보면 나는 매운 음식들을 잘 안 먹게 되는 것처럼 나의 정체성이 곧 습관이 된다는 것이다.


자기 암시의 효과라면 효과일 수 있겠는데,

운동을 계속 하고 싶다면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야’로 바꿔서 말 하고 다니거나 좋아하게 되어버리는 게 빠른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하여 결론.


복잡성이 높아지고 난이도가 높은 일들을 해내야 하는 세상 속에서 기본으로 장착하고 싶은 삶의 태도는 내가 무의식적으로 실행할 수 있게 아예 관성으로 만들어 버리자.


“나는 변화를 즐기고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걸 즐기는 사람이야”


“나는 시작하고 도전하는 게 즐거워” 등..


각종 변주가 있다.


내가 만들고 싶은 나의 정체성, 지속하고 싶은 삶의 태도, 변치 않고 간직할 나의 핵심 가치, 건강을 챙기기 위한 생활 습관 등..


나의 정체성, 내 본질, 내 핵심.. 내 것으로 만들어 버리자.




5. 나에게는 엄격하게 실수에는 관대하게.

똑같은 실수에는 처절하게

다만 회복은 누구보다 빠르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실수가 습관이 되면 안 된다.


내 실수로 타인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건 용납도 안 되고 참으로 싫지만 타인의 실수로 내 기분이 좌우되는 건 더 싫다. (다만 실수가 아닌 명백한 윤리적인 오류이거나 신뢰에 금가게 하는 치명적인 행동을 한다면 굳이 연을 이어갈 이유가 없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빨리 회복하고 내 할 일에 집중하는 게 더 좋다.


존경하는 CEO분들의 말씀에 따르면

‘뭘 포기할지 아는 것’도 선택의 기준이라고.


내가 어찌할 수 없는 타인의 태도,

당장 바꿀 수 없는 환경적인 요건,

걱정해봐야 해결되지 않을 문제 등..


언급은 할 수 있어도

심정적으로 오래 매여 있지 않는다.

(최근 습관을 들인 마음 비우는 명상의 힘일지도)


또한 실수로부터 배우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한

잦은 실패롸 빠른 회복, 빠른 재도전은

나아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지금 당장 이 순간의 나의 실수는 냉철히 인식하고 분석해 되풀이하지 않되, 많이 실패하고 빨리 회복해 많이 배우고 결국 성공하도록..


잦은 실수를 바탕으로 한 다시 일어섬,

누적되는 것들의 힘, 과정의 힘을 믿어주자.



정말 마지막으로 보너스!

혼자가 되지 말기.

(어디든 커뮤니티에 속해 있을 것)


요즘 혼자 생활하고, 혼자 고민하는 등..

욜로와 홀로 족들이 늘어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은 협업의 동물이기도 하고,

안타깝게도 인간적인 교류 없이

무인도에서 며칠이나 살아남을까 싶을 정도로

원체 사회적인 동물이기도 하다.


또 내 곁을 채워주는 인연들,

내가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고,

나에게 자극을 주고 나를 나아가게 하고,

나에게 협업을 알려 주며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는 이들은 타인 뿐이다.


최근 회사의 인턴 분과 걸어오면서 대화를 나누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시험 등) 인간적인 교류를 끊어야 하는 때도 있다고 하잖아요? 어떻게 건강한 관계 유지와 행복 추구를 동시에 선택할 수 있죠? 불가능한 거 아닌가요?”


좋은 질문이었다.


하버드 대학교가 75년에 걸쳐 연구한 행복 연구 보고서에서 행복한 사람들은 부와 명예 그 어떤 것 때문도 아니었다.


‘건강한 관계의 질’이 행복을 좌우하는 단 하나의 요소였고, 실제로 내가 인터뷰했던 커리어 우먼분들도 직업적인 성취 때문에 행복하시다는 분보다 가족들 때문에, 함께하는 동료들 때문에, 친구들 때문에 행복하시다는 분들이 더 많았고, 오히려 스스로의 핵심 가치가 일찍 가정을 꾸리는 것과 공평함 등이었다면 타협하지 않고 지켜내시며 일과 삶을 조율하시면서도, 경력 단절을 두 번이나 겪으시면서도 앞으로 나아가신 분도 계셨다.


사람은 섬으로 태어나지만,

홀로 모든 일을 할 수 없다.


그리고 그 가장 기본은 건강한 관계의 질.


내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 성숙도와 만족도 등이 장기적으로 나를 이끌어주는 행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술가도 심지어 사람들과의 교류 속에서

혹은 다른 누군가가 만든 예술 속에서 영감을 얻고,

누군가와는 지속적으로 연결되어 삶을 개척해 나간다.


만약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나는 요새 누구와 어떤 관계들을 맺고 있는지

그 관계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왜 그렇게 느끼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이어 나가고 싶은지 등

한 번 생각해봐줄 일인 것 같다 :)


더불어, 나 역시 어딘가에 공개적으로 글쓰기

혹은 공유하기를 공공연하게 장려하고 싶다.


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어느 누구와도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요즘 같은 초연결 시대에

얕고 넓은 네트워크는 예상 외로 많은,

여러 행운들을 가져다 준다.


그렇게 파원처럼 퍼져나가는

내 작은 노력들이 가져다 줄 수혜는

누구나 누려야 하고, 누려 마땅하다고도 생각한다.


게다가 그 누린 것들을 다시 나누어

각자의 위치에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들을

조금씩 지속할 수 있다면..


그렇게 나 자신에게 떳떳하고

나 스스로와 건강한 관계를 맺고

나 이외의 타인과도 건강한 관계를 맺어나가며

나의 행복도 챙기고

타인도 더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복잡한 세상,

21세기의 2번째 10년

엄청나게 대단한 태도를 장착하게 되는 것 아닐까?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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