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사관 공보과 지역 총괄담당관 : 김대영 님
*모든 분들과의 인터뷰는 1시간~1시간 반 가량 진행되어, 인터뷰 전문은 이후 부록으로 첨부합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내용은 가독성을 위해 인터뷰의 ‘일부’를 발췌하였습니다.
취업하기 힘든데 대학원이라도 가야 하나?
원래 공부하던 무언가를 더 심도 있게 배우기 위해 가는 대학원이 우리나라에서는 취업을 미루기 위해 가는 곳이 다 되었다. 대학원이 비를 피하는 누구네 처마 밑도 아닌데... 게다가 요즘 그 처마 밑, 만원이라 비 다 샌다고 한다. 누구나 ‘방향성’이 중요하다는 건 안다. 그럼 학문의 전당에서 방향성은 어딜까? 우리는 대학원을 왜 가며, 원하는 공부를 하며 취업할 수는 없을까?
어느 가을날 용산구에서 김대영 님을 만났다. (당시에는 대사관에서 인턴을 했으며, 지금은 군복무로 나라를 지키고 있는 멋진 친구의 소개 덕분이었다. 친구야, 다시 한 번 고마워!)
지금 미 대사관 공보과 지역 총괄 담당자로 일하고 계신 김대영 님도 갖고 있으신 건 ‘방향성’ 뿐이었다. 유학을 가보신 적도 없다. 어려서부터 외국어를 쓰는 사람들과 일 하고 싶다고는 생각했지만, 대학 때까지만 해도 ‘미국’에 큰 관심은 없었다고 했다. 대학교를 다니고는 있지만 아직 명확한 진로는 모르겠는 우리와 다를 바 없던 분이었다.
“사람들이 제게 물어요. 혹시 학력 콤플렉스가 있는지, 아니면 가방 끈 늘리는데 욕심이 있냐고요.”
김대영 님께서는 2번 의석사 학위, 1번의 박사 ‘근접’ 학위 소지자다. 숙명여대 소비자 경제학과 졸업, 고려대 영어교육학 석사, 다시 한양대 미국학 석사를 마치고, 또다시 숙명여대 ‘정치외교학’ 박사를 하다가 그만두었다. 업무-육아-공부까지 병행하기가 힘들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체 무엇이 원동력이었을까? 싶어 토끼눈이 되는데, 답변은 명료했다.
당시에는 전공을 바꾸는 게 터부시 되었어요. 지금은 흔하잖아요? 저는 뭐, 제 마음대로 산 거죠. 저는 더듬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더듬이 가향하는 곳으로 갔어요. 사실 그렇게 가봐야 되는 거예요. 저는 그래야 지 만 만족이 되어서 그렇게 했고, 아주 좋았거든요.
터부시 되었던 일을 해냈다니... 마음속에 팡파르가 울려 퍼졌다. 나는 이렇게 보통의 길을 가지 않는 분들이 좋다. 재정적인 지원을 계속 받으신 건가요? 여쭤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고려대 대학원을 다닌 지 2년 후부 터는 학원에서 토플 강사를 하면서 경제적으로 독립을 했다고. 그러다 미국학을 공부할 때 처음 2년은 장학금으로 괜찮았는데, 이후에는 과외, 번역, 영화 번역 등 생존을 위해 다양한 일을 했다고 했다. 정말 힘들었다고 하는데,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도를 깨우치신 분의 온화함 같았다.
미국학으로 대학원을 다니다가 새터민 여성에게도 관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토요일에는 경남대학교 교육원에 가서 막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한테 대사관을 소개를 받아서 대사관에 온 거고, 대사관 일을 하다가 공부를 제대로 더 하고 싶어져서 다시 박사 과정을 간 거예요.
대사관에 들어가셔서도 박사 과정을 다시 하고자 하셨다니, 하고 싶었던 일 중에서도 공부하고 싶은 열정을 따라온 분이었다. 그럼 이 분의 대학 생활은 어떠셨을까. 학부 때만 해도 몇 년 후에 미국과 한국을 잇는 미 대사관에서 일하게 되실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미국에 대한 동경도 나중에 영어 공부를 하면서 싹 텄다. 그러면서 점점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하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 졌다는데, 말씀을 들을수록 대영님도 우리처럼 구체적인 목표는 없던 분이었음을 발견했다. 대신 ‘방향성’은 늘 마음속에 있었다.
게다가 김대영 님은 ‘워킹대디 쇼퍼런스’라는 예시를 들어 대사관에서 진행 중이신 ‘한미 여성 관련 세미나’에 관한 이야기도 나눠주셨다. ‘워킹 대디’만도 생소한데, ‘쇼퍼런스(쇼와 콘퍼런스의 합성어)’라니? 이번엔 심벌즈가 울렸다. 머릿속 심벌즈 뒤로 ‘사실 일터에서 일하는 남자들이라고 자기 자식이 보고 싶지 않은 사람 없다’고 서술한 기사가 떠올랐다.
따라서 이번 인터뷰는 ‘대사관에서 하는 일’, ‘국제 관계’ 관련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또 이분의 개척적인 삶의 자세를 본받고 싶은 분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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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무 내용
#업무 선택의 기준 (가치)
미국 대사관 공보과 지역 총괄담당관 전문위원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희는 한국의 오피니언 리더분들과 미국 전문가들을 교류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여러 분야로 나뉘어 있는데, 저는 여성, 미국학, 건강을 맡고 있어요. 예를 들어 미국학이라고 하면 미국에 관한 것들이에요. 미국 사람은 왜 저렇게 생각하지? 미국 사람은 어떤 경우에 왜 그렇게 행동하지?를 설명하는 미국 전문가들이 한국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코디네이션하고 있어요.
출장이 잦은 일이라고 들었어요. 왜 출장이 잦은 건가요?
앞서 말한 코디네이션과 관련된 일들인데요. 예를 들어, 부산에 있는 부경대에 2017년도부터 미국학과가 생긴 대요. 그럼 미국 대사관 하고는 어떻게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저희가 직접 가봐요. 가서 어떤 걸 희망하시는지, 그럼 우리가 어떤 걸 할 수 있고, 없고, 해야 되는지 의논해요.
업무에서 새로 프로젝트를 담당하신다면, 중점을 두어 처리하는 본인만의 특별한 기준이 있으신가요?
새로운 프로젝트를 할 때는, 이게 지속 가능한 일이냐, 얼마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냐?를 생각해요. 1회성이나 피상적인 것보다 조금 더 근본적인 이슈를 다룰 수 있어야 하고, 그게 정말 무언가의 시작이 되는 Seed project(씨앗 프로젝트)인지를 요. 토대를 잘 만들어야 하니까 그런 프로그램들이라면 최선을 다 해요.
이런 걸 하실 때 본인만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도 잘 듣는 게 강점인 것 같아요. 제 주변의 컨택하시는 분들이 찾는 부분이 무엇인지, 그 컨택 분들이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분들이잖아요, 그리고 한국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에서의 접점, 그리고 같은 거에 있어서 미국 사회가 줄 수 있는 부분들을 살피죠. 같은 주제라 하더라도 미국 사회가 뒤쳐져 있는 거면 우리가 사례로 볼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미국 사회가 한국 사회의 본보기가 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함께 찾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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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 대디 쇼퍼런스
#배움의 태도
#‘미국학’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
#미국으로부터 배울 점 #멘토를 찾는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