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살면 자연스럽게 외국인 친구들과도 어울리게 됐다. 남편이 대사관에 근무했기 때문에 각국 국경일에는 기념행사에 초대하기도 초대받기도 하며 지냈다. 그리고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였기에 베이비 그룹이나 아이들 수업(우리나라로 치면 문화센터 수업)에서도 어울려 친구가 되기도 했다.
친구들과 지내다 보면 그들의 사고를 조금씩 엿볼 수 있고 가끔씩은 서로 다른 문화와 생각의 차이 때문에 작은 충격들을 받기도 했다.그러면서다른 것을 포용하는 법과 다양성을 인정하는 자세를 배워갔다. 생각이 다른 것을 인정하는 것은 내 생각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실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그리고 감정이나 의견과 사실을 구분해서 접근하는 자세를 조금씩 알아갔다.
이런 고민을 겪는 중에 가끔한인들을만나면 뭔가 내가 배워나가는 것과의 괴리감을 느낄 때가종종 있었다. 이런 대화를 심심치 않게 들었다. 4~5명이 함께 모인 자리에게 한 사람이 말했다.
"머리 새로 했어요?"
그 뒤에 무슨 말이 튀어나올까 혼자 신경을 곤두 세웠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 마디,
"이번 머리는 좀 아닌 것 같은데..."
헉. 그래, 그런 말은 그냥 튀어나오는 것이지 여과된 말이 아니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그렇다고 그들은 친한 사이도 아니다.
심지어, 머리를 묶었느냐 풀었느냐를 가지고서도 이야기한다.
"머리를 푸니까 난 좀 별로인 것 같은데... 지난번처럼 다시 묶는 게 어때요?"
내가 당사자가 될 때도 있었다.
"머리를 왜 풀었어요? 남경 씨는 얼굴을 가리면 별로예요. 그러니까 다시 묶어봐요."
'나는 너의 피에로가 아니에요. 당신이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요.'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유교사상과 예의범절을 최고 미덕으로 치는 나보다 나이 많이 이에게 차마 그렇게 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한 번은 이런 식의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다. 그분이 골프에 열심인 한 가정의 남편의 소홀함으로 그 집 아이가 잘못 컸다고 말했다.
좋은 마음으로 물었다.
"그렇게 말하면 이 자리에 없는 그 사람이 상처 받지 않을까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 난 뭐든 솔직한 게 좋아서요. 솔직한 게 좋은 것 아니에요? 이건 사실이잖아요. 그리고 제가 애정이 없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죠."
아니요, 그런 애정은 사양합니다만.
내가 설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수많은 애정 어린(불편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음의 거리두기
사회적 거리두기를 생각하며 마음의 거리두기도 생각해 본다. 가끔은 마음의 거리두기가 모두에게 좋을 때가 있다. 서로 좁혀지지 않는 이견으로 상처가 될 바에야 인정하고 한걸음 물러서 주면 된다. 지키고 싶은 관계일수록 적당한 거리두기는 지혜다. 무례하고 애정으로 포장된 지나친 간섭은 그만두고 그 애정으로 그 사람의 평안과 행복을 빌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