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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Jul 07. 2019

프러포즈 받던 날

경위서 쓰고 징계도 받았다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그 날 분위기는 딱 이랬다. 이 와중에 저 사진 속 남자는 털 많은 터키시 내 남편을 닮았구나.)



# 가장 행복했고 가장 난감했던 그 날


2008년 어느 봄날, 집으로 카드가 한 통 도착했다. 보낸 이는 당시 남자 친구였던 지금의 내 남편. 초대장 형식이었고 날짜와 장소, 시간까지 정확하게 쓰여 있었다. '나 이날, 이 장소에서 프러포즈를 할 것이오' 하는 느낌 확실하게 주는 그런 카드였다. '아하하, 이 사람 프러포즈를 아주 드러내 놓고 하시겠다는 거군.'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그 날이 왔다. 요일 퇴근을 하고 삼청동 총리공관 앞에서 그를 만났다. '하하하.' 난 속으로 또 웃고 말았다. 내 눈 앞에는 손에 커다란 꽃다발을 든 남자가 서 있었고 난 생각했다. '정말 오늘 하겠다는 거구나.' 설렜다. 평소에는 가지 않는 좋은 레스토랑이 그 초대장에 쓰인 장소였다. 손에 뭔가를 잔뜩 든 사람이 내 작은 핸드백을 들어주겠다고 했고 거절하지 않았다. '오늘은 무조건 go다.'의 마음 어디쯤이었나 보다.


꽃까지 들고 이 사람 내 눈 앞에 서 있었다.


우린 택시를 잡아 타고 약속 장소로 이동했다. 오후 7시쯤 되었나. 가는 길에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약속 장소에 오니 꽤 큰 다이닝 룸 하나를 예약해 둔 이 남자는 다시 한번 나에게 '나 오늘 너한테 프러포즈를 한다'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서프라이즈가 아닌 프러포즈도 뭐 꽤 괜찮았다.


식사를 하기 전에, 그는 프러포즈 3단계를 이행했다. 1단계. 주섬주섬 백팩에 있던 노트북을 꺼내더니 켠다. 둘이 함께 보낸 시간의 추억 사진으로 중간중간 글을 삽입해 비디오를 만든 것을 보여 주었다. 극도의 문과생이 이 비디오 클립을 만들었다고? 감동하기에 충분했다. 2단계는 편지였다. 연애 시절 종종 편지를 써 온 남자 친구는 그 날 K.O 펀치를 날리는 편지를 썼다. 3단계는 반지와 "우쥬 메리미였다".


행복했고 세상을 다 가진 느낌이었다. 사랑하는 이가 결혼을 하자고 청해 오는 일은 그러했다. 즐겁게 먹고 웃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자리를 일어서는데 내 작은 핸드백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오빠 내 핸드백 오빠가 들었잖아. 왜 없어?"  "어 그게, 그게... 왜 없지?". 호사다마라 했던가 아님 프러포즈에 둘 다 홀린 걸까. 내 작은 핸드백은 사라지고 없었고, 우린 그것도 모른 채 프러포즈를 하고, 받는 데 온 마음을 쏟아부은 것이었다.


택시 회사에 전화를 해 보고 그 택시를 수소문해보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청와대에 근무했던 나는 출입증(우린 비표가 불렀다.)을 생명처럼 여기는 조직에 무엇이라고 이야기 하나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팀장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팀장님, 제가 비표를 분실했습니다. 삼청동에서 북악산 스카이웨이 쪽으로 가는 택시를 탔는데 그 택시 안에 핸드백을 놓고 내렸어요. 택시 회사, 번호 하나도 기억에 없고 6시 40분경 택시를 타서 7시가 안되어서 내렸어요."라고 보고했다. 최상의 최고의 기분을 만끽하다 저 아래 매우 낮은 지점으로 추락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한 지 11년 차인 지금 이런 일이 발생했다면 싸우지는 않더라도 꽤 남편을 나무랐을 텐데, 그때는 그의 예비신부로서 그에게 "그럴 수도 있지, 그런데 좀 잘 보지 그랬어?", "왜 우리 둘 다 뭐에 홀린 사람들처럼 그걸 못 봤을까" 정도로 대화를 끝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음날(토요일 아침), 출근해서 경위서를 쓰고 비표 분실 사건을 모두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비표를 가지고 출입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되는 것이기에 다들 민감했고, 분실한 경우 징계까지 예정되어 있었다. 여러 가지 방법을 물색했지만, 결국 핸드백, 비표, 신분증, 지갑까지 모두 찾지 못했다.


이게 우리 결혼 생활을 압축한 사건인 것만 같았다. 결혼 생활을 하며 최고의 순간과 최악의 순간을 모두 겪게 될 텐데 "너, 이 사람이랑 준비가 됐니?"라고 나에게 묻는 듯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고, 내 대답은 "Yes"였다.


스드메 중 스. 2008년 10월 우린 결혼했다.


첫째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 해외에국위 선양하느라 내 옆에 없었던 사람,(혼자 첫째 탯줄을 잘랐고, 둘째는 사경을 헤매다 880g으로 출산했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애쓴 사람, 난 아직도 그를 사랑하고 있다. 물론 내 핸드백을 다시 잃어버리신다면 그때는 그 예비 신부의 조곤 조곤 했던 말투를 갚아주고도 남을 만큼 큰 소리를 치겠지만 말이다.


자기야 우리 이렇게 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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